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닌 집착, ‘사랑의 온도’가 빠져버린 늪

[엔터미디어=정덕현] 드라마 제목은 <사랑의 온도>인데 어째 집착이 더 보인다. 그토록 멋진 젠틀맨이자 배려남으로 보였던 박정우(김재욱)가 그저 그런 찌질하고 집착하는 남자로 흑화한 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재앙이다. 온정선(양세종)에게는 형처럼 자애로운 그였고, 이현수(서현진)에게는 더 이상 친절할 수 없는 사장님이자 남자였다.

하지만 온정선과 이현수가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임을 알게 된 박정우는 ‘이상한 집착’에 빠져버렸다. 이현수가 선을 그으며 온정선에게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도 박정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현수가 철벽을 치자 온정선에게 대놓고 ‘치정싸움’을 할 것임을 선언하고 그가 이 싸움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물론 박정우가 이런 집착을 드러내는 건 그가 생각하는 사랑관과 인생관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이든 사업이든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은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손에 들어올 것이라 낙관한다. 자신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요함이 박정우의 성공을 거두게 한 요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업과 사랑은 다르다. 제 아무리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은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박정우의 이런 사랑도 잃고 우정도 잃는 행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온정선도 이현수도 그리고 이 과정을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혹자들은 어쩌면 박정우의 이런 행보가 두 사람을 모두 아끼는 마음에서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그만의 방식일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어째서 이 멋진 캐릭터가 이처럼 민폐 캐릭터로 전락했을까.

그러고 보면 드라마 초반 매력적이었던 캐릭터가 어느 순간 민폐 캐릭터가 된 건 박정우만이 아니다. 부유하게 자랐지만 드라마작가를 꿈꾸며 이현수를 따르던 지홍아(조보아)도 사정이 비슷하다. 온정선을 좋아하지만 그가 이현수에게 일편단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심지어 악녀가 되어가는 캐릭터다.



어쩌다 이 드라마는 초반의 그 신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뻔한 <사랑과 전쟁>류의 치정극으로 치닫고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의 이야기 소재들이 너무 앙상하다는 것이다. 사랑의 이야기를 ‘온도’에 빗대 그 관계의 심리를 들여다보려 했다면 좀 더 깊이 있고 심도 있는 부분까지 갔어야 이야기가 뻔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변화가 보여주는 우리네 삶의 단면들을 포기한 채, 보기에도 식상한 삼각, 사각 멜로의 늪에 빠져버렸다.

지홍아가 박정우를 자극해 이현수를 쟁취하라고 종용한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이제 온정선과 이현수의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해 활용된다고 해도 드라마가 그 어떤 최소한의 품격마저 잃어버리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는 실망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커녕 더 큰 실망감으로 외면 받는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듯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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