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틀에 박힌 이야기를 걷어내자 보이는 전쟁의 실상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전쟁영화들은 과연 전쟁의 실상을 얼마나 그려냈던 걸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보통의 전쟁영화들은 아군과 적군을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기 마련이다. 물론 양자를 모두 공평하게 몰입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그러한 대립상황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그것이 전쟁이라고 그려지곤 한다. 이렇게 되는 건 어쨌든 극영화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고 그 주인공의 시점을 중심으로 해서 스토리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전쟁이라는 상황이 내 편과 적,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인물을 명확히 나눈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덩케르크>는 물론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쪽에 집중할 만큼 개인적인 서사를 많이 드러내진 않는다. 인물들의 대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대신 그들은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마치 영화는 효과적으로 편집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덩케르크>라는 영화 소재가 되는 이 전쟁 상황을 적국과 대적하는 연합군의 시선으로 담아낸 게 아니고, 그 지옥 같은 전장을 탈출하기 위한 병사들의 생존기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떨어지는 덩케르크 해안에서 어떻게든 배를 타고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을 한다기보다는 어떤 재난 앞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40만 명이나 모여 있는 그 곳에 폭탄이 떨어질 때면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엎드려 운을 비는 것이 전부다. 생명이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 그 고귀함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 이 영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주는 공포의 원천이다.

바다를 건너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일념은 병사를 끊임없이 뛰게 하고 가까스로 배 위에 올라갔다가도 어뢰에 맞아 침몰하는 배에서 다시 바다로 뛰어 들게 한다. 그래서 그 덩케르크 해안에서의 고군분투는 마치 시지프스의 시도처럼 덧없어 보이고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바다 건너편에서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배를 몰고 오는 민간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 한 가운데 좌초된 배 위에 홀로 살아남은 한 병사는 그 민간인 어선에 의해 구조되지만, 그 배가 다시 덩케르크 해안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패닉이 되어버린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는 그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그 민간인들과 함께 온 소년이 사고를 당한다.



한편 덩케르크 해안을 향해 가는 전투기는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적기와 교전을 벌이고 탈출하는 병사들을 향해 포탄 세례를 쏟아내는 적기들을 격추시킨다. 전투기의 연료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이 조종사는 멈출 수가 없다. 그의 손에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간의 전쟁영화들이 아군과 적군의 대립구도 안에서 그려내던 클리셰를 과감히 지워버리고 대신 육해공에서 벌어지는 세 사건을 긴박감 넘치는 편집으로 엮어낸다. 육지에서는 해안을 탈출하려는 병사들을 보여주고, 바다에서는 그 병사들을 태운 배들이 겪는 부침을 보여주며, 하늘에서는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전투기의 실감나는 활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 삼면의 스토리를 하나의 풍경 속으로 엮어냄으로써 입체적인 전쟁의 양상을 완결성 있게 그려낸다.



겨우 살아 돌아온 병사들에게 모포와 따뜻한 차를 나눠주며 노고가 많았다고 칭찬하는 한 남자에게 병사가 말한다. “그저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그러자 그 남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영화는 내내 말이 없다가 이 마지막 부분에서 그 말 한 마디를 여운으로 남긴다.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이라는 걸 그 짧은 장면이 압축해 보여준다.

실로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들이 보여줬던 틀에 박힌 이야기들을 과감히 지움으로써 진짜 전쟁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안에서는 죽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병사들은 승패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그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남북으로 나뉘어 하루가 멀다 하고 툭하면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진짜 전쟁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덩케르크>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