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저 장면을 어디서 봤더라... 아마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좀 봤던 시청자라면 SBS 수목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일부 장면들의 모티브만을 가져왔겠지 싶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야기 설정까지 어디선가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한두 작품이 아니다.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됐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물론이고 그의 예전 작품인 <초속 5cm>,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들이 줄줄이 떠오르고, 역시 최근 개봉했던 <목소리의 형태>의 한 풍경들 역시 <다시 만난 세계>에 마치 빵에 박힌 건포도처럼 달려있다. <다시 만난 세계>가 어디선가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나는 느낌을 주는 것.

12년 전의 성해성(여진구)이 12년을 뛰어넘는 그 순간에 하늘을 가르는 알 수 없는 하얀 구름 같은 띠의 흐름은 저 <너의 이름은>에서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에 하늘을 수놓는 혜성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자그마한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그 장면들은 여러모로 <초속 5cm>의 한 대목을 가져온 듯 하고, 불꽃놀이라는 배경을 두고 벌어지는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는 <목소리의 형태>가 그려냈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만난 세계>가 신카이 마코토 작품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정서적인 유사점들 때문이다. 서로가 마음을 갖고는 있지만 친구 이상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그 마음을 숨기고 있고 때때로 그 감정이 분출해 나오는 그런 정서적 흐름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던 것들이다.

물론 <다시 만난 세계>가 가진 다른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디선가 봤던 한국식의 신파적 상황들을 재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12년을 뛰어넘은 해성이 자신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찾아가고 그들과 이어가는 인연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그렇다. 형이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이한 사실 때문에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는 해철(곽동연)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신파적이다.

여기에 12년 만에 다시 만나 그 우정을 이어가는 친구들의 이야기 역시 <응답하라>시리즈가 많이 사용했던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성장 사이의 교차점을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마치 <응답하라>의 동창회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다. 그건 어쩌면 오마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적어도 <다시 만난 세계>만의 독특한 이야기나 주제의식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다시 만난 세계>는 이런 면들을 드러내고 있을까.

지금까지 그 차별적인 이야기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만난 세계>는 단지 어디서 본 듯한 명장면들을 배경으로 그려내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장면들이 주는 예쁜 느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의미를 주기보다는 그저 포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이래서는 작품이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많은 작품들을 접하는 대중들의 높아진 눈높이에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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