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이우정 콤비의 새 예능 ‘알쓸신잡’, 기대와 아쉬움 사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모니터링을 해보는 거야. 나영석 피디가 하는 건 다 괜찮다던데?” 출연을 결정하기 전 배우자에게 의견을 물어봤다던 유시민의 말처럼, 이제 나영석이라는 이름은 1990년대 후반 김영희라는 이름이 지녔던 것과 비견할 만한 신뢰도를 갖췄다. 여기에 여행과 귀촌, 창업에 이어 ‘지식’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한다는 소식이 얹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극에 달했다. 유시민-황교익-김영하-정재승이라는 멤버 라인업도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었다.

그러니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첫 방송이 전파를 탄 지난 2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tvN으로 쏠린 것도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TV삼분지계는 어떻게 봤을까? 나영석의 신작이라는 기대감의 규모가 컸던 만큼,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김선영 평론가와 이승한 평론가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방송 내 반영된 젠더의 획일화를, 정석희 평론가는 CJ 예능 특유의 갈등구도 만들기와 사려깊지 못함을 지적했다.



◆ 사피로섹슈얼? ‘아재파탈’ 같은 소리 그만 좀 듣게 해주세요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에요.” <알쓸신잡> 첫 회에서 김영하 작가가 박경리 문학관을 방문하던 중 <토지>를 소장‘만’ 하고 있다면서 덧붙인 저 말은 이날 방송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발언일 것이다. 책장에 쌓여‘만’ 가는 수많은 책들 앞에서는 ‘김영하 같은 작가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순간이었다. 이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의 핵심 매력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이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시대에, 이 프로그램은 ‘지식인의 탈권위’를 지향하며 우리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다.



그동안 강연장과 길거리의 경계를 허무는 ‘지식 대중화’의 시도는 많았지만, 대놓고 지식과 ‘아무 말’의 위계를 없애고 ‘무쓸모’를 강조하며 실용적 목적마저 배제하는 전략은 기존보다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지식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난 음식을 먹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삶의 즐거움 하나가 추가되는 일상적 경험으로 그려진다. 프로그램 소개대로 정말 ‘딱히 쓸데는 없어도 알아두면 흥이 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불편한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탈권위를 지향하고 일정한 성공을 이뤄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젠더권력 공고화에 일조한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어 이야기에 정력의 상관관계가 따라붙고, ‘여류 시인’ 노천명이 백석 시인의 여성 편력 일화에 인용되는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이 대표적 사례다. 이 방송 시청자들을 ‘상대방의 지성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피오섹슈얼’로 설명하고 출연자들을 그 욕망의 대상으로 표현한 화면 또한 중장년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의 환상을 억지로 덧씌운 ‘아재파탈’의 변주를 보는 듯했다. 애초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필요해 참여했다는 정재승 교수의 말처럼 <알쓸신잡>의 관점도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가르침을 주는 이들에게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을 기대한다

며칠 새 여러 이가 내게 물었다. “<알쓸신잡>, 그거 볼만 해요?” 성향을 익히 아는 경우, 좋아하리라 단언하기도 하고 반대로 마뜩찮아 할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주변 반응도 호오가 나뉜다. 물론 열광하는 편이 훨씬 많지만. 어쨌거나 사람은 죽는 날까지 맞춤 조언을 해주고, 사회문화적으로 깨우침을 줄 ‘선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온 나는 일단 ‘호’ 쪽이다. 무엇보다 이런 보물단지를 또 어디서 만나겠는가. 그것도 공짜로!



KBS2 <해피선데이> ‘1박 2일’을 통해 역사 교육에 나섰던 유홍준 교수가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알쓸신잡>에서 듣는 역할인 유희열도 주거니 받거니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 속에서 ‘알고 들으니 좋다’라고 했다. 그렇다. 알게 된 것도 많고 감탄한 부분도 많다. 유적지 문화해설사나 미술관 도슨트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어서 좋았다. 허나 당장 달려가 몸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심지어 ‘먹방’이 이어졌음에도 맛 또한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혹시 지식만 있고 감성이 빠져서인가 하면, 분명 그는 아니다.

아쉬운 건 ‘배려’가 아니었을지. 이를테면 CJ 계열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양념으로 활용해온 갈등 구도라든지 유시민 작가가 표지판을 보며 한 맞춤법 지적 같은 것들. 표지판 건은 넌지시 해당 기관에 귀띔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입장이 곤란해졌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대감 때문이다. 어른다운 어른에 대한 기대. 한낱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생 스승을 찾는 나, 비정상인가요?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다양한 사람들의 상호작용 나누는 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남자들만의 대화

<알쓸신잡>의 원안이 어디에서 출발했을지를 추측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멘토 격인 유시민-황교익-김영하-정재승의 캐릭터 조합에서 나영석의 전작인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에서 멤버들을 데리고 역사적 지식을 설명해주던 유홍준 교수의 영향을 찾는 건 쉬운 일이고, 여행 자체보다 여행 후 각자의 지식을 가지고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집중하는 편집에서 각자 침대에 누워서는 음악을 주제로 한참을 대화를 주고+받았던 tvN <꽃보다 청춘> 페루편의 윤상-유희열-이적의 구도를 연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영석-이우정 콤비는 이번에도 전작들에서 흥미로웠던 지점들을 추려내어, 그 부분만을 확대해 집중하며 이것만으로도 쇼가 될 것인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tvN <문제적 남자>나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확인한 것과 같이, 지식은 새로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알쓸신잡>은 다시 한 번 살뜰하게 증명해 낸다.



그럼에도 이 흥미로운 여행을 마냥 흔쾌하게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철학-과학적 지식을 설명해 줄 만한 이들이 정말 죄다 중년 남자밖에 없나 하는 찜찜함은, 故 박경리 작가가 당대 여성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고 롤모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말을 나누는 여자는 한 명도 없는 장면에서 씁쓸함으로 바뀐다.

게다가 김영하 작가가 “여류작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멸칭”이라고 지적한 것을 방송으로도 내보낸 제작진이, 정작 본방에서는 시인 노천명을 ‘여류시인’이라고 수식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 기분은 더 미묘해진다. 정재승 교수의 말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상호작용을 나누는 일이 늘어날수록 지식과 창의성의 총량은 증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멤버 구성의 성비에도 다양성을 더해 상호작용을 꾀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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