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최명길과 김상헌 둘 다 답이 아니라는 성찰에 대하여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남한산성>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묵직한 정통사극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 가운데, 국제정세 교체기의 국란을 그렸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아전인수 격의 감상기가 더해져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의 만듦새는 좋은 편이다. 민족주의적 울분이나 카타르시스에 기대지 않고, 대립되는 두 입장을 차분하게 풀어내며 긴장을 이어가는 묘미가 상당하다. 하지만 극의 균형점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세한 독해가 필요하다.



◆ 최명길과 김상헌

병자호란 때 주화론과 주전론을 주장하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결은 유명하다. 1981년 대하드라마 <대명>에도 두 신하의 대립이 나온다. 당시 독재정권 하에서 흑백논리에 익숙해있던 시청자들에게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인 두 신하가 모두 충신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왜 이토록 오래된 드라마를 회고하는가. 영화 <남한산성>의 의미를 고작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의 ‘썰전’을 감상하고, ‘그들 모두 충신이었네’ 식의 교훈을 얻는 것이 낡은 감상법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남한산성>의 빛나는 점은 두 대신의 화려한 말잔치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상대화시키는데 있다. 영화는 두 대신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펴지만, 자신의 주장에 따르는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인간이다. 이들과 대비되는 영의정과 인조(박해일)를 보라. 최명길과 김상헌의 말이 가치 있는 이유는 자기 말에 목숨을 걸 정도로 일관된 신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영의정이나 인조처럼 신념도 실행력도 없는 이들은 비루해 보인다. 한편 영화 <남한산성>은 두 대신의 말이 무색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청태종과 민초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이들의 말싸움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 조선의 축소판

<남한산성>은 조선왕조의 본질과 운명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인다. 여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한꺼번에 녹아있다. 흔히 예송논쟁이니 당파싸움이니 하며 조선의 정치를 부정적으로만 그리지만, 고도로 발달된 학문적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따졌던 정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명분과 예를 중시했고, 사대부들은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였으니 숭고한 면이 있다. 그러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국방에 소홀했고, 명분만 내세운 외교참사로 전쟁을 자초했다. 또한 잔혹한 신분제와 민생을 도외시한 지배층으로 인해 백성들은 전란과 기아에 시달렸다. 결국 조선은 안팎으로 무너져 내리게 되었는데, 변변한 전투 한번 치러보지 못하고 치욕적인 망국을 맞는다.

<남한산성>은 500년 조선의 난맥상을 47일간의 항전기록에 고스란히 담는다. 성 안팎에서 백성들이 죽어 가는 와중에 어전회의가 열린다. 1만 3천명의 군사가 겉보리 한 말도 지니지 않은 채 남한산성에 들어와 성안의 식량을 배분할 일을 왕에게 물으니, “알아서 잘” 배분하란다. 건초가 없어 말이 굶으니, 병사들에게 방한용으로 나눠준 가마니를 거두어 말에게 먹인다. 그나마도 곧 떨어져 말이 죽으니, 말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인다. 말을 일찍 포기했더라면 가마니도 남고 말고기도 많았겠지만, 우유부단으로 계속 악수만 둔다.

유일한 전면전이었던 북문전투는 무능의 끝을 보여준다. 영의정의 엉터리 지휘로 300명이 죽자, 패전의 책임은 애먼 무관에게 돌아간다. 청군에게 봉쇄된 산성에서 새해라고 명나라 황제를 향해 제를 올려, 청태종을 더욱 화나게 한다. 결국 화친이냐 전쟁이냐 시비하며 시간만 끌다가, 피는 피대로 보고 굴욕은 굴욕대로 당하는 최악의 결말을 맞는다.



◆ ‘썰전’을 무색하게 만드는 청태종과 민초들

최명길은 인조반정의 공신이다. 숭명반청은 반정의 명분이었으므로, 인조와 서인세력은 이를 표방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정묘호란(1627)이 일어나자, 최명길이 강화에 나섰다. 그는 현실적인 자각을 통해 청의 군사력이 조선과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고, 조선이 외교적인 균형만 잡아준다면 청은 조선과 전쟁할 뜻이 없음을 알았다. 또한 청이 야만적이라 대화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았다. 오히려 대화가 되지 않는 이들은 조정대신들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은 최명길이 청과 대화한 뒤, 조정에 돌아가 이를 전할 때 벽을 뚫는 듯한 답답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영화 속 청태종은 위엄 있게 등장한다. 성곽을 무너뜨리자는 용골대에게 “내가 여기에 온 것과 오지 않은 것의 차이를 모르겠느냐. 내가 고작 작은 성곽 따위를 무너뜨려야겠느냐.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해야지”라 말할 때, 남한산성은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청태종이 인조에게 보낸 통첩서한은 간담이 서늘한 느낌을 담고 있다. 간결한 문체 속에 유목민족 특유의 호방함과 속도감이 느껴진다.



최명길이 만고의 역적이 될 것을 각오하고 “삶의 길”을 말하는 것은 청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명학을 받아들인 학문적 배경도 한 몫 했다. 양명학은 주자학과 달리 합리성과 실용성을 중시한다. 최명길의 주화론은 합리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 조정과 유림들의 대세는 주전론이었지만, 갈수록 주화론으로 기울었다. 역사와 원작소설에는 성안의 군인들이 항복을 주장하며 주전론자들을 압박했던 것이 묘사되어 있다.

