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너무합니다’, 이 드라마 정말 너무합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어쩌면 MBC는 주말드라마를 모든 어이없는 사건과 음모, 폐륜이 난무하는 아침드라마로 착각한 것 아닐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MBC 주말극 <당신은 너무합니다>에는 김치 따귀 같은 어이없어도 참신해서 웃음 터지는 장면조차 없다.

물론 소시민적인 유지나의 모창가수 정해당(장희진) 집안을 통해 종종 유머코드를 보여주기는 한다. 문제는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하나도 웃기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냥 여주인공 이야기만으로 한 시간을 채울 수가 없으니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만 같다. 더구나 이 드라마에서 작가의 유머감각은 아무래도 밀레니엄을 넘지 못하고 세기말에 멈춰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유머코드는 박성환의 아들인 박현준과 박현성을 연기하는 정겨운과 가수 이루 조성현에 있다. 로맨스 장면에서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정겨운은 하지만 ‘-했나’식으로 끝나는 이 드라마 특유의 낡은 대사를 어정쩡하게 처리해서 묘하게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별한 변화 없이 무뚝뚝한 돌하루방처럼 연기하는 가수 이루 역시 보다보면 코믹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제외하면 <당신은 너무합니다>는 생각보다 진지하며 무거운 드라마다. <당신은>은 젊은 시절 미혼모였던 여가수 유지나(엄정화)가 재벌가의 회장인 박성환(전광렬)과 재혼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물론 그 사건 외에 여러 가지 곁가지들이 달려 있다.

여느 드라마에서 그렇듯 이 드라마의 재벌가 또한 막장 중의 막장이다. 집안은 대왕대비 노릇을 하는 그의 모친인 성경자(정혜선)의 손아귀에 쥐락펴락 한다. 성경자는 물론 며느리들 혹은 며느리 후보들은 유지나와 신경전을 벌이며 음모와 계략을 짠다. 거기에 추가로 유지나가 자신의 모창가수인 정해당의 옛 남친을 빼앗은 과거담이 있고, 현재 정해당은 유지나가 버린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다.

<당신은>이 시청자를 홀리는 힘은 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추저분한 사건들과 그에 따르는 신경전에 있다. 하지만 그 신경전은 가끔은 흥미진진해도 어느 순간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든다. 길게 기른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만 같은 짜증스러움이 내제되어 있어서다. 그리고 여기에서 <당신은>이 기존의 막장 드라마와는 다른 특유의 변별점이 드러난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왔다! 장보리>는 아무리 막장이어도 사이사이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인간미가 있었다. <불어라, 미풍아> 또한 김미풍(임지연) 때문에 속이 터지고 박신애(임수향) 때문에 열불이 올라도 무언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그건 바로 한국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였다. 그것이 막장드라마에서 아무리 통속적으로 쓰인다한들 시청자들은 그나마 ‘휴머니즘’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에는 이런 휴머니즘이 없다. 대신 그 빈자리를 재벌가의 남자를 통해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는 여성인물들의 욕망과 각각의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싸늘한 냉기로 대체한다. 물론 욕망을 중심으로 인간의 속물적 내면을 파헤치는 깊이 있는 드라마라면 또 달라진다. 시청자들은 이미 JTBC의 <밀회>나 MBC의 <욕망의 불꽃>을 통해 그런 종류의 수작들을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을 그런 드라마들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저 끊임없이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물간의 말싸움만을 얄팍하고 자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상하게 ‘-했나’ 식의 사극 톤의 대사를 읊어도 경박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보니 아들과 어머니는 대놓고 서로를 경멸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쓰레기로 생각한다. 며느리와 예비 시어머니 사이의 소리 없는 으르렁거림을 지켜봐야 한다. 여주인공은 한때 자매애를 느꼈던 인물을 짓밟지 못해 안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유지나가 있다. 사연 많은 여주인공으로 설정했을 법한 이 인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안하무인인 여주인공이라는 생각 외에 특별한 호감을 느끼기도 힘들다.

그나마도 여주인공 유지나를 연기하는 배우 엄정화가 표정이나 분위기의 변화로 이 캐릭터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긴 한다. 그렇더라도 이 배우가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얼굴들을 왜 이런 의미 없는 인물을 통해 브라운관에서 보여줘야 하는지 씁쓸할 따름이다.

유지나와 대립관계를 이루는 시어머니 역할의 노배우 정혜선이나 유지나를 사랑했다가 집안의 파국을 불러온 재벌가 회장 역의 전광렬 또한 마찬가지다. 두 배우 모두 노련하게 본인들의 역할을 소화해낸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무리 노련해도 <당신은 너무합니다>는 지켜보기에도 너무한 인간들의 행진으로 느껴지는 것을.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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