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 정려원, 이런 여주인공 흔치 않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여주인공 마이듬(정려원)은 승소를 위해서라면 합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7년 차 에이스 검사다. 마이듬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여주인공과는 확실하게 거리를 둔다. 수많은 그렇고 그런 아침드라마나 일일극에서 악녀들은 감정적인 성격의 기복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듬은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여기에 배우 정려원 특유의 힘 뺀 연기가 덧칠되면서 마이듬은 꽤 쿨한 매력을 갖춘 인물로 표현된다.

물론 마이듬 특유의 성격은 그녀가 검사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생존법일 수도 있다. 그녀는 여자라서 약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는 상황들을 일찌감치 거부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약삭빠른 사회생활의 처세를 배웠을 것이다.

심지어 그 피해자가 같은 여성일 경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부장검사의 특수부로 같이 가자는 은밀한 제안을 듣고 솔깃해 부장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기자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설득한다. 부장검사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고. 심지어 마이듬이 여기자가 성추행 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동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런 소송은 성공할 수 없으니 그냥 빨리 발을 빼는 것이 낫다는 식으로 설득할 따름이다. 마이듬은 감정적인 악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다만 여기자에게 말한 것처럼 성공 가능성 없는 일에는 힘을 빼지 않는다. 이 또한 그녀가 성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득한 처세술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마녀의 법정>은 마이듬과 달리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여성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도 넌지시 보여준다. 마이듬의 어머니 곽영실(이일화)은 억울한 피해자를 위한 제보를 하려다 공안형사 출신의 국회의원 조갑수(전광렬)에 의해 실종 당한다. 또 성폭력 관련 최다 처리 실적 보유자인 민지숙(김여진) 부장검사의 여성 아동범죄 전담부는 검사들 사이에서 출세를 위해서라면 기피해야 하는 부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마이듬은 정의를 위해서는 꿈쩍하지 않지만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상하관계 따위 쿨하게 털어버린다. 마이듬은 부장검사의 제안이 속 빈 강정이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재빠르게 본인의 노선을 변경한다. 그리고 징계위원회에서 부장검사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이어 부장검사를 향해 시원한 독설을 날린다. 이처럼 그녀의 선택과 정의로움이 맞물릴 때 드라마는 의외로 시원시원한 장면을 선사한다.

<마녀의 법정>의 마이듬 캐릭터는 꽤 매력적인 건 틀림없다. 비슷한 성격 유형의 <병원선> 여주인공 송은재(하지원)보다 훨씬 더 개성 넘치고 할 말은 다하면서 촉까지 좋은 인물이다. 반면 마이듬은 반감을 살 여지 역시 충분하다. 절대악의 상징처럼 보이는 조갑수가 있지만 마이듬 역시 딱히 정의로운 인물로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녀의 법정>이 2회에서 다룬 성폭행 사건은 이 드라마를 더더욱 모순에 빠지게 만든다. <마녀의 법정>은 대학원생 남제자에게 성폭행 당한 여교수의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실은 여교수가 동성애자인 남제자를 성추행한 일로 반전된다. 여기에 법정에서 피해자가 된 남제자가 검사 측에 의해 아웃팅을 당하는데 이 또한 승소를 위한 마이듬 검사의 큰 그림임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부담스러운 찜찜함을 남기며 승소로 끝난다. 자극적인 전개 때문에 짜릿함이 넘치지만 과연 정당한 전개인가, 혹은 이렇게 쉽게 풀어갈 문제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가 어떤 심정일지 생각 안 하느냐는 동료 검사 여진욱(윤현민)의 질문에 마이듬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걸 내가 왜 해야 되죠? 난 검사지, 변호사가 아니거든요.”

맞다, <마녀의 법정> 또한 법정 드라마지 법정은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는 현실이 워낙에 더러운 경우가 많기에 법정보다 오히려 법정 드라마에서 더 인간적인 정의가 그려지기를 시청자는 바란다.



여하튼 <마녀의 법정>은 겨우 2회 만에 흥미를 끌고 논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시청자는 계속해서 드라마 속 마이듬의 뒤를 따라간다. 속 시원한 주인공이 속물스럽고 뻔뻔한 주인공으로 느껴지는 순간 드라마 자체가 매력을 잃을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수많은 논란의 촉수를 건드리는 위험한 선택을 한 <마녀의 법정>이 어떤 드라마가 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그 흐름을 어떻게 푸는지에 따라 자극적인 졸작으로 남거나 혹은 한국사회의 여성문제를 흥미진진한 법정 드라마에 녹여낸 수작으로 남거나 그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다행히 진지함과 유머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감각과 드라마에 깔아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려는 밑밥들을 볼 때 아직까지 뭔가 이 드라마에 기대가 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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