- 진화론의 심포니, 아름답지 않은가
- 핀치의 부리 중심으로 다윈 이래 진화론의 성과를 흥미롭게 전달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보어의 원자가 현대 물리학의 상징이라면 핀치의 부리는 진화의 아이콘이다.’

이는 저자가 든 비유다. 나는 이 말을 받아, “이 책은 진화론의 오페라”라고 평한다. 오페라가 연극에 노래를 입힌 다채로운 예술장르인 것처럼, 이 책은 핀치의 부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진화론의 전개 과정과 주요 이론을 드라마틱하게 펼쳐 보이면서 적재적소에 고대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 같은 요소를 배치한다. 독자들은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처럼 극적인 효과를 내고 재미를 주는 서술을 곳곳에서 마주친다.

그런 요소 중 하나는 위와 같은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옛 말을 인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유전한다”는 말을 불러온다. 이어 “생물의 형태와 본능,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 그리고 살고 있는 해안과 지형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연극 「바커스의 여신도들」에서는 “신의 의지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인다”는 그리스가 울려 퍼진다. 저자는 이 코러스를 인용한 뒤, 다윈도 “자연선택의 힘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과학에 인문학을 입혔다고 할까, 저자는 얘기할 거리가 별로 없을 것 같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대프니메이저 섬과 그 섬에서 핀치를 연구해온 과학자들을 다각도에서 섬세하게 관찰하고 서정적이고 재미있게 묘사한다. 번역자도 정보에 재미를 버무리는 데 일조했다. 번역자는 예컨대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종의 기원』에는 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옮겼다.

연구의 주 무대인 대프니메이저 섬은 면적이 불과 23,000제곱미터로 축구장 세 개를 합한 것보다 좁다. 이 섬의 둘레를 도는 데는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는 “그랜트 부부가 이끄는 연구팀은 언뜻 보면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조난자들 같다”고 운을 뗀다. 그런데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은 갈라파고스거북의 등껍질만 한 땅덩어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잡담을 나누고, 땅 한가운데에서는 야자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고 말한다. 이어 “그러나 대프니메이저에는 야자나무 한 그루조차 없고, 주인공들은 열정적으로 일하느라 잡담할 시간도 없다”고 대비한다.



◆ ‘불가능성의 섬’이 진화론의 실험실

그는 대프니메이저를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이라고 비유한다. 이 섬은 ‘삶의 불가능성’과 ‘연구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과 인간은 대프니메이저에서 모두 승리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특이한 식물군과 동물상은 연이은 가뭄과 홍수를 견뎌내며 여기서 계속 서식하고, 매년 찾아오는 생물학자들은 그때마다 노다지를 캐내어 뭍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믿음의 문제로 돌리는 사람이 있지만, 진화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화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종의 기원』을 비롯해 그 이전과 이후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이 책에 녹여냈다. 저자 조너선 와이너는 다윈핀치를 다룬 과학논문 150여 편과 단행본 형태의 논문 몇 편을 비롯해 거의 2000권의 관련 서적을 읽었다. 또 진화생물학자 80여 명을 인터뷰했고, 이 책의 주인공인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를 대프니메이저에 찾아가고 미국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만나 취재했다.

와이너는 방대한 지식의 숲을 헤치며 진화론이 난 길을 능숙하게 안내한다. 와이너 덕분에 우리는 수십 억 년 동안 진행된 생명의 변화에 대한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지적인 도전을 이 책으로 일별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핀치가 있지만 와이너는 핀치에서 구피로, 구피에서 곤충으로, 곤충에서 세균으로 오가면서 연구 성과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다윈이 진화론을 배태하고 키우는 과정도 들려준다. 『종의 기원』에 관심이 있다면 그 책에 앞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예컨대 저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시계’를 놓고 벌인 공방을 정리하면서 다윈의 고민을 소개한다. 창조론자는 정교한 시계가 있다면 누군가 제조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생물도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유리한 것이 보존되고 그 과정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정교해진다고 반박했다. 다윈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다윈은 생명의 작은 변이라도 중요한 차이로 이어졌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우리는 자연선택이 한편으로는 (파리채 기능을 하는 기린의 꼬리처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신체기관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처럼) 경이로운 기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다윈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는 작고 사소한 신체구조가 나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며 “아 글쎄, 공작의 꼬리 깃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병이 날 지경이라니까”라고 털어놓는다. 화려한 공작의 깃털을 진화 과정으로 설명하기가 버겁다는 토로다.



