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남’,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이유

[서병기의 핫이슈]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KBS2 수목극 ‘공주의 남자’는 왜 재미있을까? 세조와 단종의 이야기는 그동안 사극의 단골소재로 충분히 쓰여졌음에도 ‘공주의 남자’는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공남’은 조선 초기 수양대군의 역사를 가져오면서도 사적인 이야기, 어쩌면 야사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병립시키고 있다. 계유정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숨막히게 전개되면서 비극적인 멜로까지 합쳐져 있다. 지금의 모양새는 정치극과 멜로극 양쪽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바는 멜로다. 위대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려고 한다.

‘공주의 남자’가 정치 이야기를 끌고들어오자 역사와 개인이 대결구도를 취하고 있다. 정치사가 사적인 부분을 같이 끌고들어가 첨예한 대립상태를 보여주다보니 멜로의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

‘공주의 남자’가 흥미있는 건 이런 거다. 가령, 수양이 정치 참모들과 이야기할때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는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반면 딸 세령과 앉아있으면 현대극을 보듯 지극히 개인적인 분위기가 된다. 사극의 멜로는 현대극에서보다 훨씬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현대극의 멜로는 부모세대의 증오가 자식세대의 러브스토리를 방해하거나,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결실을 보기 힘든 남녀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사극에 오면 현대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랑의 장벽이 훨씬 높다. 멜로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동이’처럼 천민이 숙종과 사랑이 이뤄지기까지는 신분제 사회라는 큰 벽이 놓여있다. ‘공주의 남자’는 아예 승유(박시후)의 아버지와 형이 세령(문채원) 아버지인 수양에 의해 제거됐다. 전쟁과 관습 등도 사극에서 사랑을 가로막는 요인들이다.

‘공주의 남자’는 두 개의 멜로축이 있다. 우선 정종(이민우)과 경혜공주(홍수현)가 그 하나다. 정종은 세조 즉위 후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을 하다가 세조 6년인 1461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만 돼있다.

드라마에서는 정종이 분에 넘치는 상대인 경혜에게 스킨십도 제대로 못할 정도의 관계다. 형식상으로는 부마지만 내용상으로는 경혜의 경호원 정도다. 하지만 수양 제거 계획이라는 거사 전날 경혜는 정종을 처음으로 ‘서방님’이라고 부르며 반지를 끼어줄 것을 요청했다. 공주의 남자로 인정하는 순간이다.
 
수양제거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참형 당하기 일보직전 자존심 강한 경혜는 소복 차림으로 수양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내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가당치 않은 행위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힘이 있기에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정종과 경혜의 멜로는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멜로축인 승유-세령도 마찬가지다. 세령은 ‘반수양 세력’과 내통하고 아버지와의 가족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수양은 반기를 드는 딸을 노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 멜로, 가혹한 순애보라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워하면서 시청하게 된다.
 
사극에서의 이런 방식은 새로운 면이 있다. 그동안 실존인물들이 나오는 정통사극과 가상인물과 가공된 이야기가 등장하는 퓨전사극이 있었다. 퓨전사극이 시들해지면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사극들도 나왔다. 액션 사극인 ‘추노’, 청춘멜로사극인 ‘성균관스캔들’ 등이다.
 
‘공주의 남자’는 장르적 재미를 가져오지만 역사도 함께 끌어들였다. 이런 사극은 정통사극도 아니고, 퓨전사극도 아닌 팩션(팩트+픽션) 사극이라 할 수 있다. 팩션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는 과거의 팩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팩션이다.
 
과거의 팩션이 사료의 빈자리를 작가와 연출의 상상력으로 메웠다면 ‘공주의 남자’는 사료가 존재함에도 이를 살짝 비튼다든가, 상상력으로 치환해 새롭게 보여주는 팩션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팩션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 흥미가 반감됐다면 ‘공주의 남자’는 사적인 이야기가 추가되다보니 재미도 있을뿐더러 허구조차도 심리적 게임이 돼 흥미진진해졌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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