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의 현실감, 그저 드라마로 볼 수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너 하나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아?” 대한일보 구태원(문성근)이 이석민(유준상)에게 하는 이 말이 어쩌면 우리네 기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하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물론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이기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그 초심을 꺾었던 누군가의 초치기. 그래서 그 상명하복의 권력 시스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내려주는 대로 받아쓰다보니 어느 순간 자괴감이 들던 순간. 그리고 더 절망적인 건 그 말처럼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만큼 저들의 시스템이 공고하다는 것.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조작>이 우리네 언론의 문제를 가져온 건 이러한 절망감의 반복과 그래서 갖게 된 언론에 대한 포기 같은 대중들의 정서를 공감했기 때문일 게다. 아무런 죄가 없는 이를 죄인으로 만들고,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삶을 스스로 이어가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가하는 언론. 하지만 그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으로 진실을 덮거나 호도하는 것에 능수능란한 이 대한일보 같은 거대언론과 맞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 느끼는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조작>이 이 거대언론과 대적하는 방식은 저들이 쓰는 방식, 즉 조작을 통한 방식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던 윤선우(이주승)가 자살을 한 것처럼 꾸미고 대한일보가 윤선우에 대한 동정여론을 오히려 선점하기 위해 스스로 그의 무죄를 주장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윤선우의 자살을 애국신문이 방조했다고 주장하게 하는 것. 결과적으로는 윤선우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알림으로써 이 모든 대한일보의 일련의 행보들이 조작이었다는 걸 자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석민은 스플래시팀의 첫 기사로서 구태원을 속이고 대한일보 1면에 내는 기사를 판갈이함으로써 팩트가 다른 두 기사가 동시에 실리게 만든다. 그가 구태원에게 한 진실과 거짓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대한일보 1면의 두 기사를 통해 실증된 셈이다. 이석민의 ‘판갈이’는 그래서 그 말 뜻 그대로 이 판세를 갈아엎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조작>의 이런 해법은 실제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힘든 판타지에 가깝다. 1면 기사의 판갈이를 데스크의 승인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또한 이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검찰이 권소라(엄지원) 같은 검사를 그대로 놔둘 리도 만무다. 무엇보다 한무영(남궁민) 같은 스스로 기레기를 자청하는 기자와 그와 함께 하는 애국신문 같은 매체가 대한일보 같은 거대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 해결방식이 드라마에서나 벌어질 법한 판타지라고 해도 이 드라마가 제기하는 부패한 거대언론과 검찰의 문제 또한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게 실제 어떤 언론을 지목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아도 많은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떠올리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구체적인 이름은 아니더라도 권력에 일조한 비뚤어진 언론의 행태를 대중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봐오지 않았던가.

구태원은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이석민에게 “네가 투사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석민은 말한다. “저는 투사가 아니라 기자입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비뚤어진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 제작을 거부하고 대신 피켓을 들고 나온 이들은 투사가 아니다. 그들은 기자다. 진실을 밝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하는 것으로 그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기자. <조작>의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과 맞물려 그저 드라마 같지만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