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방’, 지상파가 자세를 낮추자 보이는 신세계

[엔터미디어=정덕현] 첫 방부터 화제를 모았던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세모방 : 세상의 모든 방송>의 리빙TV ‘낚시꽝조사’ 박기철 PD는 이번 주에도 여지없는 매력에 시청자들을 빵빵 터트렸다. 낚시방송을 한다며 낚시를 끝내고는 대뜸 차에 타라고 하고 ‘가까운 곳’이라며 무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펜션에서 뜬금없이 제트스키와 보트를 타라고 시킨다. 젊다는 죄(?)로 홀로 제트스키에 타려는 헨리의 귀에 들려오는 박 PD의 목소리. 제트스키를 모는 펜션 주인에게 돌아오며 물에 빠뜨리라는 말을 들은 헨리는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결국 하다못한 펜션 주인은 동반입수를 선택함으로써 박 PD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게 만든다.

제트스키를 대뜸 보여준 후 이어지는 건 닭백숙 먹방이다. 커다란 솥단지에 닭을 무려 스무 마리나 잡아 푹 끓인 백숙을 놓고 박 PD의 ‘먹방 지시’가 이어진다. 걸쭉한 사투리를 써가며 과장된 리액션을 하라는 것. 눈치 빠른 박명수는 이게 결국 협찬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박 PD를 추궁한다. 박 PD가 협찬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박명수는 “그런데 이 백숙 너무 맛있다”며 슬쩍 그의 ‘협찬 방송’에 대한 불만이 없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무엇이 천하의 박명수에게 협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박 PD의 지시를 따르게 만든 걸까.

이 방송을 모니터링하는 ‘위원회’에서는 이게 도저히 지상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송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노골적인 협찬 방송을 허용할 수도 없고, 허용한다고 해도 시청자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낚시꽝조사’는 다르다. 기획부터 대본, 촬영, 연출, 편집, CG, 효과음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내며, 제작비 0원으로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프로그램에 이런 협찬마저 없다면 어떻게 방송이 가능하겠나. 영세한 방송에 대한 지지와 허용. 이것이 <세모방>이 시청자들을 은근히 자기 편으로 만들어내는 비결이 아닐까.



<세모방>의 이어지는 코너, 실버아이TV ‘스타쇼 리듬댄스’도 마찬가지다. 슬리피 부자가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위해 찾은 해오화 고수는 구두수선방을 운영하는 평범한 부부. 긍정적인 마음과 열정이 묻어나는 환한 미소로, 낯선 춤을 배워야할 강박에 난감해하는 슬리피 부자에게 해오화 고수는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는 좌우명을 보여주었다. 한참 신명나게 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다소곳이 앉아 구두를 수선하는 해오화 고수의 아내에게서는 서민적인 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해오화 고수나 그의 아내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표정만 봐도 열정이 넘치고 오래도록 맞춰왔을 동작에는 부부의 정이 넘쳤다. 그러니 처음에는 이상하게 바라봤던 슬리피 부자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춤을 배우게 되지 않았을까. 그 춤 속에 담겨진 어르신들의 삶에 대한 긍정 같은 것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오상진과 장인어른이 그 어색함을 이겨내고 진지하게 춤에 임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게다.

이것은 실로 지상파의 주말 예능 시간대에는 잘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심지어 이게 지상파 예능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세모방>에서만 이런 풍경들이 가능해진 건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지상파 프로그램들과 달리 한껏 자세를 낮추어 지금껏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심지어 무시해왔던 영세한 방송들에 기꺼이 주도권을 넘겨주어서다. 그러자 비로소 우리가 몰랐던 신세계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세모방>의 꽝PD나 춤고수 어르신들의 세계에 시청자들이 기꺼이 마음을 연 건 바로 그 낮은 시선 덕분이다. 오로지 콘텐츠를 중심으로 세워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플랫폼으로서의 힘을 그 영세하고 열악한 방송에 내어준다는 그 낮은 자세가 <세모방>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게 만든다. 물론 그 흐뭇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웬만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보다 훨씬 신선한 내용 또한 접하게 되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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