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마이웨이’, 이 시대의 짠 내 나는 꿈과 사랑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젊은이들이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썸’인지 쌈인지 모를 과격한 우정과 사랑 사이에 놓인 기묘한 감정들과 ‘쌈마이’스러운 현실을 헤치며 마이웨이를 찾아가려는 젊은이들의 좌충우돌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드라마의 최대의 미덕은 짠 내 나는 현실과 꿈을 쫓는 가치의 지향이 균형 있게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엄청난 우연이나 기적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적 필연성에 의해 정제된 결말로 나아가는데, 그 결말이 상당히 긍정적이고 설득력을 지닌다.



◆ 꿈이 있어 찌질하다?

학창시절 동만(박서준)과 애라(김지원)는 태권도 선수와 아나운서라는 확실한 꿈과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 그들은 살기 위해 지루한 일을 하는 ‘그냥 어른’이 된다. 동만에게는 승부조작이라는 잘못된 선택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스스로 체육인의 길을 부정하게 됐다. 애라는 결정적인 계기도 없었지만,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점점 꿈에서 멀어졌다. 흙수저 청춘인 이들은 굴욕을 겪는다. 특히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애라가 정당하게 도둑을 잡고도 도둑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은 눈물겹다. 드라마는 그 장면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동만에게 애라가 “무릎 꿇는 것,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와락 눈물을 쏟는 장면이 모멸감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이들은 “꿈이 있어 찌질하다”고 말한다. 차라리 꿈이 없으면 자신이 찌질함도 못 느끼고 살텐데, 꿈이 있다 보니 찌질함이 느껴져서 괴롭다는 뜻이다. 하지만 꿈은 그들을 살게 하는 힘이고 ‘너어어무’ 좋은 것이다. 애라가 우연히 사내방송 마이크를 잡은 것을 계기로 애라와 동만의 잊고 있었던 꿈이 지그재그 행보를 시작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애라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것은 자신 있지만, 아나운서 면접을 보러가서 번번이 무시당한다. 면접관이 “다른 지원자들이 고급한 스펙을 쌓을 동안 당신은 뭘 했느냐?”고 비아냥거리자 애라는 “돈을 벌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계노동을 했다”고 항변한다. 이미 공정하지 않은 구조가 바탕에 깔려 있음에도, 개인의 게으름이나 뻔뻔함을 비난하는 자기계발의 논리를 압축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이다.



애라는 지역 축제에서 마이크를 잡고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때만 해도 이를 계기로 공채와 다른 길을 통해 아나운서가 되는 행운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환상적인 행운은 펼쳐지지 않는다. 그 보다는 그가 격투기 링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발견하고, 링아나운서 공채 시험과 겹친 아나운서 시험을 포기함으로써, 주류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요컨대 나이브한 행운이 겹쳐 흙속의 진주가 발견되는 식의 서사가 아니라, 훨씬 짠 내 나는 길을 간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이크를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진로를 모색하여 틈새를 발견하고, 주류를 향한 허위의식보다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메이저”라는 말과 함께.

동만은 십년간 억눌러왔던 강한 부정을 벗어버리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는 운동하는 자신에게서 오롯한 삶의 기쁨과 의미를 느끼지만, 격투기 선수로서 재기가 순탄치만은 않다. 과거에 그가 빠졌던 오류와 마찬가지로, 속임수와 유혹이 존재한다. 동만과 과거의 악연이었던 김탁수는 순수한 실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대변한다. 동만은 몇 번의 우여곡절을 통해 자신이 걸려 넘어졌던 오류를 돌파한다. 드라마의 말미에 필연적으로 배치된 동만과 김탁수와의 승부는 동만이 최고의 격투기 선수로 우뚝 서는 성공의 무대가 아니다. 동만은 애라와의 사랑을 위해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지도자의 길을 간다. 그 마지막 승부는 동만이 자신을 옭아맸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도약의 무대였다. 드라마가 외적 성공이 아닌 내적 성장을 지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랑