영화 <남한산성>은 민초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왕에게 길을 안내했던 뱃사공이 청군에게 길을 인도하겠다고 말한다. 김상헌이 “당신은 조선 백성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왕에게 좁쌀 한줌 받지 못했으니, 청군에게 곡식을 좀 얻고 싶다”고 답한다. 김상헌이 대장장이 날쇠(고수)에게 중책을 맡기면서 “전쟁이 끝난 뒤, 왕께서 상을 내릴 것”이라 말하니, 날쇠는 “왕을 위해 가는 게 아니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간다”고 말한다. 그는 “사대부들이 명을 섬기든 청을 섬기든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건 봄에 씨뿌리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굶주리지 않는 삶”이라 말한다.



◆ 척화론자라면 영화 속 김상헌처럼 죽었어야지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굉장한 심리적 진폭을 겪는다. 그는 자신이 죽인 뱃사공의 손녀를 곁에 두고 죄의식을 느낀다. 또한 마지막에 날쇠에게 소녀를 맡기고, 뱃사공을 베었던 칼로 자결한다. 이는 원작에는 없는 설정들이다. 영화 속 김상헌은 근왕주의적 세계관에 묶인 인물이긴 하지만, 올곧은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점과 백성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는 점에서 비장미와 인간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김상헌의 성장과 자결은 영화적 허구일 뿐 사실이 아니다.

실제 역사와 원작에서 김상헌은 자결을 시도했으나 사람들에 의해 구해진다. 전란 직후 주전론을 폈다는 이유로 청에 끌려가 처형된 학자들도 있었지만, 김상헌은 포함되지 않는다. 전란이 끝나고 3년 후에 김상헌은 파병반대 상소로 청에 끌려갔지만, 6년 뒤 조선으로 돌아온다. 이후 북벌론의 이념적 상징으로 존경받았고, 대동법 시행을 적극 반대했다. 사후에는 권력을 장악한 후손(안동 김씨 문정공파)들에 의해 척화신으로 추앙받았다.



영화 <남한산성>이 역사나 원작과 달리 김상헌의 자결을 그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영화의 주제와 감독의 역사관이 응축되어 있다. 영화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썰전’을 표면에 배치하지만, 청태종과 민초들에 의해 ‘썰전’이 공허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더 무가치해지는 쪽은 김상헌의 말이다. 시간도 김상헌의 편이 아니다. 여기서 균형을 맞추려면 김상헌에 무게 추를 더해야 한다. 영화는 김상헌에게 인간적 고뇌와 비장한 결단을 얹는다. 뱃사공을 베는 김상헌과 날쇠에게 절하고 자결하는 김상헌 사이에는 굉장한 반성이 서려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은 실제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영화에서만 구현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조선의 지배이념을 떠받들어온 주체들에게 이런 반성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은 이러한 반성이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감독의 비판의식을 담은 결말이다.



◆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은, 최명길도 김상헌도 왕도 없어야

영화 <남한산성> 속 김상헌과 최명길의 마지막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김상헌이 무엇을 얻었는지 묻자 “왕이 교체되거나 청에 끌려가지 않은 것”과 “성안 백성들의 목숨이 보존된 것”이라 답한다. 그렇게 목숨을 보존해 무엇 하느냐고 물으니, 최명길은 “백성과 함께 새로운 날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답한다. 그러자 김상헌은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은, 최명길 당신도 없고, 김상헌 나도 없고, 우리가 모시는 왕도 없어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기서 느꼈소.” 라고 답한다. 이는 원작에 없는 대사로 감독이 넣은 것이다.

<남한산성>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을 내세우지만, 둘 중 누가 옳은지 선택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둘 다 옳았다는 해묵은 양시론을 펴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둘 다 답이 아니라는 역사철학적 성찰을 곱씹게 한다. 척화론자들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영화 속 김상헌처럼 반성과 자결이 뒤따랐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의 척화론자들은 아무런 반성도 없었으며, 오히려 후손들에 의해 상징적인 권력으로 추앙받았다. 최명길 같은 주화론자에게도 전적인 지지를 보내기 힘들다. 그가 말하는 ‘백성과 함께 가는 새로운 길’이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조는 전란에도 왕위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하자는 소현세자를 제거하고 계속 왕위를 이어가는데 성공한다. 최명길은 이후 조정을 주도하며 전란수습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회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서인세력은 이후 소론과 노론으로 분파하였다. 최명길의 후손들은 소론으로 권력투쟁에서 밀려나고, 김상헌의 후손들은 노론으로 세도가가 되어 개혁과 개화를 가로막았다. 조선의 낡은 질서와 기득권층은 계속해서 살아남았고, ‘백성과 함께하는 새로운 날들’은 오지 않았다.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은, 최명길도 없고 김상헌도 없고 왕도 없어야 이루어진다는 대사의 의미가 진정으로 와 닿는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백성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감독의 역사관을 재차 확인시킨다. 민들레가 피고, 날쇠의 딸이 된 소녀는 강가에 연을 날리러 간다. 전란 후 50만 명이 끌려가는 참화를 맞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민들레 같은 생명력으로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그렇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남한산성>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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