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기승전멜로가 흩트리는 긴장감 어찌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송인(오민석) 같은 새로운 느낌의 악역이 아깝다.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가 빠져버린 기승전멜로의 늪으로 인해 악역이 애써 만들어낸 긴장감이 흐트러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테면 은영백(이기영)의 재산을 가로채 자신의 권력을 세우기 위해 활용하려는 송인이 그의 딸 은산(윤아)을 납치해가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일부러 왕원(임시완)을 격동시켜 아버지인 충렬왕(정보석)과 파국적인 대립을 하게 만들려는 간계가 시청자들의 송인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원이 각성하여 군사들을 접수하고 충렬왕에게 나아가 잠시 물러나 달라고 하는 상황은 사실상 역모에 해당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시청자들도 늘 충렬왕 밑에서 일부러 바보처럼 행세하던 왕원이 왕에게 그렇게 “바보행세 할 때 만족하셨어야 한다”고 호통치는 장면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여자와 사냥에만 탐닉하며 백성을 돌보지 않는 왕에 대한 반항이면서 무능한 어른(그래서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는)에 대한 청춘의 질타이기도 하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이 장면에서 갑자기 왕원은 왕린(홍종현)에게 함께 은산을 찾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이미 배필이 정해진 왕원을 일부러 피해 떠난 은산을 그래서 왕원과 왕린은 찾아가고 진달래꽃이 만발한 숲속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그래서 충렬왕은 어떻게 되었고 왕원과 왕린은 왕좌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게 아니면 세자를 폐하려는 왕의 명이 꺾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인지 시청자들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모든 상황을 긴장 대립구도로 만들었던 송인과 송방영(최종환) 같은 간신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드라마는 왕원과 왕린 그리고 은산 사이의 멜로가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사실 시청자들이 궁금해지는 대목은 드라마에 긴장감을 만드는 송인과 그 일당들의 행보다. 그들이 어떻게 반격을 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응징될 것인지에 대한 것들.

물론 드라마의 선택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져갈 것인가는 보는 이들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왕은 사랑한다>가 주목하려는 것과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멜로 상황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매번 기승전멜로로 빠져버리는 드라마의 흐름 앞에서 시청자들은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고작 한 여인 때문에 왕원이 각성하는가에 대한 해답지처럼 원성공주(장영남)가 나서 “한 여인조차 지키지 못하는 왕이 어찌 백성들을 지킬 수 있느냐”고 되묻는 장면은 일견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적어도 왕원이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해온 일련의 선택과 행동들이 몇 개라도 있어야 한다. 말로만 그럴 듯하게 백성 운운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 <왕은 사랑한다>는 백성 운운하지만 실상은 지극히 사적인 왕원이라는 인물의 사랑과 우정을 다루는 작품이 되었다. 그게 크게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지만, 왜 지금 시청자들이 저런 왕원이라는 인물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보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사랑만이 소중하다는 이야기일까. <왕은 사랑한다>가 꽤 괜찮은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지금의 시청자들을 공감시키지 못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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