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극 3파전, 뻔해도‘조작’이 앞서갈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한해 중 가장 치열한 흥행경쟁이 펼쳐지는 곳은 여름의 극장가만이 아니다. 안방극장에서도 방학과 휴가철을 맞이한 시청층을 겨냥해 뜨거운 드라마 전쟁이 진행 중이다. 최근 무려 7편의 새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분지계>에서는 동시간대 경쟁을 시작한 지상파3사의 새월화극을 살펴보았다.

이 대전의 결과가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한 이유는 각 방송사가 제일 잘 해왔던 주력 장르의 정면 대결이라서다. <왕은 사랑한다>는 <해를 품은 달>로 판타지로맨스 사극 붐을 불러온 MBC의 야심이, <학교 2017>은 전통의 ‘학교’ 시리즈에 대한 KBS의 자부심이, <조작>은 사회고발극 장르의 강자로 떠오른 SBS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신작들이다. 이 흥미로운 싸움을 세 평론가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왕은 사랑한다’, 왕보다 강렬한 원성공주

MBC <왕은 사랑한다>는 송지나 작가의 귀환이라는 이유로 기대가 컸던 작품이다. 궁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 다툼이며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거기에 남자 주인공의 신분을 눈치 채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까지.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을 비롯해 몇몇 사극이 오버랩 되는 흔해빠진 설정이지만 송지나 작가라면 진부한 얼개 속에 참신한 반전이 있겠거니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8회가 진행되는 동안 기대감은 급속히 사그라졌다.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물을 오락가락하는 정체성 모호한 이 드라마가 진짜 송지나 작가 각색이라고?



<왕은 사랑한다>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원나라 황제의 딸이자 충렬왕의 정비이며 왕세자 완(임시완)의 모친인 원성공주(장영남)다. 낯선 이국땅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로운 세월을 보내는 사이 몸도 마음도 병이 들어버린, 그러다 급기야 도를 넘은 집착 탓에 아들과도 점점 멀어지게 된 불행한 여인. 서슬 퍼런 카리스마가 MBC <로열 패밀리>의 공순호(김영애) 회장이 생각나기도 하고 도도한 자태에서 언뜻 <기황후>의 황태후(김서형)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해를 품은 달>에서 무녀 아리로 잠깐 등장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장영남은 최근에는 SBS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주원) 어머니 허 씨 역으로,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는 여장부 스타일의 역도부 코치 역을, <여왕의 꽃>에서는 탐욕스러운 의사 역을 맡는 등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보여줬다. 자, 이번엔 연기자 장영남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학교 2017’, 왜 ‘학교’ 시리즈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없다

‘학교는 왜 가는가.’ 전통의 ‘학교’ 시리즈를 부활시킨 <학교 2013>은 이런 질문으로 출발한다. 감옥 탈출하듯 교문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더 자주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처음엔 “그냥”이라고 얼버무렸던 아이들은 차츰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다. 좋은 드라마들이 그러하듯이 <학교 2013>은 주시청층을 겨냥한 정확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 찾기의 치열한 여정이 있는 드라마였다. 애초에 ‘정답’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2001년도를 마지막으로 문 닫았던 ‘학교’ 시리즈가 왜 다시 돌아와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최선의 답을 보여주려 애썼다.



올해 또 다시 찾아온 새로운 <학교 2017>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러한 질문이 없다는 점이다. 왜 굳이 ‘학교’ 시리즈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았던 전작시리즈의 학교들과 달리, 이 드라마의 ‘금도교’ 묘사는 주인공 은호(김세정)의 그림 노트에 그려진 스케치만큼이나 납작하다. 학생들을 그리는 태도도 단순하긴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가 미쳤다’는 외침만 반복하는 구경꾼에 머물고, 주요 인물들 역시 현실에서 멀리감치 물러서있다.

‘학생X’의 실체와 상관없이, 태운(김정현)과 대휘(장동윤)는 이미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있고, 은호와 사랑(박세완)은 각각 짝사랑 오빠와 아이돌 멤버와의 상상로맨스에 빠져있다. 이쯤 되면 학교는 그저 아웃포커스된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다. 계보를 굳이 찾는다면 ‘학교’ 시리즈보다는 같은 방송사의 하이틴판타지로맨스 계열인 <꽃보다 남자>나 <하이스쿨: 러브온>의 후예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조작> - 뻔하다. 그래도 더 지켜볼 만하다

첫 주 방영된 <조작> 1회~4회는 젊고 정의감에 넘치던 기자들이 어떻게 더 큰 벽을 만나 좌절하고, 의도치 않게 오보를 내게 되고, 그걸 해명할 기회도 없이 무너지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신문사 내의 자존심이던 스플래시 팀 팀장 이석민(유준상)과, 더 큰 비리를 밝히기 위해 발로 뛰던 한철호(오정세)는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세력에 배신을 당하고 좌천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형의 죽음 뒤에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 한무영(남궁민)은, 온라인 폭로매체 ‘애국일보’의 국장 양동식(조희봉)에게 자신을 도와주면 자신도 차원이 다른 ‘기레기’가 되어 애국일보에서 뛰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보도윤리나 취재윤리도 다 무시한 채 직진만 하는 ‘기레기’가 되어도, 진실은 밝히기 어렵고 언론을 향한 세간의 불신과 멸시도 쉬 가시지는 않는다.



SBS <조작>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주 새롭지는 않다. 정의감에 넘치는 기자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검사가 상식적으로 움직였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로 돌아가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사회고발성 작품. 여기에 남궁민이 연기하는, 조금은 삐딱선을 타는 엉뚱한 주인공이 합류해 상대의 허를 찌르며 정의를 구현하는 작품이라니. SBS <피노키오>나 MBC <오만과 편견>, KBS <김과장>, 심지어는 MBC <인간시장>과 같은 제목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권소라 검사 역의 엄지원 역시 이미 앞서 SBS <싸인>이나 영화 <마스터>에서 각각 검사와 경찰로 출연한 바 있으니, 기시감이 더 강하게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캐릭터들에도 <조작>에 기대를 걸어 보는 건, 이 작품이 오늘날 대중과 언론 사이에 깊게 패인 불신의 골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레기’라는 멸칭을 적극적으로 끌어온 것 또한 그러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흔히 저지르는 “옳은 목적을 위해 때론 틀린 길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같은 방향으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조작>은 더 지켜봐도 좋을 작품이 될 듯 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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