◆ 그랜트 부부, 핀치 24세대에 걸쳐 전수조사

갈라파고스는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 제도다. 고립된 섬, 육지와 다른 생태계 동식물 구성, 독특한 기후는 갈라파고스만의 동식물군을 낳았다. 다윈은 1835년에 갈라파고스에 6주 동안 머물렀다. 갈라파고스의 다양한 종은 다윈의 지적인 탐구를 자극했다. 갈라파고스에는 핀치도 13종으로 갈라졌다. 핀치는 참새와 친척 관계인 작은 새다. 핀치의 부리는 생존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핀치 종은 부리의 크기로 갈린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방문 이후 『종의 기원』을 써내기까지는 무려 24년이 걸렸다. 다윈은 핀치에 큰 관심은 없었다. 다양한 핀치를 보고 종의 변형과 새로운 종의 탄생을 떠올렸지만, 더 분석하기엔 핀치 표본(박제)이 너무 적었다. 다윈은 핀치보다 갈라파고스에서만 발견된 다른 생물에 더 자극을 받았다. 그는 “갈라파고스의 종들은 외로운 제도에 고립된 후 조상에게서 분기했고, 그 이후로도 분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적었다.

진화론의 무대에 핀치를 다시 올린 학자가 그랜트 부부다. 그랜트 부부는 다윈이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지 약 140년 뒤인 1973년부터 대프니메이저의 핀치를 ‘전수조사’해 연구하고 있다. 핀치의 진화를 밀착 취재했다. 와이너가 이 책을 집필한 시점까지 이들이 조사한 핀치는 24세대, 1만 8717마리였다. 세대당 약 780마리다. 핀치는 적을 때는 100마리까지 줄었고, 형편이 좋아지면 2000마리까지 늘었다. 이 책은 1994년에 간행됐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화는 극도로 미세하고 서서히 진행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뭄이 극심해지면 부리가 큰 새만 크고 딱딱한 씨앗을 깨뜨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살아남는다. 극심한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부리가 큰 핀치 종이 많아지고, 종의 부리도 더 커진다. 그러나 가뭄은 장마와 번갈아 든다. 장마가 지면 이제 부리가 작아지는 선택이 진행된다. 결국 변화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진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다. 만역 장마는 오지 않고, 가뭄만 반복된다면 부리는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다. 그랜트 부부는 2004년 핀치의 부리를 빚어내는 유전자를 발견했고, 2009년엔 새로 탄생한 핀치 발단종을 학계에 알렸다. 발단종이란 개체의 변이를 유지하는 종을 가리킨다. 발단종은 아종이나 종으로 넘어간다.



◆ ‘결핍’과 ‘틈새 찾기’가 진화의 동력

이 책에 담긴 다채로운 연구 성과를 일일이 전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는 생물이 경쟁을 벗어나 새로운 틈을 선점하는 과정이다. 같은 종의 개체는 물론 다른 동물이 먹지 않는 풍부한 먹이를 섭취할 수 있다면 큰 틈을 확보하는 셈이다. 둘째, 살기 좋은 환경보다 결핍과 위협이 진화의 동력이다. 진화는 자연선택이 거듭된 결과이고, 살기 좋은 환경에서는 선택이 느슨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선택과 탈락은 같은 현상의 두 면이다. 셋째, 식물은 동물의 진화에 영향을 주고, 동물의 진화는 다시 식물에 되먹임된다. 넷째, 식물은 가까운 이종간 교류가 활발하다. 바람에 날아간 눈먼 꽃가루는 다른 종의 꽃에도 앉게 되기 때문이다. 체외수정되는 어류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형편이 좋아지면 구피 암컷은 무늬와 색이 더 화려한 수컷을 택한다.

저자가 진화의 촉매가 결핍임을 더 부각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토머스 맬서스를 등장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자가 아니라 『인구론』을 쓴 맬서스 말이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다가 진화의 계기를 떠올리게 됐다. 그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재미삼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벌이는 싸움을 인식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는 유리한 변이가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는 도태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며 그 결과 새로운 종이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상태’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태어난 사람에 비해 살아남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리킨다.

이 책은 핀치의 자리에 인간을 대입해보게 한다.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인간 진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의 진화가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진행되게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컴퓨터 및 전자기기를 내장해 후천적인 하이브리드 생명체로 진화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카카오TV, YTN사이언스, 건국대학교]

[책 정보]
『핀치의 부리』, 조너선 와이너 지음, 양병찬 옮김, 526쪽, 동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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