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들’로 태어나 ‘아랍 백작’으로 정점 찍은 최민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최민수는 1986년 박봉성 화백의 빅 히트 만화를 영화로 만든 <신의 아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두 유명배우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쩌면 날 때부터 신이 내린 배우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반항아의 기운이 배어나오는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인상적인 저음, 그러면서도 젊은 배우가 쉽게 갖추기 어려운 그늘진 분위기까지 갖춘 신인이었다. 영화 속에서 거칠고 우울한 야생마 같은 최강타를 연기한 그는 영화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단숨에 인상적인 신인배우로 올라선다.

그 후 최민수가 안방극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에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안방극장이 받아들이기에 최민수는 너무 위협적이고 저돌적인 눈빛을 지닌 사내였다. 1991년 한국 현대사의 치부를 은근히 건드렸던 MBC 주말극 <고개 숙인 남자>에서 최민수는 우유부단한 지식인 형과 대비되는 반항적인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며 브라운관으로 들어선다. 이후 그는 MBC <무동이네 집>에서 단란한 재혼가정의 첫째 아들 수현으로 등장하면서 대중들과 좀더 친숙해진다. 극중 럭비 선수인 수현은 운동선수 특유의 터프한 면과 사랑 앞에서는 여리고 감성적인 로맨스가이의 두 가지 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얼굴은 이후 최민수가 안방극장에서 소비되는 두 남자 유형의 기본형이다. 최민수는 이 터프한 남자와 로맨틱한 남자 둘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흔치 않는 남자배우다. 그건 이 배우가 남자다운 터프한 매력과 쉽게 나락으로 빠져드는 흔들리는 촛불 같은 여린 매력을 동시에 갖추어서다.

한편 중간 중간 양념처럼 최민수는 코믹극에서도 본인의 장점을 발휘했다. 더구나 SBS <모래시계>의 박태수로 등장하기 전까지 그의 빅히트작은 모두 코믹극이었다. 영화에서는 <결혼이야기>가 그러했고 드라마에서는 김수현 작가의 MBC <사랑이 뭐길래>가 그랬다.



코믹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 최민수는 본인의 무뚝뚝하고 남자다운 면모를 희극적으로 비튼다. 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최민수가 분한 인물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는 답답한 젊은 남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남자는 늘 자기주장 강한 여자들과 사랑에 빠진다. 전혀 다른 성향의 남녀가 보여주는 아웅다웅이 최민수 코믹극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최민수는 ‘꼰대’를 연기하면서도 그 ‘꼰대’를 밉지 않고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최민수의 코믹 배우로서의 재능은 SBS <모래시계>의 태수 이후 모래바람에 휩쓸려 사라진 듯했다. 물론 태수의 마지막 대사 ‘나 떨고 있니?’가 수많은 개그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1990년대 전성기 이후 2천년 대 들어 최민수의 인기는 좀 빛이 바랜 감이 있었다. 여전히 몇몇 영화와 드라마에서 좋은 주연, 혹은 준주연으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그를 과거의 <모래시계>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깊었다. 혹은 칩거 이후 그를 ‘나는 자연인이다’의 배우버전으로 생각하거나 TV조선의 예능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 이후에는 머리 기른 구박덩이 남편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짙어졌다.

하지만 MBC <오만과 편견>에서 ‘뽀글머리’ 펌을 한 부장검사 문희만으로 등장하면서 최민수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전히 섬세하지만, 무언가 편안해지고, 그러면서도 노련해진 감이 있다. 무게감을 덜어낸 대신 부피감은 더욱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특히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은 극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악인인지 선인인지 알 수 없는 트릭스터 같은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인물의 히스테릭한 고백과 거짓말을 통해 극의 재미가 왔다 갔다 했다. 최민수는 이 어려운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면서 끝까지 극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 데 큰 기여를 했다.



MBC <죽어야 사는 남자>는 아랍에서 성공한 돈 많은 백작 아빠가 가난한 딸에게 돌아온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의 드라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최민수의 코믹 연기는 달인을 넘어선 장인급이다. 가벼운 심심풀이로 볼 수 있는 이 편안한 소동극 플롯을 지닌 코믹극에 인상적인 색깔을 입혀낸 건 오롯이 배우의 덕이다.

본명이 장달구인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인물이다. 이 만화 같은 인물에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배우가 현실감 있게 인물을 살리거나, 반대로 아예 만화 같은 캐릭터에 빙의해 더 과장해서 표현하거나. 후자의 방법은 실패 부담이 커서 한국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최민수는 그걸 했다. 디즈니 만화 악역 캐릭터나 가끔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떠오르는 순간도 있지만 어쨌든 최민수는 눈동자부터 손가락 끝까지 모든 신체부위를 활용해 이 인물의 과장된 코믹함을 그려낸다. 심지어 현란한 정장이 다 어울리는 이 배우의 완벽한 수트핏 덕인지 <죽어야 사는 남자>를 보다보면 이게 드라마인지 신이 내린 배우의 원맨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노련한 배우답게 최민수는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독과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앙상블역시 놓치지 않는다. 친딸로 이지영으로 등장하는 강예원과 사위 강호림으로 등장하는 신성록과 주고받는 코믹한 호흡도 일품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말투로 연기하는 듯한 압달라 역의 신인배우 조태관도 최민수 백작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특유의 매력이 생겨날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죽어야 사는 남자>가 심심풀이 팝콘 같은 드라마인 것이 분명했건만, 어느 순간에는 최고의 디저트 뷔페를 먹은 듯한 달콤한 감정의 포만감을 제공하기도 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영화 <신의 아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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