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워 연예인에게조차 재갈을 물리려 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은밀하게… 때로는 조잡하게… 사방을 옥죄고 나아가 아예 비판 자체를 말살시키고자 했던 먹빛의 세상은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 날은 마침 코미디언 김미화 씨가 조사를 위해 검찰에 출석한 날이었다. 김미화 씨는 그 자리에서 “요즘 젊은 사람 말대로 실화냐? 대통령이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이렇게 사찰을 하면 어느 국민이 대통령을 믿느냐?”고 했다. 그는 이 블랙리스트 배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는 걸 명백히 했다. 그리고 민형사 고소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이제 와 드러난 걸 보면 김미화 씨. 그건 모두 실화였습니다.” 김미화 씨의 그 말에 대해 손석희 앵커는 그렇게 화답했다. 그랬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방송 잘하고 있던 많은 연예인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TV에서 사라졌을 까닭이 없었다. 다만 실체가 가려져 있었을 뿐.



그런데 예상하고 있던 사실조차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블랙리스트에 올라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문성근이 역시 검찰 출석을 할 때 첫 마디로 꺼낸 ‘경악’과 ‘개탄’이 실감났다. 문성근은 드라마 <조작>의 기자간담회에서 “8년 간 방송 활동을 하지 못했다”며 “정치 세력의 수준이 저렴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가 검찰을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했던 말 중에는 배우 김규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김규리와 통화했다며 지금도 너무 두려워 나서서 말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김규리는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SNS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그 젊은 10년의 나이를 어둠 속에서 보냈다. 본래 김민선이라는 이름을 김규리로까지 바꾼 사실에서 그 아픔의 깊이가 느껴진다.

<조작>의 기자간담회에서 문성근이 8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하다 마침 정권이 바뀌어 다시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의미심장한 농담을 한 유준상 역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 사람이었다. 그는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강제 철거된 당일 대검찰청 국민의 소리 게시판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왜 거기에 이름을 올렸을까를 추정해보면 문성근의 말대로 너무나 ‘저렴한’ 수준이 엿보인다. SBS <본격연예 한밤>은 그 리스트에 오른 이유에 대한 추론들을 담아 보여줬다. 김구라, 박미선, 이하늘은 한 방송에서 광우병 관련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고, 윤도현, 안치환, 양희은 등은 촛불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심지어 배칠수는 방송에서 MB의 성대모사를 한 바가 있었다. 설마 그래서였을까 싶지만 만일 그런 것들이 다 이유가 되어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실제로 그 긴 세월동안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건 정말 너무 저렴한 발상들이 아닐까.

<본격연예 한밤>이 연예계 블랙리스트를 다루며 마지막으로 남긴 한 줄의 자막이 인상적이다. ‘마침내 블랙리스트의 피해자가 밝혀졌습니다. 이제부터 블랙리스트의 가해자를 밝혀낼 때입니다.’ 그것이 다시는 이런 은밀하고 조잡하며 저렴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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