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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조선과 헬조선 오가는 의학드라마의 아이러니
기사입력 :[ 2017-08-30 14:32 ]


스토리텔링·캐릭터·윤리로 진맥해 본 ‘명불허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현대의 명의가 과거로 넘어가는 드라마는 이미 <닥터 진>과 <신의>를 통해 익숙하지만, 과거와 현재 양쪽에서 의사들이 왔다갔다 하는 드라마는 또 처음이다. tvN이 새로 선보인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현대에 데려온 의사는 조선 선조 연간 침술의 신으로 불렸던 의원 허임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는 메디컬 드라마와, 과거와 현대의 문물이 부딪히며 생기는 코미디 사이를 오가는 <명불허전>을 [TV삼분지계]가 살펴봤다. 김선영 평론가는 조선과 헬조선을 대비시키며 오늘날의 세상을 풍자하는 <명불허전>의 스토리텔링을, 정석희 평론가는 김남길과 김아중 두 주연배우가 맡은 캐릭터의 쓰임과 활용을, 이승한 평론가는 메디컬 드라마가 지녀야 하는 윤리를 짚어보았다. 진맥결과는 아래와 같다.



◆ 사백년 전 조선인이 바라본 21세기 헬조선

“죽다 살아나보니 저승도, 이승도 아닌 사백년 후의 조선 땅이라. 듣도 보도 못한 의술에 여인도 의원이 되는 경천동지할 세상이라.”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천출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던 허임(김남길)은 21세기 서울로 이동한 뒤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여기는 신분을 표시한 호패가 유물이 된 지 오래이며, 천출이란 단어도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곳이다. 병원에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에게 ‘관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정규직 직원”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곳이다. 의사처럼 “최고로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선생님이라 불리며 존경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이 신세계 앞에서 허임은 드디어 본인의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재밌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정작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국은 ‘헬조선’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에서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이처럼 조선에서 날아온 허임이 “경천동지할 세상”이라고 여겼던 21세기 대한민국이 본질적으로는 사백 년 전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부분에 있다. 조선시대에서 낮에는 혜민서의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하고 밤에는 고관대작을 진료했던 허임은 21세기에서도 최천술(윤주상)과 일할 때는 가난한 서민과 노숙자들을 돕고 신혜한방병원에 있을 때는 VIP 환자들을 상대한다.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부자와 빈자의 위계는 여전히 뚜렷하다.

뛰어난 흉부외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부만 맴도는 연경(김아중)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여인도 의원이 되는” 세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집애 따위에게 밀릴 수 없다’는 성차별주의자들이 권력을 쥔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타임슬립 메디컬 드라마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풍자의 묘미야말로 <명불허전>의 진정한 관람포인트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너무 많이 얽힌 관계의 과부하

조선 시대에서 400년의 시간을 건너 온 허임(김남길). 전설의 침술을 구사하는 혜민서 의관이었으나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조선으로는 돌아가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타임 슬립, 천재, 기구한 사연. 주인공이 과거와 현실을 오락가락 했던 몇몇 드라마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그러나 김남길이 연기하는 허임은 새롭다. 지난 어떤 인물과도 겹치는 구석이 없다. 배우가 그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리라.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으니 봉두난발, 노숙자에 가까운 외관이어도 호감이 간다. 진지했다가 코믹했다가, 명민했다가 허술했다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어떤 상황, 어떤 인물과 부딪혀도 안정적이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김아중이 맡은 흉부외과 펠로우 최연경은 어째 어색하기만 하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걸까? 아니면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덜했던 걸까? 아무리 실력과 인성을 고루 갖춘 신혜 병원 최고의 에이스라고 하나 내 환자 남의 환자 안 가리고 동분서주하는 통에 그 없으면 병원이 쓰러질 것 같다. 엮여 있는 인물들, 해결해야 할 개인사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과부하 상태. 적당한 가지치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특히 최연경을 짝사랑하는 후배 의사 유재하(유민규). 이분 연애 감정 빨리 정리시키고 허임과의 경쟁 구도 쪽으로 힘을 몰아주길.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다 좋은데, 한번 외면한 환자를 다시 살릴 순 없지 않은가

이미 MBC <닥터진>과 SBS <신의>를 통해 메디컬 타임슬립물은 볼 만큼 다 봤다 싶다가도, 긴박한 메디컬물에서 화장실 개그를 구사하는 코미디 사이를 넘나드는 <명불허전>을 보면 아직까지 이 장르가 탐색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전설 속의 위인들 또한 젊은 시절 좌충우돌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설정 또한 이미 영화 <천군>을 통해서 본 바 있어 크게 새롭지는 않으나, 표정 하나로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내는 명의 허임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객식구 사이의 낙차를 표현해내는 김남길의 연기는 뻔한 설정도 흥미롭게 살려내는 힘이 있다. 여기에 점점 전문직 여성을 연기해내는 솜씨가 근사해지는 김아중이 표현하는 흉부외과 의사 최연경의 당당한 모습 또한 <명불허전>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럼에도 <명불허전>이 어느 한 구석 불편한 이유는, 한심했던 주인공이 각성해서 위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인명이 너무 허투루 희생된 건 아닌가 하는 지점이다. ‘낮 다르고 밤 다른’ 생활을 누리던 시절, 허임은 돈이 안 된다고 외면한 탓에 병조판서 댁 머슴 두칠(오대환)의 노모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허임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두칠을 볼 때마다 허임의 안녕을 걱정하기보다는 두칠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모아야 했던 허임의 사정을 알면서도, 주인공이 참 의술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등장인물의 죽음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었다는 찜찜한 기분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쉽게 타임슬립으로 과거의 과오를 바로 잡을 기회를 얻는다면, 환자를 살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디컬 드라마 장르의 윤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될 터이다. <명불허전>이 마주한 외통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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