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희섭, 오버하지 않고 힘 빠진 듯 연기하는 흔치 않은 배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최근 배우 심희섭은 두 편의 다른 드라마에 동시간대에 등장했다.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그는 예쁜 부잣집딸인 지홍아(조보아)의 곁에서 스스로 호구 역할을 자처하는 의사 최원준이었다. 같은 시간에 방영한 JTBC <알 수도 있는 사람>에서는 여주인공 이안(최수영)의 죽은 전 남친인 대학생 김진영이었다.

물론 <사랑의 온도>에서 심희섭은 주연이라기보다 살짝 뒤로 물러선 조연의 역할이다. 그는 드라마에서 간간히 한두 씬 정도만 등장할 따름이다. 한편 올 초 방영된 사극 <역적>의 등장인물이었던 길현의 이미지로 그를 기억하는 시청자도 있을지 모른다. <역적>에서도 길현은 아기장수인 주인공 홍길동(윤균상)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두 드라마에서 심희섭의 연기나 배우가 지닌 캐릭터에는 꽤 인상적인 촉감이 있다. 보통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호구남이나 문약한 남자들은 그만의 뾰족하고 예민한 느낌들이 있다. 하지만 심희섭의 연기에는 이 예민함 위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부드러운 베일이 덧씌워져 있다.

그는 호구지만 콤플렉스에 찌들어 있지 않고, 그는 예민하지만 그 예민함이 날카로움보다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심희섭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이 연기했던 대학신입생 승민에게서 순수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내버려두고 뾰족하고 가시 돋은 것들만 뽑아낸 느낌이다. 모난 곳 없이 눈 코 입이 유순하게 빠진 이 배우의 얼굴 또한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한다. 힘주어 말할 때도 부드럽게 뒤가 뭉개지는 그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랑의 온도>에서 심희섭이 연기하는 최원준은 호구를 자처할 뿐 스스로를 비하하는 남자는 아니다. 호구, 라고 말할 때도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사랑의 온도>에서 실상 그는 그저 무탈하게 잘 자란 집안에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남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밑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삶에서 밑지는 것이 거의 없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남들이 알아주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쉐프라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한다. 단순히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는 남자는 은근히 매력적이다. 사실 상 그것 자체가 굉장히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희섭은 조금은 코믹할 수도 있는 이 인물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준다.

이런 심희섭의 연기나 분위기, 혹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설정은 단번에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는 젊은 남자배우 중에 오버하지 않고 약간은 힘 빠진 듯한 연기를 하는 흔치 않은 배우 중 하나다. 혹은 보통의 젊은 남자배우들이 연기하는 전형적인 남주 캐릭터 연기와 거리가 멀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에너지 넘치고, 허세와 느끼함을 오가고, 비현실적인 매력으로 점철된 가상의 인형 같은 남친 캐릭터는 아니라는 말과도 통한다.

고로 이 배우가 보여주는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딘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 담백한 현실 남친과 통하는 면이 있다. 조각 같은 얼굴이나 탄탄한 근육질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은근히 수줍어하고 친구 같고 다정하고 볼수록 귀염상인 그런 풋풋한 남친 말이다.



8월에 10부작 웹드라마로 공개되었다 추석특집으로 방영한 JTBC <알 수도 있는 사람> 속 김진영은 이런 심희섭의 현실 남친 매력을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다. 드라마 속에서 김진영은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여주인공 이안은 전 남친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 열 번의 기회를 가진다. 드라마는 여주인공 이안이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김진영과의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리고 드라마 내내 대학시절에서 만나 남친의 군입대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다독이고, 다시 사랑했던 연인의 과거사가 펼쳐진다.

드라마는 지금의 젊은 연인 혹은 한때 젊은 여인이었을 이들이 체험했을 다정다감과 아웅다웅을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당연히 이 장면들이 사랑스러운 건 주인공을 맡은 최수영과 심희섭의 자연스러운 연기합 덕도 크다. 특히 심희섭은 이 드라마를 통해 멋있고 괜찮은 척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에 빠진 남자와 삶의 무게나 이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십대 남성의 현실적인 몽타주를 과장법 없이 섬세하게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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