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크로스’가 유발 하라리 같은 지식인을 활용하는 방식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보상자에서 지식상자로의 전환인가. 치열한 다매체 환경이 유해 콘텐츠를 대량 배양하는 시대에, TV는 역으로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 사냥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 ‘인포테인먼트’ 전략의 대표 채널 OtvN이 개국 2주년 특집으로 선보인 <어쩌다 어른 크로스>는 지식상자로서 TV의 기능을 증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학 역사과 교수, 만화의 거장 윤태호 작가, ‘구글X’의 모 가댓 혁신총괄대표, ‘국내 유일무이의 행복 전문가’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등 국내외 명사들의 강연을 안방극장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땠을까. <삼분지계>가 그 첫 주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해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베끼기 유행 시대에 단연 돋보이는 기획성’을 호평했고, 김선영 평론가는 TV가 지식 셀러브리티를 소비하는 태도를 주목했으며, 이승한 평론가는 ‘협업’이라는 형식의 실효성을 진단했다. 아래는 그 개별 강의평가서다.



◆ 베끼기 시대에 돋보인 신선한 기획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배경으로 다수일 때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능력을 꼽았다. OtvN이 개국 2주년을 맞아 마련한 <어쩌다 어른 크로스>도 협력이다. 세계적인 석학과 인기 웹툰 작가의 협업을 주선한 제작진의 유연한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그 나물에 그 밥, 베끼기가 창궐하는 요즈음 이 얼마나 신선한 기획인가 말이다.

작품을 위해 꾸준히 인간을 연구해온 윤태호 작가와 인간의 미래를 이해하고자 평생을 노력해온 유발 하라리 교수. 서로 다른 분야로 일가를 이룬 두 강연자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가 생각났다. 박인수 교수는 듀엣 작업 후 동료 음악가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았다지? 다른 장르를 거부하는 닫힌 자세 때문인지 클래식의 대중화는 여전히 느린 걸음이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완독했다는 윤태호 작가는 자신의 웹툰 ‘오리진’의 영어번역본을 만들어 선사했다.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깔끔히 요약 정리해온 유발 하라리 교수 역시 이를 완독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태호 작가의 ‘작가보다 독자의 통찰력이 더 뛰어나다.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힘이 생기면 기대치는 높아지지만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 혹여 잊을까 싶어 한자 한자 되뇌어 본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지식인과 청중을 비추는 카메라의 차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역사학자라는 소개를 받으며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록스타’처럼 등장한 유발 하라리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연예인이나 가수들이 이런 환호를 받는데 역사학자이자 과학자인 제가 청중으로부터 이렇게 환영받으니 기쁩니다.” 이 장면은 지금 한국에서 TV가 지식인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식 대중화 시대에 TV는 지식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예 지식인들을 연예인 못지않은 ‘핫한’ 셀러브리티로 가공한다.

출연진 모두를 ‘CF 스타’로 만든 tvN 지식 예능 <알쓸신잡>이 대표적 사례다. OtvN은 이런 흐름을 일찌감치 주도해왔다. 그 중심에서 많은 지식인 셀러브리티를 배출해온 대표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이 채널 개국 특집을 맞아 ‘글로벌 컬레버레이션 강연’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수사가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첫 강연 연사였던 유발 하라리 교수나 윤태호 작가는 이미 수사가 필요 없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성찰적 지성이 담긴 강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이끌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윤태호 작가가 대표작 <야후>의 작법을 들려주면서 “사건의 배경을 세세하게 알고 나면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고 한 말이나, 유발 하라리 교수가 인권에 대해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고통을 줄여주었으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한 대목이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유와 ‘크로스’하는 지점이라는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보는 이들에 따라 와 닿는 부분은 다 달랐을 것이다. 지식인을 비추는 방송의 태도에서 경계해야 할 점도 바로 여기다. 화려한 수사와 가공은 지식인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시청자를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다 어른 크로스>에서 지식인을 ‘록스타’처럼 비추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표정이 다채로운 여성 청중들의 리액션을 지나치게 자주 잡아내는 카메라는 방송의 이러한 매커니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방송의 지식 콘텐츠에는 정작 청중들과의 ‘협업’이 빠져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구슬을 꿰기에는 실이 너무 헐렁하다

<어쩌다 어른> ‘크로스’라는 기획 제목에서 제일 처음 연상된 것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주간지 한겨레21에서 연재했던 칼럼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다. 각기 다른 전공과 관심분야를 지닌 두 학자가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획이었던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방법의 차이와 이 서로 다른 두 분야의 학문이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고 일치하기 시작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라 기획의 세부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와 윤태호 작가가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강연을 준비하고, 모 가댓 구글X 혁신총괄대표와 서은국 연세대 교수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해 강연을 준비한다는 기획은, 이러한 관점의 교차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주말 양일에 걸쳐 방영된 윤태호 작가와 유발 하라리 교수의 강연이 과연 그 기획의 묘를 잘 살렸는지는 미지수다. 물론 각각의 강연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훌륭한 강연이었다. 윤태호 작가는 스토리텔러로서 자신이 인간을 파악하고 동시대 인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들려줬고, 유발 하라리 교수는 아프리카의 구석에 있던 유인원 중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을 지배하는 생명체가 되었는지 설명하며 앞으로 그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를 예측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키워드가 포괄할 수 있는 주제의 폭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스토리텔러와 역사학자의 관점이 어디에서 교차하고 어느 지점을 분기로 갈라지는지를 보는 쾌감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이 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는 것을 볼 수는 있어도, 정작 그 시선이 ‘교차(크로스)’하는 것을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인간’보다는 그나마 구체적인 주제인 ‘행복’을 키워드로 공유한 모 가댓 대표와 서은국 교수의 강연은 좀 나아질까. 좋은 구슬을 제대로 꿰려면 지금보단 줄을 짧게 잡을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O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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