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가 김연자의 인생곡인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작곡가 윤일상은 발라드곡 <애인 있어요>를 통해 맨발의 디바 이은미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이 곡은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애틋하고 여린 감성과 이은미의 절절한 가창력과 어우러져 그녀의 대표곡으로 자리했다. 또한 댄스곡 머신으로 유능한 윤일상의 숨겨진 능력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된 노래기도하다.

윤일상이 트로트의 여왕 김연자에게도 비슷한 선물을 안긴 듯하다. 2013년에 발표되었다가 4년 만에 미친 듯이 인기 역주행을 하고 있는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가 그 곡이다. EDM의 비트와 친숙한 토종 멜로디, 거기에 김연자 특유의 감칠맛 나는 노래솜씨가 어울리면서 이 곡은 1980년대 중반에 그녀가 발표한 <아침의 나라에서> 이후 최고의 히트곡으로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1974년 데뷔한 이후 1980년대 초반 트로트메들리 <노래의 꽃다발>부터 시작해 중장년층 팬의 사랑을 주로 받아온 그녀는 처음으로 10대와 20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에서 밝혔듯 김연자는 원래 <애인 있어요>처럼 자신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발라드곡을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일도 궂은일도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앞만 보고 살겠다. 제 인생의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김연자의 말을 듣고 작곡가 윤일상이 내놓은 곡은 그의 장기를 살린 댄스곡이었다.

비록 애절한 발라드곡은 아니지만 이 신나는 노래에는 사실 가수 김연자의 드라마가 물씬 담겨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김연자는 감상용보다는 웃고, 울고, 춤추고, 즐기기 위한 노래들을 불러왔다. 그녀가 엔카의 여왕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일본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그런 이미지가 강했다.

대형 콘서트홀의 우아한 스타보다는 장터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들리던 구성지면서도 간드러진 친근한 목소리였던 것이다. 혹은 씨름장하면 떠오르는 “천하장사 만만세”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혹은 못살고 가난하던 시절의 처절한 감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국 전통가요의 교본이기도 했다.



특히 그녀가 1956년 발표된 곡인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라이브 무대에서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를 속삭이듯 부를 때 한국전쟁을 겪지 못한 이들에게도 이 서글픈 감성은 고스란히 스며든다. 더구나 노래 중간 감옥살이하는 남편을 그리며 그녀가 읊어대는 내레이션은 말 그대로 남편을 잃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의 절정이다.

안타깝게도 김연자는 한국인을 울고, 웃기는 감수성이 충만한 가수지만 전성기인 1980년대에도 그녀하면 단숨에 탁 떠오르는 인생곡을 갖고 있는 가수는 아니었다. <수은등>, <아침의 나라에서> 등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김연자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살짝 부족했다. 그런데 뒤늦게 탄력받기 시작한 <아모르 파티>는 김연자표 인생곡이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파티를 사랑해!”로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아모르 파티>는 사실 철학자 니체의 <즐거운 지식>에 등장하는 ‘네 운명을 사랑해라’라는 뜻이다. 허나 노래자체는 남녀노소 누구나 들썩이게 만드는 흥겨운 파티곡으로 손색이 없다. 더구나 춤을 추며 팔, 다리, 몸과 머리를 흔들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초라한 운명마저 사랑하게 되는 흔치않은 파티곡이다.



음악 자체도 흥겹지만 노래의 가사 역시 은근히 눈여겨 볼 구석이 많다.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된다고 흥을 부추기는 노래 같지만 초반부의 가사를 들어보면 조금 맥이 달라진다. 그냥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생이란 붓을 들고 고민하고 방황하던 이들에게, 쏜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간 이들”에게 여전히 이 순간의 삶을 즐길 수 있다고 다독이는 노래다.

생각해 보니 그건 지금껏 이 가수가 대중들을 향해 계속 걸어왔던 주문이기도하다. 과거의 아픔에 젖어 있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움츠리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울고 웃으며 지금 내가 겪는 삶을 즐기시라는 메시지 말이다. 그렇기에 그 메시지가 흥겨운 비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아모르 파티>는 김연자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대표하게 되는 인생곡으로 충분한 셈이다.

그런데 <아모르 파티>를 다 듣고 나면 이건 웬만한 가수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곡이구나, 싶어지는 지점이 있다. 이 노래를 맛깔나게 소화하려면 트로트 특유의 창법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비트를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노래 하나를 불러야 하는데, 그것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신나게 불러야만 한다. 더구나 힘 있고 치고 올라가는 훅이 있는 전형적인 댄스곡이 아니라 현란한 비트를 타고 넘나들어 흥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다. 김연자는 전통가요인 트로트 특유의 꺾는 창법을 잘게 쪼개 지금 유행하는 EDM의 비트 위에 자연스레 얹어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힘 안들이고 웃으면서 하나로 아우르는 걸 보면 정말 이 가수가 한국과 북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사랑받았던 이유가 수긍이 간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SBS, MBC, MBC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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