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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회색이다…생명력을 지닌 것은?
기사입력 :[ 2011-02-24 10:25 ]


[백우진의 잡학시대]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푸르른 것은 생명의 황금 나무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통해 한 말이다. 괴테가 이 말을 어떤 맥락에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오해를 하나 덧붙일까봐 주저하면서도 이 글을 쓴다.

여기서는 이론을 인간과 사회와 관련한 인식 틀로 국한하기로 한다. 모든 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명력이 없다. 우선 이론은 구체적인 여러 사례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추출함으로써 만들어지는데, 공통점을 찾는 과정에서 개별 사례의 핵심이 버려진다.

이론의 공허함에 대한 내 이론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예를 들어야 한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여러 나라가 이룬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이 나왔다. 혹자는 요인은 아시아적 가치라며 유교 문화를 꼽았다. 혹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 성장은 효율을 끌어올리지 않은 채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를 더 많이 투입해 낸 결과일 뿐이므로 한계에 부딪히리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의 경제주체가 어떻게 경제를 도약하게 했는지 파악하는 이론은 모두 알맹이가 없다. 공통점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 어떻게 실행했는지가 빠져나간다.

한국은 원자재와 부품을 들여와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대만은 한국과 반대로 해외에서 수주한 부품을 제조·수출했다. 대만은 반도체도 설계부터 완제품 제조까지 도맡아 하는 대신 생산자 역할만 맡았다. ‘파운드리’로 불리는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대만 업체들은 1,2위를 차지한다. 싱가포르는 교통, 통신, 교육, 의료 등 여건을 잘 갖춰놓고 외국기업을 유치했다.

싱가포르는 물류와 금융의 허브이자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에서 말레이시아를 추월했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엔 누구도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리콴유도 이 결과를 꿈꾸지 못했다. 리콴유는 독립 기자회견장에서 참담한 마음과 앞날에 대한 걱정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개별 사례는 이론에 비해 생생하다. 그럼 개별 사례로부터 모델을, 이론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한국과 비슷한 나라는 경제개발을 위해 한국 모델을 택하면 비슷한 성과를 내지 않을까? “결과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대부분의 대답이리라고 본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해당 경제의 여러 주체가 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론이 겉도는 둘째 이유가 나온다. 이론의 한계는 ‘주어’를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다. 비유하면 같은 신체 조건에 같은 증상을 앓는 두 환자에게 같은 처방, 즉 이론을 줘도 일정 기간 후 결과는 환자가 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생명력을 지닌 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이다. 경제 전문가의 역할은 과거에 토를 다는 데 있지 않고, 경제주체를 움직여 미래에 기둥을 올리거나 방파제를 쌓도록 하는 데 있다. 이와 함께 경제주체에게 기(氣)를 불어넣어주는 일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자료를 소개한다. 1958년 2월 5일 라디오 전파를 탄 강연이다. 강연자는 미국이 한국에 주는 원조자금 집행을 담당한 윌리엄 원(William Warne) 경제조정관이었다.

(전략)

“그러나 나는 아직 ‘한국경제의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주로 한국 사람들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략)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먼저 사람들의 태도랄까 사고방식부터 근본적으로 고쳐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과거의 전통이라도 서슴지 않고 집어치우는 진취적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진취적 정신, 즉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야말로 소위 선진국가들이 오늘날과 같이 경제를 발전시킨 가장 중대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내가 한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는 것은 주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경제학자라면 이런 말을 하지 못했으리라. 원 조정관은 한국에 오기 전 이란과 브라질에서 원조사절단장으로 일했다. 그는 정부에 몸담기 전에는 AP통신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cobalt@joongang.co.kr


[사진 = 하이닉스반도체]
* 자료: 송인상, 부흥과 성장, 21세기 북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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