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안’, 28세기 우주에서의 문제도 현재와 다르지 않다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발레리안>은 28세기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발레리안과 로렐린>이라는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피에르 크리스탱이 글을 쓰고, 장클로드 메지에르가 그림을 그린 이 만화는 1967년부터 43년간 잡지에 연재되었다.

외계종족과 시간여행이 등장하는 원작은 출시 당시 독보적인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 <스타워즈>, <스타트랙>, <제5원소>, <아바타> 등에서 여러 모티브들이 차용되면서, 지금으로서는 그리 놀라워 보이지 않는 세계관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뒤늦게 나온 <발레리안>이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가 작정하고 펼쳐 보이는 황홀경에 눈을 맡기고 판타지에 빠지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발레리안>은 거창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펼쳐 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낭만적인 모험담에 가까우며, 젊은 주인공이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교훈을 남긴다. 특히 영화의 핵심 갈등이 현재 서구사회가 직면한 정치적 의제를 담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 28세기, 극한의 혼종성을 지닌 우주 도시

영화 <발레리안>의 오프닝 시퀀스는 인간이 우주에 간 역사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도킹이 있었다. 2011년 중국의 우주선도 도킹에 성공하였다. 영화는 이것을 연속적인 사건으로 보여주며 이어나간다. 즉 냉전중인 두 백인의 만남이 백인과 아시아인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2031년에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인종과 문화권의 사람들이 우주정거장에서 만난다. 2105년에 마침내 지구인과 외계인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후 더 이질적인 외계종족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이제 우주정거장은 여러 외계종족들이 모여 사는 커다란 도시로 발전한다. 그 결과 2740년 현재, 알파 스테이션에는 3236종의 종족으로 구성된 3천 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가 되었다. 사용되는 언어만 5천종이다. 극한의 혼종성으로 가득한 ‘천개 행성의 도시’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영화 <발레리안>은 뮐 행성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진주족이 영문도 모른 채 우주 공격을 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발레리안의 꿈이었다.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임무를 맡아 키리안 행성의 빅마켓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암거래되는 동물 컨버터를 손에 넣는다. 두 사람은 알파 스테이션에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다가 컨버터를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는 28세기 우주를 배경으로 진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순간이동 기술이 상용화 되었다는 전제하에 신기한 일들이 펼쳐진다. 우주 거대 시장 빅 마켓이 보여주는 규모와 혼종성도 아찔하지만, 물건을 카트에 담지 않고 쇼핑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순간이동 기술을 인체와 연계시켜 실제 몸은 안전한 장소에 있으면서 위험한 현장에서 투명 인간처럼 움직이고 싸우는 장면도 재미있다. 마치 게임을 즐기듯, 가상현실과 현실의 맞붙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인다. 타인을 스캔하여 그의 행동을 조종하는 것도 재미있는 상상이다. 우주 해파리를 이용해 기억의 심연을 더듬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는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휘황한 기술적 효과와 다종다양의 생명체로 관객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잠시도 쉴 짬이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볼거리를 내놓는데, 3D 효과도 뛰어나서 몰입하여 보다보면 마치 이것이 현실의 일부 같은 느낌을 준다.



◆ 젠더적 보수성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보는 것은 중요하다. 감독의 세계관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이다. <발레리안>의 미래세계에서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해 있지만, 사회제도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알파 스테이션의 정치적 결정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족들의 대표가 참여한 위원회가 맡고 있지만, 실제 행정 수행에서 인간의 역할이 매우 크다. 알파 스테이션의 위치도 원작과 달리 지구와 가깝게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 중심성을 버리지 못한 결과이다.



