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인터뷰]

[서병기의 프리즘] KBS 휴먼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자’를 연출한 KBS 전진학 PD를 만났다. ‘도전자’는 열대의 섬 하와이에서 신체적, 지적, 사회적 미션 게임을 통해 최종 생존자를 가려 김호진을 우승자로 탄생시킨 가운데 끝났다. 서양의 히트물을 우리 스타일로 변형한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새로운 미션 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전PD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였지만 기자 또한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시청한 팬이다보니 인터뷰가 아니라 무슨 대화 처럼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전진학 PD는 그동안 ‘출발드림팀1,2’와 ‘1대 100’을 연출했다.
 
서병기(이하 ‘서’)=‘도전자’ 첫 회가 방영되고 비판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 욕먹을 줄 알았나?

전진학 PD(이하 ‘전’)=그럴 줄 알았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보여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휴먼 서바이벌 하니까 휴머니즘으로 안다. 훈훈한 인간애를 기대한다. 그런 것이 아니고 지극히 인간적인, 불편해도 인간적인 면을 탐구하자는 거였다. 사실 훈훈함은 피날레에서 많이 증명됐다.
 
서=‘도전자’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전=서양에서는 미션 서바이벌과 오디션 프로그램이 예능의 양대산맥이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오디션은 잘되는데 미션 서바이벌은 불편해한다. 가무를 좋아해서인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즐기는데 반해, ‘기적의 오디션’처럼 연기자 오디션은 잘안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서=미션 서바이벌의 장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전=미션 서바이벌은 한 가지 재능을 뽑는 게 아니라 누구나 참가해 탈락시키는 과정에서 철학적인 장치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장점과 한계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장점은 있지만 추한 모습이 드러나는 불편함도 있다. 드라마로 치면 막장적 성격이라고나 할까. 공영방송이다 보니 무작정 하기는 힘들었다. 현실과 타협해 지덕체, 문무를 겸비한 바람직한 인재상, 글로벌 인재를 뽑는 식으로 포인트를 두었다. 심사위원을 둔다든가 해서 약간 변화시켰다. 빅브라더나 서바이버는 심사위원이 따로 없다. 어프렌티스는 진행자인 도날드 트럼프가 심사위원이기는 하지만 자기 회사에 근무할 사람을 뽑는 거다. ‘도전자’에서는 심사위원을 둬 중심을 잡아주게 했다. 자체 대결로 가면 이전투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전투구를 불편해하는 시청자가 많다.

서=서양의 히트작을 변형해보니 어떤가
 
전=서방의 히트틀이지만 우리 나름의 변형을 가하려고 노력했다. 성공한 면도 있지만 원조 서바이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족 못드린 면도 있다. 서바이벌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연착륙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강하면 강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어느 한 가지 노선을 정해야 되는데...
 
서=서양에는 출연자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도 괜찮은가?
 
전=자체 이전투구를 낄낄 거리며 소화하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진검승부를 펼쳐 탈락자를 뽑으면 훨씬 리얼하다. 사실 심사위원이 있으면 출연자들이 위축된다. 우리는 TV에 도전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IMF 직후에는 공익 요소 없이 예능물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시즌2 계획은?
 
전=시즌2는 강한 것을 강조해야 할듯하다. 이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학습돼 난이도를 높여도 될 것 같다. 교양적인 느낌을 조금 탈색시켜도 될듯하다. 시즌2는 관계에 집중하고 싶다. 지덕체라는 추상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 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겠다. 남이 떨어져야 내가 살지만, 동료애가 발휘되고 자신이 떨어질줄 알면서도 소신을 지킨다든가 하는 모습은 작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는 대단하지 않지만, 수많은 오락물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도전자’에 응원을 보낸 것은 이 때문이지 않겠느냐.
 
서=참가자들에 대해 묻겠다. 탈락후보자를 동료들이 직접 뽑았다. 마지막회에는 자신의 점수의 10분의 1을 최종 3인중 한 사람에게 주는 방식을 썼다.
 
전=동료투표는 친소관계를 떠나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정적 기회다. 구원(舊怨)을 최소화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한방에 날리는 기회다. 허홍과 서민수 처럼 자기 표를 동료에게 줌으로써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서=강력한 우승후보였다가 탈락한 김성경이 친하게 지낸 임미정이 아닌 김지원에게 점수를 준 게 의아했다
 
전=김성경은 임미정과 친했지만 김지원과도 사이가 좋았다, 김지원은 마치 자신때문에 김성경이 탈락한 것처럼 오해를 받고 욕을 많이 먹었다. 너가 한 게 뭐 있냐, 수영복 입은 것밖에... 김성경이 아마 그런 점을 의식하고 지원에게 점수를 준 것은 아닐까?
 
서=김성경은 인터뷰 미션에서 ‘조폭’ 애드립으로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를 해명하는 탈락자 구제위원회 자리에서도 심사위원 강지원 변호사에게 말렸다.
 
전=도전자들이 거의 20일간 힘든 미션을 수행하고 동료의 탈락을 보면서 지쳤다. 마지막에는 심신이 지쳐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성경도 막바지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
 
서=강지원 변호사는 어떨때는 ‘그러하냐, 그렇지 않냐’ 양자 택일을 강요했다. 마치 죄인 심문하듯 둘 중 하나의 답을 요구했다. 여기에 말리면 안된다. 현해리도 거기에 말린 게 탈락의 큰 이유였을 것이다.
 
서=우승자 김호진은 불사조다.
 
