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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감독이 갉아먹은 여성 원톱 액션영화의 가능성
기사입력 :[ 2017-06-15 15:12 ]


‘악녀’ 김옥빈의 대단히 인상적인 오프닝, 그런데 그게 다였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악녀>는 김옥빈 원톱의 액션영화로, 일찍부터 공개된 스타일리쉬한 스틸 컷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칸 영화제 비공식부문에 초청 상영되어 공개된 이후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이 회자되면서 관객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공개된 이후의 반응은 엇갈린다. 숙희(김옥빈) 혼자서 간단한 무기만으로 수십 명의 상대를 때려눕히는 호쾌한 액션은 여성 원톱 액션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숙희가 사투를 벌이는 이유와 숙희를 둘러싼 사연들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몇몇의 액션장면들의 출중함과 답답한 서사가 반반으로 맞물려, 영화의 찬반을 논하기가 몹시 어렵다.



◆ 악녀라고 하기엔 착하고 가련한 여인?

영화 <악녀>는 어두운 건물로 침투해 들어간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그에게 달려오는 자들을 칼과 도끼 등으로 무찌르는 액션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카메라를 몸에 부착한 채 액션을 벌이는 인물의 거친 숨소리와 타격감이 긴장을 고조시키며, 리드미컬하게 쓰러지며 피를 뿜는 악당들이 상당한 쾌감을 선사한다. 액션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언뜻 비치는 거울이나 옷자락으로 감지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에 이마를 찧는 상황에서 인물의 윤곽이 드러난다.

대단히 인상적인 오프닝 스퀀스이자, 주인공의 등장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시야가 어둡고 전체가 조망되지 않는 탓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액션을 펼치는 주인공의 면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의 액션에 매료되고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에게 쾌감을 유보시키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오프닝일 뿐이니, 얼마든지 주인공의 멋짐을 감상할 시간은 충분하리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액션 장면들은 이후 몇 번이 더 있지만, 마지막 마을버스 액션에 다다르기 전까지 벌어지는 액션장면들의 쾌감은 오프닝 장면만 못하다. 장면의 구성이 못한 것도 있지만, 숙희의 실력이 전보다 못한 것은 더 안타깝다. 여기에 영화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오가며 만들어내는 숙희의 사연과 숙희가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주는 한계는 관객의 갑갑함을 증폭시킨다.

숙희는 조선족 출신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킬러인 중상(신하균)에게 구제된다. 이후 중상의 수하에서 킬러로 훈련받으며,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키워간다. 마침내 그와 결혼하였지만 곧 신랑을 잃는다. 복수를 위해 나선 곳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고, 이후 이상한 곳에서 깨어난다. 임신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영화는 숙희가 국정원의 킬러로 훈련 받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살육의 임무에 뛰어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숙희는 완전히 남성권력과 가족관계에 묶인 존재로 재현된다. 아버지의 딸로 고통 받고, 자신을 구한 남자에게 키워져 그의 여자가 되길 꿈꾸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임무를 받아들인다. 국정원으로 표상되는 거대권력은 숙희를 감시하고, 어항속의 물고기 신세가 된 숙희는 조작된 로맨스에 포획된다. 사실 숙희에게 첫 번째 사랑이나 두 번째 사랑이나 주체성을 발휘할 여지는 없다. 나이, 젠더권력, 정보의 비대칭 등이 숙희를 가여운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그가 결단하고 행위에 나서는 모든 모멘트가 남편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모성, 아버지에 대한 복수인 것도 상징적이다.

숙희는 두 번째 남편의 거짓을 깨닫고, 첫 번째 남편에게 가려는 순간, 곧 첫 남편의 거짓과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복수는 처절하지만 허망하다. 애초에 ‘산 너머 산’의 함정에 빠진 가련한 객체의 몸부림일 뿐, 시스템을 파괴하는 싸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첫 남편->국정원과 두 번째 남편->첫 남편->아버지’로 계속 주인을 바꾸어가며 회전하는 복수의 궤적을 그릴 뿐, 이 시스템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파열해내지 못한다. 숙희는 그 회전을 통해 소진되고 자멸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연거푸 속아 넘어가는 그것, 즉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욕망과 정면승부를 벌이지 못한다. 악녀라고 이름을 내걸었지만, 도구로 사용되는 킬링 머신일 뿐 ‘사랑에 속고 모정에 우는’ 가련한 여인으로 남는 것이다.



◆ 여성은 이성애와 모성의 담지자인가?

