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왜 최고의 영화 아닌 여러 모로 좋은 영화에 만족했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의 영상 기록을 남긴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단지 영화는 힌츠페터를 타고 광주까지 갔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힌츠페터와는 달리 김사복은 구체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이 인물은 거의 전적으로 허구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그의 본명은 김만섭이라고 나온다.)

주인공이 누구이건,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캐릭터였다. <택시운전사>가 같은 소재를 다룬 비슷한 영화들로부터 차별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 독일인 기자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역할을 위해 토마스 크레취만을 캐스팅하기까지 했으니 궁금증이 더 커진다.

결과물은 기대만큼은 아니다. 힌츠페터의 캐릭터는 끝까지 흐릿하다. 우린 그가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보도하려는 책임감과 정의감에 넘치는 기자라는 걸 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들에서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는 일반적인 한국인이 제1세계 외국인 남성으로부터 기대하는 재료들로만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그가 광주 가정집에서 갓김치를 집어먹고 맵다고 기겁하는 장면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클리셰 묘사라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스토리의 한 축을 이루는 캐릭터가 이렇게 약하면 아무래도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운전사 만섭은 어떤 인물인가. 영화는 힌츠페터 때와는 달리 긴 시간을 들여 그를 꼼꼼하게 묘사한다. 사우디에서 5년 동안 일했고 아내와는 사별했고 혼자 딸 하나를 키우고 있으며 빚은 다 갚았지만 낡은 개인택시를 제외하면 재산은 거의 없다. 물론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서 만날 데모만 하는 대학생들이 영 불만이다.

이 정도 정보에 송강호의 연기까지 더해지면 생생한 무언가가 만들어져야 할 텐데, 왜 이렇게 5퍼센트 정도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까. 답은 곧 나온다. 우린 이런 캐릭터들을 이전에도 지나칠 정도로 자주 보았다. 우린 그의 역할도 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행한 현대사에 말려든 보통 사람. 송강호가 이 역을 처음 연기했던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종종 그의 연기는 그의 이전 연기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만섭은 알리바이 캐릭터다. 이는 영화를 수상쩍어하는 관객들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수상쩍은 성향도 없고 위험한 생각도 해본 적 없고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해온 비정치적인 소시민 이성애자 중년남자. 이 캐릭터는 검열을 모두 통과했기 때문에 영화는 관객들 모두가 아무 문제없이 그에게 감정이입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니까 도입부의 긴 묘사는 관객들 앞에서 벌어진 일종의 사상재판이었던 셈이다. 김만섭 무죄. 그러니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가셔도 됩니다.

검열을 통과한 캐릭터들은 만섭 뿐이 아니다. 몇몇 인텔리 저널리스트, 경찰, 군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인 캐릭터들이 알리바이 캐릭터들이다. 일단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만난 대학생들을 보자. 이들은 거의, 아니, 전부가 사투리를 쓰는 코미디 단역처럼 행동한다. 정치성향도 없고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중에 통역이 되어 힌츠페터를 따라다니는 대학생 구재식은 더욱 철저하게 탈색된다. 정치 모르고, 공부에도 관심 없는, 오로지 대학가요제 입상이 목표인 가수지망생. 여기서부터 난 이 시도가 좀 모욕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택시운전사>를 지루하게 보았느냐. 그렇지는 않다. 이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이야기엔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고통과 공포와 억울함과 분노가 있다. 독창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나 그들의 어울어짐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큰 그림의 묘사였을 것이다. <택시운전사>가 이에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같은 이유로 <택시운전사>의 좋은 의도를 무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택시운전사>는 여러 모로 ‘좋은’ 영화이다.

하지만 더 좋은 영화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이후 충분히 차별화될 수 있는 설정을 갖고 만든 영화가 여전히 이렇게 익숙하면서도 평면적인 모습으로 수렴된다면, 우린 의식적으로라도 이 익숙한 곳을 떠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변명 없이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더 깊이, 세밀하게 보려는 꾸준한 시도 없이는 뚫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택시운전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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