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요. 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되고 또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되는지, 작품을 시작할 때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연기가 어색할 수도 있고, 가면서 또 맞아갈 수도 있고, 그게 저는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제가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건 얼마나 시청자를 공감시켰고, 얼마나 설득을 시켰느냐, 얼마나 캐릭터에 독창성이 있느냐 초점을 맞추자는 거예요.”

- O'live <이미숙의 배드신>(Bad Scene)에서 장혁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지우고 싶은 인생의 나쁜 기억들을 허심탄회하게 꺼내 보이는 O'live <이미숙의 배드신>, 첫 회에 초대된 장혁은 ‘매 작품 초반 불거져 나오는 연기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했다. 캐릭터의 이해도에 따라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시청자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그래서 독창적인 캐릭터가 나와 준다면 그것으로 자신은 족하다는 얘기다.

출발과 결과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과정을 더 중요히 여기는지라 작품 선택은 물론 캐릭터에 맞는 의상이며 세세한 부분까지 제작진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되짚어 보았더니 과연, 그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제대 후 복귀작 MBC <고맙습니다>의 민기서 역부터 최근의 SBS <뿌리 깊은 나무>의 강채윤 역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아온 캐릭터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의 고뇌와 혼신을 다한 노력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가.

그리고 피해갈 수 없는 배드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04년 군 입대 당시의 상황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처음에는 관심 사병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부대원들의 배려 덕에 차차 벽을 터놓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제대 당일, 발은 앞을 향하고 있어도 생각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색다른 감정에 휩싸일 정도였다니 얼마나 부대원들과 격의 없이 지냈는지 익히 알만하지 않나.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독서량도 증가했고 화법과 화술에 대한 공부도, 견문도 자연스레 넓힐 수 있었고 따라서 배우로서의 기반 또한 한층 풍성해졌다는데, 잘못 꿰진 첫 단추를 다행히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군 시절이 그를 얼마만큼 바꿔놓았는지는, 그리고 그 자숙의 공백기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음은 <고맙습니다>를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연기도 마찬가지만 언제 어느 때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처해진 상황은 변화된다는 것을, 그는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시간이 지난 후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입대 전 인터뷰의 약속대로 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연기자로서 한층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까.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본다. 애당초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좋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 이상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각자의 몫이 아닐까?






그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은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도 표가 난다. 그는 8일 <이미숙의 배드신>과 10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연이어 이 두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작품 홍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같았겠지만 여느 연예인들과는 달리 중복되는 내용이 거의 없는 진심어린 토크를 보여줬다. 솔직히 여기서 한 얘기 저기서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또 하고, 몇 년 째 같은 얘기 사골처럼 우려먹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들어 주목받고 있는 붐만 해도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매번 박효신 모창이며 ‘붐광 댄스’로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지 않나. 그에 반해 장혁은 간혹 같은 질문과 맞닥뜨렸을 때도 진솔하되 흐름과 맥은 달리하는 센스를 발휘했는데 같은 절권도 시범, 가족 얘기, 군대 얘기가 중간 중간 등장했지만 소재는 같아도 디테일이 달랐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 지루하지 않았던 것.

예를 들면 같은 아빠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더라도 한번은 아이가 태어난 날의 감동을, 한번은 아이를 재울 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식으로 내용을 달리한 것이다. 이를테면 같은 새우로 한쪽은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다른 한쪽은 소금구이를 내놓은 격이라고 할까? 물론 장소도, 진행자의 진행 스타일도 각기 다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시청자를 배려해 이야깃거리를 준비했기에 차별이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재료로 식상하지 않은, 서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낸 양쪽 제작진도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르게 살고 있다는 장혁. 4인용 자전거를 앞에서 끌어야 하는 가장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믿음이 가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을 중히 여기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O'liv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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