영화 <약녀>가 스틸 컷이나 예고편 등으로 보여주었던 것과 상반되는 여성의 서사를 들려주는 것이 당혹스럽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상투적인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액션장면에서 영화는 숙희의 1인칭 시점을 즐기지만, 영화는 숙희의 주관적 감정을 밀착해서 보여주지 못한다. 숙희의 서사는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아버지의 죽음이나 남편의 죽음, 임신과 출산, 국정원 훈련, 신분을 감춘 두 번째 사랑, 배신 등 각각이 굉장한 멜로드라마의 요소를 지닌다.

아버지가 죽은 뒤 중상에게 길러지는 대목은 <레옹>, 국정원 훈련은 <니키타>, 두 번째 사랑은 <쉬리> 등이 연상되지만, 영화는 그 중 어느 감정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대신 그가 중상에게 사랑을 품고, 임신과 출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시 평범한 삶을 꿈꾼다는 기성 틀에 맞추어 서사를 진행할 뿐이다. 여성이 개별적인 주체가 아니라, 이성애와 모성을 갈구하는 본능적인 존재라는 기본전제가 깔려있는 탓이다.



가령 초음파 사진을 통해 처음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숙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남편의 죽음이나 기이한 곳에 감금된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임신초기에 겪은 폭력, 출혈, 낙상, 신경가스, 수술, 전신마취 등으로 인해 태아가 건강한지 먼저 걱정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숙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 엄마로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영화는 숙희를 감시하던 남성과의 위장결혼을 나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그린다. 이는 정보를 독점한 남성이 ‘보는 주체’로서 여성을 전유하고 그에게 접근하여 사랑을 쟁취하는 남성중심의 이성애 서사를 익숙한 연애의 구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현수(성준)와의 로맨스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고의 이면에는 여성은 남성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존재이며, 혹시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정상가정을 꿈꾸는 엄마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스틸사진과 예고편을 통해 멋진 활약이 기대되었던 김서형 역시 이러한 서사 속에서 아무런 매력을 발산할 수가 없다. 국정원 훈련소 장면은 어쩌면 여성들 간의 드라마를 만들기에 좋은 장소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맺는 관계는 대단히 표피적이다. 권숙(김서형)과 숙희와의 감정에 (두 배우의 동시출연작이었던) <여고괴담4-목소리>에서 묘사되었던 농밀함은 없으며, 동료(조은지)와의 경쟁은 쓸데없다. 동료애를 느낀 후배가 존재했지만, 그마저도 소모품처럼 쓰인다. 숙희가 권숙을 비롯해 다른 여성 캐릭터와 두터운 관계를 맺기 힘든 것은 숙희가 이성애 관계에 포획된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숙희는 동료들과 있을 때는 아이 엄마로 존재하고, 감시하는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는 예쁜 여자로 존재한다. 영화에서 여성들 간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은 남성 중심적 구도 탓이다.



기자간담회장에서 감독에게 왜 숙희를 사랑과 모성의 존재로 그렸는지를 묻자, 감독은 “그런 설정이 겉으로 보면 악녀이지만, 사실은 착한 여성이라는 아이러니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악녀처럼 보이지만 착하다는 게 ‘그녀의 진실’이란 뜻인데, 감독이 믿는 ‘그녀의 진실’은 개별자 숙희의 진실이 아니라 감독이 믿는 ‘여성일반의 진실’에 가깝다.

<악녀>라는 제목과 여성 원톱의 액션느와르, 그리고 김옥빈과 김서형이 내뿜는 서늘한 기운을 보고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겉은 악하나 속은 착한(사실은 불쌍한)’ 여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박쥐>에서 김옥빈이 보여주었던 순수하고 도발적인 악이나, <스토커>의 소녀가 품었던 오롯한 사악함의 기운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차이나타운>이나 <불한당>이 그렸던 여성상에는 근접했어야 하지 않을까.

전형적인 남성 구도인 오이디푸스 관계 안에서 성만 여성으로 치환되었던 <차이나타운>의 김혜수나 아무런 사연 없이 출세욕만으로 한없이 악해질 수 있었던 <불한당>의 전혜빈이 차라리 악녀라는 이름에 더 걸맞지 않을까. 제목만 악녀일 뿐, 진정한 의미의 악녀를 상상할 수 없었던 감독의 빈약한 사유가 모처럼 만들어진 여성 원톱 액션영화의 가능성을 대폭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못내 아쉽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악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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