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격’, ‘자뻑’ 분위기 문제 있다

[서병기의 프리즘]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은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경쟁에서 야기되는 피로함과 식상함이 생겼지만, 노래를 통해 나이 든 사람들이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청춘합창단은 그런 피로도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지상파 TV의 시청률 경쟁이 가장 심해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중장년층을 모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기획으로 볼 수 있다. 조금씩 앙상블이 좋아지고 있는 청춘합창단이 KBS에서 주최한 대회이긴 하지만 합창 대회 본선에 진출하고 서울소년원을 방문해 그들에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고 답가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장노년층에게는 활력과 보람, 희망을 주면서 감동까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최고의 예능 콘텐츠가 된 ‘남격’ 합창단 하모니편과 달리 스타와 캐릭터가 부재하고 스토리가 약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도 주고 있다.
 
김태원은 예능에서 이미지가 많이 소비됐다. 그럼에도 청춘합창단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국민할매로 출발해 ‘위대한 멘토’, ‘마음이 따뜻한 멘토’로 예능 캐릭터를 자연스레 변화시켜나간 김태원은 이번에는 생초보 지휘자라는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있다. 영민한 전략이다.
 
합창단원들을 이끌어 가는 자리이긴 하지만 자신도 처음이어서 쩔쩔 매는 모습은 여전히 재미있다. 불만이라면 좀 더 망가지는 모습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써 카리스마를 보이려고 말수를 줄이고 무게를 잡는듯한 느낌이 든다.

청춘합창단은 ‘남격’의 일곱 멤버들보다는 중장년 합창단원에게 더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의 배다해와 선우, 박칼린 같은 화제의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오디션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꿀포츠’ 김성록 씨는 노래만 부르고 말을 하지 않는다. 토크가 없으니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꿀포츠’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꿀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합창단원들의 이야기도 빈약하다. 이는 나이 든 사람들을 망가지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삶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이 분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의외성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지점이 나올 수 있다. ‘꼰대’ 같을 줄만 알았던 아저씨들의 새로운 면모가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나이 든 사람들도 귀여울 수 있다. 하지만 청춘합창단은 이야기는 없이 줄곧 노래만 부르고 있다. 청춘합창단은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다. 토크 부재는 화제 부재, 스타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합창단원들의 캐릭터가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이 40년간 노래를 못부르게 해 뒤늦게 한을 풀기 위한 할머니, 자식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노래로 위안을 삼는 노부부, 장기를 기중받아 아직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노래를 하고 싶은 장년층 아저씨, 큰 규모 호텔CEO 등 다양한 인생들이 모였다. ‘남격’ 청춘합창단이 3개월째 방송되고 있지만 그들의 토크는 거의 없다.
 
초보지휘자 김태원을 가르치고, 합창단원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실시한 지휘자 윤학원 씨마저도 큰 화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평창합숙시 소프라노 파트에 대해 “(음이) 높으면 겸손해져야겠죠”라고 말하고 화음에 대해 지도할 때의 모습은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뒤에서 묵묵히 있다가 본선 대회에 진출한 김태원에게 “큰 축하 드립니다”고 했던 스승 윤학원의 모습은 ‘남격’이 지향할만한 모습이다.  

오히려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쪽은 제작진이다. 제작진은 ‘자막’을 통해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역시 연륜과 관록의 하모니’ 하는 식이다. 70대 남자 트리오가 ‘오솔레오미~’를 부르자 ‘소름이 쫙’이라는 자막이 뜬다. 전반적으로 ‘자뻑’ 분위기다. ‘인생이란 이런 거야’ ‘‘삶은 어쩌구저쩌구~’ 하는 식이다.
 
나이든 분들이 엄숙과 권위를 내려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때 새로운 재미가 나오지, 가르치려고 하는 순간 예능적 재미는 사라진다. ‘김태원 선생님 대단해’ 모드로 나가면 안된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