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어째서 노출만 화제가 된 영화가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이 정도면 어쨌든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리얼>의 평점은 4,5점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후 바로 이런 평점을 받게 되면 흔히들 ‘평점 테러’를 염두에 두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제목 그대로 ‘리얼’ 반응이 그렇다. 영화에 따라붙는 댓글들에서 좋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이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버티기가 못내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몇몇 관객들은 헛웃음이 섞인 “대박”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물론 그건 영화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미로서의 ‘대박’이다. 물론 관객 중에는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지만 못내 못 버티고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리얼>은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나누는 첫 시퀀스까지만 해도 흥미로웠다. 두 개의 인격이 그에게 존재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인 르뽀 작가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에게 그 르뽀 작가의 인격을 집어넣은 후 살해함으로써 장태영이 하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식물인간에게 투입된 르뽀 작가의 인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서 두 명의 장태영(보스 장태영과 르뽀 작가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리얼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마치 원펀맨(원펀치맨)처럼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영화는 마약에 의한 환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더 큰 그림 안에서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인격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력을 통해 성형수술을 하고 시에스타의 지분 절반을 갖게 된 르뽀작가 장태영은 보스 장태영의 짝퉁처럼 인식되지만, 차츰 그 자리를 장악해나가고 결국 짝퉁과 실제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가 리얼이고 누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스타라는 카지노가 의미하는 자본이라는 상징과, 카지노 칩에 들어있는 마약이 의미하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욕망의 힘.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영화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도일 뿐, 영화는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할 내적 개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그래서 그 표피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마약, 노출, 섹스, 폭력이 그것이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110억이라는 제작비만으로도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영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게 되자 결국 남게 된 건 자극들뿐이다. 하지만 그 자극들조차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의 노출이 있어도 그다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사실 김수현의 팬이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전면에 나오지 않고 대신 김수현과 설리의 파격 노출 같은 이야기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김수현의 연기력이 아깝지만 어쩌랴. <리얼>은 그 과함이 독이 되어 문제작이 되지 못하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리얼>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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