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숙의 러브 라인이 더 기대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중견 연기자 박원숙 씨는 요즘 월화극 KBS2 <포세이돈>과 동시에 수목 미니시리즈 MBC <지고는 못살아>에도 출연 중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내리 볼 수 있으니 이른바 겹치기 출연이라는 소리도 나올 법한데 <포세이돈>에서는 주인공 이수윤(이시영)의 어머니 엄희숙 역으로, <지고는 못살아>에서 역시 주인공 이은재(최지우)의 어머니 유정난 역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차별되는 연기이기 때문인지 전혀 거슬림이 없다.

주인공의 어머니라는 공통점 외에 식당을 경영한다든지, 슬하에 딸 하나만 두었다는 점에서도 일치하지만 신기한 건 양쪽 모두 딸 역할인 연기자들과 실제 모녀처럼 살갑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출연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딸들이 워낙 밖으로 바쁜 역할들이어서, 특히나 <지고는 못살아>에서는 딸과 의절한 상태인지라 딸하고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드문 실정이 아닌가. 그보다는 오히려 주변 인물들과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이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틈틈이 엿보이는 딸을 걱정하는 표정이며 넋두리만으로도 모녀 관계가 읽히는 게 신기하다는 얘기다.

박원숙 씨가 맡아온 어머니 역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1997년 작 인기 드라마 MBC <별은 내 가슴에>의 송 여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어딘지 모르게 빈 구석이 있는 자식들, 이화(조미령)와 이반(박철)이 못마땅해 허구한 날 쥐 잡듯 몰아대기 바쁘지만 그러면서도 내 자식의 출세를 위해 밤낮으로 계략을 짜던 송 여사. 화려하게 성장을 한 송 여사가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치던 명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그리고 MBC <커피 프린스>의 은찬(윤은혜)이 엄마도 생각난다. 어린 딸을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만든,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였지만 은찬이 실연의 아픈 상처를 안고 돌아오자 따뜻하게 품에 안고 다독여줬다. 별 대사 없이 그저 잠결에 딸을 끌어당겨 안는 장면이었는데 그 느낌 하나로 푸근한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고 기억된다. 그 어머니 품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지고는 못살아>에서 인연을 끊고 살았던 딸 은재가 “내가 살면서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는데, 왜 이렇게 차가운데.”라며 울음을 터트리자 미안하다며 다가와 안아주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나 반가웠다.

그런가하면 MBC <겨울새>에서의 마마보이 주경우(윤상현)의 어머니 강 여사. 과도한 물욕과 인색함을 동시에 지닌, 한 점 혈육인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기로는 영화 <올가미>에 필적할 사악한 시어머니로 분해 시청자들의 미움을 샀으나 <겨울새>하면 젊은 주인공들보다는 먼저 박원숙 씨가 떠오를 정도인 원톱 수준의 명연기였다.

윤상현의 연기는 이 작품을 전환점으로 크게 달라져 후속 작 MBC <내조의 여왕>으로 급기야 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았던가. 본인이 심기일전 노력한 부분도 있겠지만 아마 <겨울새> 당시 가장 오랜 시간 대사를 주고받았을 어머니 박원숙 씨의 덕이 컸지 싶다. 최근의 <지고는 못살아>에서는 입장이 뒤바뀌어 장모와 사위 사이로 출연 중인데 착하고 믿음직한 사위를 좋아하긴 하지만 성깔 있는 딸일지라도 결국 딸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심리를 밀도 있게 잘 묘사하고 있다.






얼마 전 MBC <최고의 사랑>에서의 감초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속물 기질이 다분하나 그래도 마음이 독하지는 않았던 윤필주(윤계상)의 모친. 윤계상과는 2004년 작 <형수님은 열 아홉> 이후 모자 관계로 다시 만났는데 박원숙 씨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어머니라고 해도, 악역이라 해도 역할마다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겨울새>에서나 <최고의 사랑>에서나 오매불망 자식에게 집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쪽은 사악한 연기로 미움을 받은 반면 한쪽은 미워할 수 없는 정감이 가는 연기였으니까.

더 흥미로운 건 중견 연기자로는 드물게 러브 라인이 가능하다는 점이 아닐는지. MBC <그대 그리고 나>의 재천(최불암)과 홍 여사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중년의 사랑이지만 <커피 프린스>에서도 정육점 구(이한위) 사장과 밀고 당기는 러브 라인을 엮어갔었다. 그리고 <최고의 사랑>에서도 구애정의 아버지(한진희)와 될 듯 말 듯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더니 <포세이돈>에서는 급기야 수사 9과 경장 오용갑(길용우)과 본격적인 애정 관계가 예고되고 있어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어머니 역할이되 빤하고 고정된, 희생적인 한국의 어머니 상만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게 반갑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변 인물들과 옥신각신 다양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재주 또한 고맙다. <지고는 못살아>에서의 사돈(김자옥)과의 설전이라든지 <포세이돈>에서의 서해식당의 애교만점 이모 영란(최란)과 엮어가는 잔재미들이 없다면 드라마를 보는 맛이 한층 떨어졌을 테니까. 국민 배우 박원숙 씨, 오래오래 당신의 열정과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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