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 너무 끔찍한 성폭행사건 제정신에 수사하겠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쩌면 저렇게 끔찍할까. 나이 어린 딸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는 한 아이의 인생을 피기도 전에 꺾어버린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겨우 5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 형량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건 그 5년 후 이 아이는 겨우 중학생이 될 거라는 점이다. 5년 후 그 아이에게 다시 출소한 의붓아버지가 돌아온다고 상상해보라. 이만한 공포가 있겠는가.

KBS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그리고 있는 아동성폭행 사건은 우리가 막연히 신문 사회면에서 읽고 혀를 찼던 그 사건들을 더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다. 5년 전 그 아이 아름이의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던 여진욱(윤현민)은 어쩌면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검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을 게다. 소아정신과 의사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들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5년이 지난 후 돌아온 의붓아버지는 아름이를 납치하기 위해 수면제를 넣은 요구르트를 아름이 모녀에게 먹인다. 하지만 의식을 찾은 아름이 엄마가 그를 막아서면서 서로 칼에 찔리는 부상을 당한다. 의붓아버지는 뻔뻔하게도 아름이 엄마가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칼을 찔러 죽이려 했다고 증언한다.



사실 여진욱 검사가 처한 것처럼 이런 상황을 옆에서 바라본다는 건 제아무리 검사라고 해도 이성적으로 사건을 대하기가 쉽지 않을 게다. 아동 성폭행 같은 경우 법 집행에 있어서 빈틈이 많아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에 보복에 의해 2차 피해를 입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사건을 알리는 일조차 두려워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이건 이전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일반인 동영상 유출사건’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가해자만큼 피해자가 2차 피해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 사건들의 결과는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난도질 해버리지만 의외로 이들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수위가 낮은 편이다. 최근 벌어진 ‘어금니 아빠’ 같은 끔찍한 사건에 대해 대중들이 엄벌을 처해야 한다고 나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녀의 법정>이 다루는 사건들은 이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끔찍한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가 마이듬(정려원) 같은 다소 목적 지향적인 멘탈갑의 검사를 판타지처럼 세워둔 건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의 ‘마녀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면 끔찍한 범죄 속에서 제대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모두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은 자신이 강간당할 뻔했던 학생이 여교수 강간 미수범으로 몰렸지만 스스로 성소수자라는 걸 커밍아웃하지 못하게 되자 오히려 변호사측을 이용해 그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여교수의 추행사실을 폭로할 수 있게 된 사건이나, 자신이 찍힌 동영상이 파기됐을 거라 믿는 가해자의 뒤통수를 쳐 그 동영상을 따로 저장해 뒀다가 증거자료로까지 내놓아 사건을 해결하는 마이듬이라는 캐릭터는 결코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 정도로 오로지 나쁜 놈들에게 더 높은 형량을 물린다는 그 목적하나에 충실한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아니면 이러한 끔찍한 성폭행, 성추행 사건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걸 이 캐릭터가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마이듬이 마녀 같은 검사여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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