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상해’가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일하게 흥미를 갖고 보는 드라마가 KBS2TV 주말가족극이다. 특정 드라마가 재밌었다기보다 이 자리에 편성된 드라마만의 묘한 매력이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래 전통 가족극의 구조 속에 매우 현대적인 가족 관계와 시대정신을 코믹함과 버무린 다음 가족 사랑이란 끝맛으로 마무리한다. 32%를 돌파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갱신한 <아버지가 이상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평생을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성실한 아버지이지만 신상의 비밀을 간직한 변한수(김영철)와 그런 남편과 함께 슬하의 1남3녀를 길러온 집안의 기둥 나영실(김해숙), 그리고 아이들의 외할머니와 외삼촌 내외가 다복하게 사는 집안에 출생의 곡해를 간직한 아이돌 출신 안중희(이준)가 얹혀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가족극이다.

기본 구조는 삼대가 함께 사는 서민 대가족과 핵가족 부잣집을 축으로 삼아 펼쳐지긴 하지만, 단순히 가족극이라고 명명하기는 섭섭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다양한 종류의 맛을 파는 아이스크림가게처럼 로맨틱코미디, 멜로, 코믹, 스릴러, 막장 등등 여러 드라마의 장르가 다 들어있는 드라마 백화점과 같다.



지난 주말 42회가 방영되면서 50부작 중 이제 겨우 8편만 남겨둔 <아버지가 이상해>는 안중희와 변한수를 둘러싼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변미영(정소민)과 안중희와의 이뤄질 수 없었던 애틋한 로맨스가 점화가 되었고, 집안에서 가장 똑소리나는 인물이자, 극의 진행이란 관점에서도 가장 강력한 엔진인 변혜영(이유리)은 아버지의 과거에 관해 고강도의 집요한 추적에 착수했다.

애절한 로맨스와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추리극이 톱니처럼 맞물려 진행되는데, 답답하긴 하지만 절대로 무겁지 않다. 변혜영과 함께 다른 주변 인물들이 만드는 경쾌하고 코믹한 상황과 연기는 끈적임 없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회 분량 안에서도 감정을 여기서 저기까지 뒤흔들며 혼을 빼놓는데, 백화점처럼 다양한 감정과 장르를 한 회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이 KBS 주말극만의 특허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가 이상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사회적 이슈를 극속으로 끌어들이고, 희망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젠더 감수성이다. 변혜영과 나영실은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그 외에 변미영 정도를 제외하면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남녀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변혜영은 집안의 기둥이자 그 세계 속에 법으로 작동한다. 시댁에서도 큰소리치는 며느리이고, 남편은 물론 시부모님과도 계약서를 쓰고 생활한다. 매정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볼 때 불편한 점이나 지나친 간섭에 대해서는 직언을 하고 반대로 무조건 어리고 보살핌 받는 자식 세대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도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한다. 그것도 부잣집으로 시집온 며느리가 얄밉지 않게 말이다.

막내딸인 변라영(류화영)과 재벌가의 아들인 철수(안효섭)의 애정전선도 기존 드라마의 성역할과 공식을 거꾸로 뒤집어서 통쾌한 재미를 만든다. 재벌가와 서민의 자본주의적인 구도를 양쪽에서 모두 거부하고, 매달리는 쪽이 오히려 재벌 남자다. 남자 집안의 온갖 방해공작과 자존심 상하는 상황에도 결혼은 5년 후에 할 건데 벌써 이럴 필요 없다며 오히려 걱정해주면서 처지를 뒤바꿔 버린다.



이 외에도 젊은 세대의 공무원 준비, 특목고 진학과 관련된 경제적 사정, 왕따와 같은 학원 폭력에 대한 경종과 희망을 동시에 전한다. 가족의 뿌리 자체에 큰 비밀이 숨겨져 있지만 그 위에 꽃핀 사랑의 열매가 워낙 달고 바르다보니 심각할 틈이 없다. 특히 진지한 상황에서 코믹으로 오가는 광폭의 순간이동은 <아버지가 이상해>를 오래도록 기억나게 할 맛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상해>는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시청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막장과 시월드로 점철된 어른들의 드라마도 아니고, 전형적인 트렌디드라마는 아니지만 경쾌하고 감각적이다. 현실의 적극적인 반영, 다른 세대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함 속에서 가족극의 고유의 힘인 가족 사랑을 품고 있다. 힘들고 지쳤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둥지와 같은 가족, 함께해서 늘 행복하고 힘이 되어주는 울타리, 가족의 소중함을 고전적인 가족극의 구도 속에서 오늘날의 코드와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언뜻 익숙한 가족드라마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모든 세대의 시청자들에게 힐링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주는 특별함이 있다. 괜히 시청률 1위를 하는 게 아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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