원작에서는 시공간의 여행이 자유로우며,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시공간국 요원이다. 특히 로렐린은 중세에서 온 인물로 이질성을 갖는다. 반면 영화에서 시간여행은 나오지 않는다. 공간만 확장된 상태에서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군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둘 다 젊은 또래처럼 보이지만, 발레리안은 소령이고 로렐린은 하사다. 연애 경력도 발레리안이 많다. 바람둥이 발레리안이 모범생 출신 로렐린에게 끊임없이 구애하고 청혼한다. 익숙한 청춘물의 젠더관계인데, 제목마저 로렐린이 잘려나감으로써, 남성중심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빅 마켓에서 쇼핑하는 부부들의 모습도 현재의 정형화된 부부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뿐인가. 유흥가에서 호객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그대로이고, 불란 바토 종족이 여성들을 왕의 식사시중에 동원하는 중세적인 모습은 고정된 미래배경임을 감안하면 괴상하게 느껴진다. 요컨대 28세기 우주에서도 지금과 다름없는 연애와 결혼과 성매매와 성별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정이니, 대단히 보수적인 상상이다. 이러한 보수성은 영화의 신선함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 그 결과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밀당은 진부한 하이틴 연애의 재탕으로 보이며, 젊고 아름다운 배우들의 얼굴을 감상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이들의 연애를 응원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 인종 학살과 테러리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발레리안>의 쾌감과 교훈은 분명한 의의를 갖는다. 원작은 광활한 시공간의 외계종족들 사이의 정치적 문제를 그림으로써 현재의 지구가 당면한 문제들을 환기시켰는데,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28세기 우주를 배경으로 현재의 사회문제를 투영함으로써,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비유적으로 수행한다. 즉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우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발레리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회 문제는 인종, 이주, 테러리즘에 관한 것이다. 영화 속 28세기 알파 스테이션은 수많은 종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나 평화의 이면에는 무서운 살육과 위선이 숨어있다.



영화가 도입부에 보여주었듯이, 뮐 행성의 진주족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며 전 우주에 에너지를 나누어주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탐내는 세력에 의해 인종청소를 당한다. 겨우 살아남은 몇몇이 난민이 되어 알파 스테이션에 숨어들고, 30년에 걸쳐 다른 종족의 언어와 문명을 익힌다. 하지만 이들을 멸종시킨 지구인 장군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살아남은 진주족을 없애고자 한다. 장군은 진주족을 붙잡아 고문하고, 그들이 숨어든 지역을 오염지역으로 규정하여 쓸어버리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행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이것은 서구사회가 품은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은유이다. 진주족은 백인에게 멸종당한 아메리카 원주민일 수도 있고, 석유를 탐내는 서구인들에 의해 침략전쟁을 당하고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살고 있는 무슬림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진주족은 자신들의 생존과 존엄과 본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싸우지만, 이들은 테러리스트로 규정된다. 장군은 자신의 오류가 밝혀질 경우 알파 스테이션에서 인간종족의 지배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끝까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학살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문제의식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 이주와 추방 - 현재와 미래사회의 정치적 화두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버블이 맡고 있다. 팝스타 리한나가 연기한 버블은 엄청난 코스튬 쇼를 보여주는 예술가지만 불법이민자이다.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과 어떤 존재로든 변신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은 기묘한 역설을 이룬다. 그는 클럽에서 착취당하는 불법 이민자가 아니라, 재능을 인정받는 아티스트이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발레리안을 돕는다. ‘정체 없이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던 그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은 깊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수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28세기 알파 스테이션에서 불법이민의 문제가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것은, 이주와 추방의 문제가 현재 서구사회의 모순을 관통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실제로 <코드 46>이나 <칠드런 오브 맨> 등이 그리는 미래사회에도 이주와 추방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지구촌이 하나가 될 것이라 낙관한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국경을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경은 더 강한 장벽이 되었고, 국가 간의 불균등 발전으로 이주와 추방, 차별과 혐오가 점점 더 중요한 의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근미래에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고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주의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극심한 분리와 차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로렐린의 선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령에 따르려는 발레리안과 달리 로렐린은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한다. 영화는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이 관습에 따른 선택이 아닌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젊은 관객들에게 윤리적 존재가 되는 길을 알려준다.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과 용기에 따른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발레리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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