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살리는 인상적인 여성 형사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영화판에서 주연급 형사들은 아직까지는 남자배우들의 몫이다. 거친 욕설과 쫓고 쫓기는 땀내 나는 수사과정은 전형적인 수컷 수사물의 구조다. 이런 시나리오 안에서 여성 형사들은 자리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전형적인 보조자 역할에 머무른다.

하지만 어떤 장르에서든 로맨스와 멜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그렇기에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이야기의 큰 중심축을 차지한다. 당연히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여주인공의 성격이나 직업도 조금씩 달라진다. 영화에서는 보조자 역할에 머무르는 여성 형사 역시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2008년 MBC 주말극 <천하일색 박정금>이 그런 경우다. MBC <당신은 너무합니다>의 하청옥 작가가 오이지로 임성한 작가의 흉내를 어설프게 내기 전 그러니까 나름 개연성을 지닌 작품을 쓰던 시절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형사를 연기한 여주인공은 배우 배종옥이었다. 다만 <박정금>은 형사가 여주인공일 뿐 수사물이 아닌 전형적인 주말드라마였다. 그렇더라도 호평 받는 연기를 해온 배종옥에게 형사 역할은 쉽지 않아 보였다. 비중이 많은 장면들은 아니지만 뛰고 달리고 액션까지 보여주는 형사 연기를 소화하는 것이 중견여배우에게는 부담스러운 캐릭터였을 것이다.

이후 2015년 SBS에서 다시 한 번 여성 형사를 전면에 내세운 <미세스 캅>을 방영한다. <미세스 캅>은 <박정금>에 비하면 수사물의 외형을 탄탄하게 갖춘 작품이었다. 당시 강력팀 팀장 최영진을 연기한 배우 김희애의 연기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아무리 베테랑 연기자라도 수사물의 형사를 연기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최영진의 경우 단순한 형사가 아닌 삶의 피로감이 깃든 중년의 여성 형사 캐릭터였다. 액션과 날카로움은 부족하지만 지친 여성 형사의 그늘을 보여주는 면에서 김희애는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전작의 성공으로 2016년 방영된 <미세스 캅2>의 고윤정 캐릭터는 아쉬움이 많았다. 배우 김성령이 지닌 화려한 매력을 형사로 캐릭터화 시키기는 했으나 그 캐릭터에는 형사로서의 삶이라거나 극적인 매력은 전작에 비해 상실되어 있어서였다.

그런 면에서 tvN 드라마 <시그널>의 장기미제 전담팀 형사인 차수현(김혜수)은 지금껏 드라마에 등장한 여성 형사 캐릭터 중 가장 성공적인 인물이 아닌가 한다. 이 드라마에서 차수현은 여성 형사가 가졌을 법한 섬세한 상황 판단 능력으로 미제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과거와 미래가 무전기로 연결된다는 설정 덕에 차수현은 덜렁대고 어설픈 초보형사의 모습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닌 베테랑 형사의 모습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었다.

특히 형사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만 역력했던 다른 중견 배우들과 달리 김혜수는 시그널의 여성 형사 차수현이란 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1990년대 전형적인 한국식 홈드라마의 감정표현이나 정서를 지녔다고 생각했던 이 배우는 <시그널>에서 보여준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로 그녀만의 새로운 드라마를 썼다.



한편 몇 년 사이 스릴러물이나 수사물 같은 장르물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형사에 최적화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배우도 등장했다. 영화 <추적자>에서 오형사로 등장한 배우 박효주의 경우가 그러하다. 비록 작은 역할이었지만 <추적자>에서 그녀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이후 SBS <추격자>에서 형사 백홍석(손현주)의 후배이자 열혈형사인 조형사로 본인만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보여준다. 이후 그녀는 MBC <트라이앵글>에서 다시 한 번 형사를 연기한다. 2016년 방영된 스릴러물인 SBS <원티드>에서는 방송작가 연우신으로 등장했지만 순간순간 여형사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걸 보면 이미 그녀는 반은 형사에 가까운 존재가 된 듯하다.

이제 막 종영에 가까워진 MBC <파수꾼>과 tvN <비밀의 숲>에서도 인상적인 여성 형사들이 등장한다. 바로 배우 이시영이 연기하는 형사 조수지와 배우 배두나가 연기하는 형사 한여진이다. 하지만 같은 여성 형사라도 둘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억울하게 아이를 잃은 후 폭주하며 스스로 법의 심판자가 된 조수지는 지금껏 나온 여성 형사 캐릭터 중 가장 시원시원한 인물이다. <파수꾼>의 조수지는 극을 이끄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무거움에서 가벼움까지 <파수꾼>은 조수지를 통해 롤러코스터를 탄다. 조수지는 사건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것은 물론 적들과 맞붙어 시원한 액션까지 보여준다. 당연히 배우 이시영의 모범적인 액션 연기는 이 드라마의 긴장감과 재미는 물론 작품성까지 달리 보이게 만들어주는 큰 힘이다.

반면 배두나가 연기하는 <비밀의 숲>의 여성 형사 한여진은 수사물 특유의 빠른 흐름과 달리 정적이고 느리다. 흥미롭게도 한여진은 남성형사의 거친 모습을 여성형으로 대체하는 강하고 억센 캐릭터가 아니다. <비밀의 숲>은 그 동안 수사물에서 쉽게 놓쳤던 인간미 있는 형사의 모습을 담백한 여성 형사 한여진의 캐릭터로 충실하게 재현한다. 한여진이 피해자의 유족인 노모를 위로하는 장면 등등에서 그간의 대중매체 속에 등장하는 형사와는 다른 면면들이 도드라진다. 한여진을 통해 범인을 잡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사건 이후의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는 또 다른 형사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