전=김호진의 삶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간단한 사람은 아니다. 특전사 출신에 생존 교관, 그러나 성격은 온화하다. 그는 단계별 특성이 살아났다. 레드팀 내 두 번째 서열이었는데 첫 번째인 김영필이 독단적이다. 김영필을 몰아낸 후 자신이 총대를 맸지만 연패하자 과거 김영필에게 동조하던 사람의 공격까지 받게 됐다. 레드팀에는 체력을 전담하던 방창석이 자폭하고 나가니까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레드팀장 김호진이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김호진은 끝까지 살아남아 ‘도전자’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한 것이 저희로는 다행이다. 블루팀이 온화하고 레드팀은 분란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블루팀에는 김성경, 임미정의 체력이 워낙 뛰어나 다른 팀원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서=포커페이스 허홍의 탈락도 아쉬웠다.
 
전=똑똑한 친구다. 서울대 독문과 졸업반으로 유타대 교환학생으로 있었고, 미국에서 입사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포기하고 ‘도전자’에 참가했다. 상당한 전략가인데 네티즌에겐 모사꾼으로 비쳐진 면도 있다. 아마 미국에서 잡(job)을 찾고 있을 거다.
 
서=최종 3인에 여자가 2명이나 포함됐다.
 
전=김지원은 오래 매달리기에서 부각됐다. 다들 놀랐다. 심사위원들도 김지원이 최종 3인까지 살아남으면 언터쳐블이라고 했다. 김지원은 한인기업인 인터뷰 미션에서도 강인하면서 많은 장점을 보여주었고, 인터뷰한 사업가에게 ‘크리에이티브 강’이라는 별명도 붙여주는 재치를 발휘했다, 마지막 3인에 여성이 2명이나 포함됐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체력으로만 대결하는 운동회가 아니라 소셜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서=임미정이 자꾸 아줌마의 힘, 주부의 힘을 내세우던데, 셀링포인트가 잘못됐다고 본다. 서민수도 장애 부모 얘기를 자꾸 하니 안먹히더라.

전=어쨌든 임미정은 동료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누나였다.,

서=20일간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전=20일간 이동하는 날 하루를 빼면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탈락자선정이 끝나는 오후 11시가 되어야 끝난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시간에 자지 않는다. 그때서야 다음날 미션을 주기 때문이다. 대개는 잠을 줄이고, 새벽 2시까지는 구상한다. 마지막에 접어들며 체력도 바닥났다. 노래를 가르치고, 물건을 판매 하는 전략미션은 전날 밤 준비한다.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하와이의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 노래를 가르친 건 보람 있는 일이었다. 승부에서 진 팀 아이들이 자기들 때문에 한 명이 탈락해야 된다고 울고 그랬다.
 
서=시즌2는 언제쯤 방송될 것 같나?
 
전=진행을 맡았던 정진영 씨가 미니시리즈에 들어가 이르면 내년 봄 개편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시즌2는 본방 시청률을 높여야 한다. 자체 색깔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한다. 광적인 팬층과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시즌2는 일반인들을 더 뽑을 듯 하다. 비키니, 근육질 등 비주얼에 치중한 면도 있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다. 배나온 사람도 좋다. 50대 변호사, 60세 남자 등 괜찮은 출연자들이 있었지만 합류하지 못해 아쉬웠다. 다양한 직업군, 사회적 배경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서=시즌2에선 장소는 어떻게 바뀌나

전=하와이보다 더 원시적인 공간을 찾아 공생 방법을 찾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팅해 명실상부한 서바이벌 게임을 하겠다. 하와이는 도시적인 것과 바닷가라는 점이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도심 서바이벌을 할 수도 있고, 그랜드 캐넌처럼 산악지형에 갈 수도 있고, 몽골 고비사막, 바이칼 호수 등등 갈만한 곳은 많다.
 
서=시청률은 낮지만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다.
 
전=다운 받아보는 시청자가 매우 많았다. 시청률 허수가 있다. 20세기 시청률 선정 방식으로는 측정이 안된다. 김성수, 정재영 등 연예인 중에도 광팬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 가정사에 불행이 있던 사람의 참가를 권한다. 굳이 인기인이라고 해서 안될 거는 없다. 연예인이나 일반인이 촘촘하게 나왔으면 한다. 시즌2에선 시즌1 출연자가 2명 정도 참여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강지원 심사위원에게는 악플이 늘었다.
 
전=미안한 생각이다, 열심히 하셨던 분이다. 20일 동안 참가자들과 모든 일정을 같이 했다. 나름대로 대쪽 같은 소신을 펼치고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했음에도 욕 먹는 상황을 보니까 안타깝다. ‘도전자’ 심사는 매우 어렵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은 노래만 심사하면 되지만 ‘도전자’는 심사 대상과 범위가 너무 넓다.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
 
서=참가자들이 방송을 타 제법 유명해졌겠다.
 
전=길에서 많이 알아본다는 소리를 들었다. 팬들도 생겨 사진 찍자는 요구도 받는다고 한다. 나도 불과 몇 장면 나왔는데 ‘도전자’ PD다 하고 알아봐주신다.
 
서=일반인이 유명해지는 게 좋기만 할까
 
전=일반인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 끝나면 허탈할 수 있다. 서민수가 악플이 사라지니 허전하다고 했다. 서양에는 미션 서바이벌 출신이 이런 지명도를 바탕으로 토크쇼 진행자가 되고 정계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도전자’는 연예인이 되는 게 아니다. 캐릭터가 드러나거나 어느 정도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와야 한다. 방송이 끝난 후 몰려오는 상실감을 각오해야 한다. 시즌2 지원자가 많다. 이런 걸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