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 감독은 도대체 ‘매드맥스’에서 어떤 영감 얻은 걸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정병길 감독의 영화 <악녀>를 보고 온 관객들의 반응은 좀 특이하다. 보통 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막기 마련이다. 하지만 <악녀>의 관객들은 영화를 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래도 한 번은 보라고 권한다. 이건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류의 심술과는 다르다. 그들은 진지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이들 상당수는 주연배우 김옥빈의 팬이다. 아무리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주연배우에 대한 감정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그 주연배우가 그 영화를 위해 온 몸을 던진 게 역력하다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그 배우를 못 살린 감독을 욕해도 배우는 여전히 남는다.

영화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악녀>는 드물게 나온 여성 원톱 한국 액션 영화다.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다른 영화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여성 원톱 영화는 역시 안 돼”라는 기계적인 반응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래놨으니 감독에 대한 관객들의 원성이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린 이렇게 당신 영화를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내 의견은 뭐냐고. <악녀>를 아주 나쁘기만 한 영화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심지어 다들 욕하는 부분도 나름 의미가 있고 종종 기대이상으로 효과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도입부는 지나치게 <하드코어 헨리>스럽지만 주인공을 소개하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으로 처리하면서 회상 후반부에 주인공에게 숨을 오래 참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 같은 건 꽤 효율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배우가 액션을 하거나 춤을 춘다면 그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보여주는 쪽을 좋아하고 이 영화에서도 김옥빈의 액션을 보다 환한 곳에서 덜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감독이 굳이 카메라를 휘두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첫 영화에 그렇게 감격스럽게 표현된 액션배우에 대한 그의 존중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지긴 하지만, 이건 옳다 그르다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병길이 <악녀>라는 영화에 맞지 않는 감독이고 각본가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건 특히 후자에서 더 치명적이다.



여기서 다른 영화를 불러오자.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비교하기엔 너무 높이 있는 영화지만 정병길이 이 영화를 보고 자기도 여성 주인공 액션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한 번 보자. 조지 밀러와 정병길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가?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방식을 보자. 조지 밀러는 일단 주인공의 전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퓨리오사는 한 쪽 팔이 없고 이 정도면 엄청난 사연이 있을 것도 같은데 밀러는 그런 이야기는 안 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오로지 현재이다. 과거와 현재 중 움직이는 것은 현재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녀>는 끝도 없는 장황한 사연들을 더하면서 과거를 소환한다. 이 대부분이 쓸모가 없는 게, 주인공 숙희의 과거 사연이란 건 박노식이 감독한 옛날 1970년대 영화에서 끄집어 왔다고 주장해도 먹힐 정도로 구닥다리 신파이고 관객들은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내용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해서 재미없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무언가가 되지는 않는다. (덧붙여 말한다면 박노식 영화엔 어처구니없는 재미라도 있다.)



액션과 드라마를 짜는 방식을 보자. 밀러의 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드라마나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그건 액션 자체가 캐릭터를 설명하고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데에 치밀하게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도로>에서 액션과 드라마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악녀>에서 액션과 드라마는 칼로 자른 것처럼 나뉘며, 드라마는 미친 것처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특히 숙희의 감시자로 나오는 현수는 너무나도 재미가 없고 호감도도 낮아서 나오는 장면마다 에너지를 까먹는다. 호오도가 갈려도 흥미로운 액션신을 구경하기 위해 이 드라마들을 견뎌야 하는데, 이것들은 도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긴 것인가. 왜 감독은 자신의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인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보자. 조지 밀러는 <분노의 도로>를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로 만들었다. 이게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부당한 삶의 조건에 맞서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밀러도 알고 관객들도 알고 주인공들도 안다.



하지만 <분노의 도로>를 보고 감명받아 여성 액션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정병길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을 쏙 빼먹는다. 빼먹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하겠는데, 정병길은 심지어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 최악의 길만 골라서 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성만을 골라 그것만 가지고 캐릭터를 짜는 것이다. 액션 신에서 숙희 캐릭터는 김옥빈의 몸을 빌려 날아다니지만 드라마 파트에선 모성, 사랑, 기타 등등의 흔해빠진 재료로만 구성된 신파 여자 주인공의 틀에 갇혀버린다.

영화를 보았으면서 어떻게 저런 것들이 안 보였을까. 하긴 사람들은 자신의 좁은 시야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정병길 역시 그 흔한 예 중 하나였을 것이고. 하지만 영화를 본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악녀>는 정병길이 <분노의 도로>를 얼마나 대충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성적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악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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