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지나친 멜로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 물론 멜로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멜로에 빠져버리면 드라마는 애초에 가려던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이 그렇다. 사실 특정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없는 사극이기 때문에 <군주>는 자칫 잘못하면 허황된 무협지 같은 드라마가 될 위험성이 애초부터 있었다.

편수회라는 가상 조직이 그렇고, 그 가상 조직이 짐꽃 독을 이용해 왕까지 중독시켜 좌지우지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게다가 가면을 쓴 왕세자라니. 사극의 파격이라고 해도 너무 과한 느낌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주>에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 이야기가 갖는 상징성이 지금의 현실 상황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가 겪은 국정농단 사태와 비선실세라는 지칭은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왕은 누구인가를 묻는 이 사극이 그저 장난스런 이야기가 아니게 만들었다. 한편의 우화같은 느낌으로 지금의 대중들에게 이 가상의 이야기가 전하는 현실적 메시지들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초반부 자칫 붕 뜰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만들어준 인물은 바로 편수회의 대목(허준호)이었다. 왕(김명수)과 마주해 제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심지어 맘에 들지 않자 자기 손으로 그를 죽여 버린 후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는 그 과정들은 <군주>라는 사극에 강렬함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대목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간간이 얼굴을 드러내지만 사극의 흐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습은 아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편수회 대편수가 되어 이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화군(윤소희)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화군은 왕세자인 이선(유승호)을 마음으로 은혜하는 인물이다.

초반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중반에 이르러 왕세자 이선과 허수아비 왕 역할을 하고 있는 천민 이선(엘) 그리고 가은(김소현)의 삼각멜로다. 가은을 좋아한다 밝히는 천민 이선과 그런 왕에게 선을 그으며 자신의 마음은 왕세자 이선에 가 있다는 걸 확실히 하는 가은. 그래서 왕세자 이선과 천민 이선이 가은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삼각멜로가 <군주>의 새로운 이야기 구조로 자리한다.



물론 이런 멜로가 가진 힘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멜로에 깊이 들어가면서 편수회와의 긴장감은 상당 부분 흐트러져 버렸다는 점이 문제다. 편수회와 싸우는 왕세자 이선과 그를 돕는 편수회 대편수 화군의 구도는 애초에 만들어져 있던 팽팽한 대결구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느슨해진 대결구도와 삼각멜로의 밀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애초에 <군주>가 갖고 있는 ‘현실감 부족’의 문제를 고개 들게 만든다. 대목이 만들어놓은 무게감이 사라지면서 마치 아이들이 왕좌를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 같은 느낌으로 흘러가게 된 것.

실로 멜로 그 자체는 죄가 없다. 하지만 <군주>는 지나치게 멜로에 중독되어감으로써 본래 이 사극이 하려던 ‘진정한 왕’에 대한 이야기가 흐릿해져버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건 처음 만들어졌던 그 긴장감이 아직까지 관성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사랑타령만 하다가는 그게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군주> 같은 허구의 사극에서는 지나친 멜로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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