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흑화한 김남길 어째서 뻔하게 느껴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네 드라마의 고질병이라고 하면 초반 힘 있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그 흔한 멜로 구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점이 아닐까. 잘 나가던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도 어째 그 고질병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으로 타임슬립한 허임(김남길)이 두칠(오대환)의 형을 치료해주지만 결국 주인에게 맞아죽게 되는 ‘헬조선’의 풍경을 그려냈던 지난 회에서만 해도 <명불허전>은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보여줬다. 최연경(김아중)이 드디어 허임이 처한 ‘신분의 높은 벽’을 보게 되고 그를 이해하는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고친 병자가 양반에 맞아죽는 상황을 연거푸 겪은 그가 돌연 흑화하는 대목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현대로 돌아온 허임이 “천대받으며 살지 않겠다”며 타임슬립의 비밀이 담겨진 침통을 버리고 한방병원의 VIP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은밀한 진료를 해주고 권력의 줄을 만들어가는 그 변신에 대한 좀 더 합당한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다.



사실 이런 상처를 겪었다면 오히려 정반대로 약자들을 위한 의료행위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헬조선의 풍경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조선시대와는 달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 또한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길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혜민한의원의 최천술(윤주상)이다. 그는 가난한 노숙자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의원이 아닌가.

물론 이런 허임의 흑화는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 뻔한 일시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VIP들을 고쳐주면서 그가 점점 깊게 들어가는 건 결국 현대판 보이지 않는 신분제의 시스템이다. 그는 천대받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VIP를 대하는 의원은 오히려 그 갑을시스템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셈이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방법은 허준(엄효섭)의 말대로 의원으로서 비뚤어진 마음을 다스리고 병자를 생각하는 그 길로 나서는 것뿐이다.

따라서 허임이 갑자기 서민 병자들을 외면하고 VIP들만을 위한 진료에 나서는 그 행동은 너무 뻔한 설정인데다, 이미 그런 아픔을 경험한 이가 선택한 행동이라고 보기에 개연성이 별로 없게 느껴진다. 차라리 그런 신분제의 구조적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엇나가는 캐릭터였다면 모를까 그는 이미 그 문제를 뼈저리게 경험한 캐릭터가 아닌가.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최연경과의 밀당 멜로 역시 구도를 더 식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때는 거꾸로 최연경이 허임을 밀어내던 상황에서, 헬조선을 경험하고 돌아오자 돌연 최연경이 허임에게 구애를 하는 태도 역시 너무 갑작스럽다. 흑화한 허임이 그녀를 밀어내면서 사실은 마음 속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장면들이 슬쩍 슬쩍 들어가 있는 것도 드라마를 너무 전형적인 멜로 구도의 틀로 넣어 버린다.

사실 <명불허전>은 그 조선과 현재, 그리고 한의학과 의학이 타임슬립으로 퓨전되면서 동시에 다른 듯 같아 보이는 두 개의 ‘헬조선’에서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성장하는가가 실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개연성 없는 흑화와 뻔한 멜로로 채워지는 부분은 이런 긴장감을 흩트리며 아쉬움을 남긴다. 곁가지가 아니라 하려는 이야기에 보다 집중하는 <명불허전>이 되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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