드라마는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판타지를 쫓지 않는다. 동만-애라, 주만-설희, 두 커플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은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변주되었던 판타지이다. 가령 순정남처럼 굴면서 애라에게 구두와 일기장을 준 의사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역으로 비추는 인물들이다. 드라마는 그의 괴상한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동만의 주위를 맴도는 아나운서는 재벌가로 결혼했다가 이혼한 유명인이다. 드라마는 그 삶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주만(안재홍)에게 요식업계 큰손의 딸인 인턴 예진(표예진)이 대시해온다. 드라마는 주만과 설희(송하윤) 커플이 헤어지는 것까지 몰고 간다. 하지만 주만에게 예진은 사실상 설희와 너무도 닮은꼴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새로운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만과 설희의 관계가 재조정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주만과 설희가 삐걱거린 것은 예진이 등장하기 전부터 있던 내적 갈등 때문이었다. 설희의 헌신으로 둘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으며, 가부장적인 권력관계까지 개입되어 관성과 타성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그런데 예진의 등장으로 주만과 설희가 애초에 무엇에 끌린 관계였는지 깨닫게 되고, 이별까지 가게 됨으로써 관계의 균형추가 재조정된 것이다.



여기에 주만 가족의 반성까지 얻어내, 주만과 설희는 가부장제의 불평등을 걷은 채 동등하게 길항하는 관계가 된다. 설희는 직장을 나와 매실액을 만들어 파는데, 이는 극 초반에 주만이 “내가 승진하면 결혼한 뒤, 너는 블로그 운영만 하며 살게 해주겠다”고 호언한 것을 설희의 독자적인 힘으로 성취한 상태인 것이다. 이들이 도달하고 싶었던 미래를, 둘의 관계를 대등하게 조정한 상태에서 맞은 셈이다.

요컨대 <쌈, 마이웨이>는 두 커플의 주위에 날아드는 사람들을 판타지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두 커플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 커플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사람친구와 여자사람친구로 지내며 서로 보살펴주는 관계이고, 또한 커플은 6년이나 사귀었지만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결혼을 미루며 사내비밀연애를 하는 관계이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르겠는 커플과 연인인지 부부인지 모르겠는 커플, 이는 이성애적 열정이나 낭만적 사랑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의리와 정이 바탕이 된 관계를 뜻한다.

백마 탄 왕자님이나 도발적인 팜므 파탈을 희구하는 것이 아니라, 갑남을녀들끼리 일상을 돌보며 살갑게 정이 드는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랫집 윗집에 살며 친구인 듯, 가족인 듯 살펴주는 관계, 위로나 용기가 필요할 때 달려와 주는 관계, 밥과 술을 나누며 도락을 함께하는 관계가 그 어떤 번쩍이고 도발적인 관계보다 소중함을 말하는 것이다.



◆ 함께 한 시간들

<쌈, 마이웨이>는 인물들의 행동을 미스터리하게 그리다가 결말에 가서는 선의로 풀어낸다. 즉 이상해 보이거나 악당처럼 보이던 인물들도 사실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 한다.

극중 가장 이상한 인물은 황복희(진희경)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의 유쾌한 톤에 어울리지 않게 ‘출생의 비밀’을 끼얹는다. 일종의 한국드라마의 인장이자 <백희가 돌아왔다>를 쓴 임상춘 작가의 낙관처럼 사용된 설정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를 질척이지 않게 풀어낸다. 황복희가 불치병 환자이거나 갑부가 아니라는 것도 흔한 신파의 정형을 벗어난 것이다. 애라는 엄마와의 극적인 상봉이나 매몰찬 부정 없이, 엄마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그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엄마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복선처럼 다루어진 폴더폰 안에 있던 것은 애라의 사진과 양아들의 사진이었다. 양아들은 “큰 재산이나 문서 같은 거라도 들어있는 줄 알았다”고 말하며, 오히려 주제를 대비시킨다. 즉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 함께한 시간들이라는 의미이다.



<쌈, 마이웨이>는 빡센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과 진정한 사랑을 얻는 모습을 보여준다. 꿈을 쫓는 과정은 주류가 되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틈새를 찾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울러 사랑을 위해 강렬한 로맨스를 쫓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아껴줄 상대를 찾아야 함을 말한다. 또한 곁에서 함께 한 세월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관계의 밝은 면을 보며 살아가라고 다독인다.

이처럼 따뜻하고 긍정적인 드라마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 젊은 배우들 덕분이다. 김지원과 박서준은 자신들의 경력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연기를 펼쳤다. 안재홍과 송하윤도 자신의 존재와 연기력을 강하게 입증했다. 이들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무척 기대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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