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청춘’, 처음 맞는 정체기를 극복하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화요예능의 왕좌를 차지한 <불타는 청춘>은 두 가지 무기를 갖고 있다. 첫째는 독점 콘셉트인 ‘중년의 썸’이다. 중년 싱글 남녀의 로맨스는 이 프로그램의 출발선이자 정체성이다. 실제로 김국진과 강수지가 맺어지기까지 중년의 썸은 초기 <불타는 청춘>을 견인한 흥행 코드였다. 두 번째 무기는 성공하는 예능에 필수적인 ‘유사가족 커뮤니티’의 성장이다. <불청>은 중년의 로맨스라는 특정 콘셉트에서 출발했지만 김국진·강수지 커플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로 친해지고 어우러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보편적인 예능 문법과 재미를 갖춘 리얼버라이어티로 거듭났다.

특히 작년 한 해 <불청>이 보여준 유사가족 커뮤니티가 결속하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방영 중인 리얼버라이티 중 최고였다. 출연진들은 방송을 촬영하는 게 아니라 정말 친한 친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한 가족처럼 정을 쌓고 친해지는 과정에서 묻어나는 진정성과 재미는 시청자들에게 친밀함과 소속감을 건넸다. 그러면서 중년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수준을 벗어나 왕년의 스타를 보는 반가움도, 중년의 썸에 하나도 관심 없는 30대 이하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면서 외연을 넓혔다.



그런데 커뮤니티나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예능은 일정한 패턴의 성장주기를 따른다. 대부분 ‘기승전’ 이후가 문제다. 필연적으로 정체가 찾아온다. 캐릭터들의 관계망에 시청자들이 익숙해지고, 출연진들도 서로간의 호감과 노력, 방송에서 느끼는 즐거움 등에서 매너리즘을 겪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지만 <런닝맨>의 전소민처럼 이미 굳어버린 캐릭터들의 관계를 뒤흔들 정도로 파괴력이 있지 않는 한 기존 이너서클과 신입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올해 처음 해외로 나간 <불청>도 지금 그런 정체기를 겪는 듯하다. 작년 홍콩과 괌 여행은 <불청> 커뮤니티와 캐릭터를 단단히 다지고, 시청자들과 더 끈끈한 애정을 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다가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는 더욱 도드라졌고 출연자들의 친밀도는 물론 프로그램과 시청자 간의 정서적 교류도 한 차원 더 깊어졌다. 이 두 특집은 프로그램 자체가 한 단계씩 더 성장하는 계기였다.



하지만, 올해 첫 해외여행에서는 좀처럼 작년 여행의 즐거움과 친밀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라카이는 임성은의 집이라는 남다른 의미도 있고, 김도균과 정유석, 김광규 등이 선발대로 넘어가 촬영 준비만 1주일이나 했다. 그런데 관광 이외의 볼거리나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다질만한 이벤트는 전혀 없었다. 물론, 개인 스케줄로 일찍 떠나는 김도균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임성은, 정유석의 애틋함이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고, 보라카이의 뜨거운 태양과 휴양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마음을 들뜨게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마니또를 하면서 출연자들 간에 우정을 다지고 미묘한 여운을 남긴 홍콩 여행이나 최성국의 깜짝 생일파티가 열린 괌 때처럼 출연진 전체가 따뜻함과 설렘을 공유하고 함께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몇 개월 간 <불청>을 보면 출연진의 역할은 고정되었고, 서로에 대한 리액션은 줄어들었다. 에피소드도 함께하는 것에서 점차 개인적으로 파편화됐다. 과도한 러브라인이 대표적인 예다. 팀의 구심점인 김국진·강수지 커플과 분위기를 이끄는 실질적 리더인 최성국, <불청>의 긍정적인 기운을 책임지던 김완선과 같은 고정 멤버들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에너지레벨은 극도로 떨어졌다.



특히 한창 때 김광규와 알콩달콩한 재미를 선사하고 출연진 전체에 밝은 에너지를 불어넣던 김완선의 약화된 존재감이 마음에 남는다. 김광규와 함께 고군분투하던 최성국도 강수지와 ‘현실남매’ 임성은과 ‘갯벌남’과 같이 친한 특정 출연자들과의 관계에서만 소소하게 웃음을 만드는 정도로 역할이 축소되었다. 한창 좋을 때 함께했던 멤버들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새 친구에 대한 설렘이나 배려도 예전만 못하다. 새 친구들은 신입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인데 함께하는 이벤트도 없고, 촬영을 즐기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게 활약하는 출연자는 김광규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에 위기가 찾아오자 멤버들과 제대로 안면을 트지도 못한 정유석과 <불청>의 믿을맨 이연수가 등판해 알쏭달쏭한 썸으로 빈자리를 채운다. 덕분에 러브라인이 잠시 흥했지만 다른 출연진의 비중이 약화되면서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던 유사가족 커뮤니티가 주는 재미는 다 까먹고 말았다.



<불청>은 이제 더 이상 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커뮤니티와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특별한 침체기를 겪지 않았던 이유는 고정, 로테이션, 새 친구로 나뉘는 특유의 캐스팅 시스템이 꾸준히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커뮤니티의 매너리즘과 정체를 비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특허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오랫동안 얼굴 보기 힘든 출연진의 빈자리가 더 아쉽게 보인다. 계급을 떠나 모든 출연진들이 지난해 <불청>에서 느꼈던 즐거움,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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