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뜬다’가 잃어버린 초심 ‘더 패키지’ 안에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년 전 JTBC <뭉쳐야 뜬다>가 시작했을 때만해도 이 예능 프로그램이 괜찮은 반응을 얻을 거라 기대한 이들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핫한 스타도 없고 중년의 아저씨들 넷이 패키지여행을 가는 프로가 무슨 재미가 있으려니 했겠지.

하지만 김용만, 안정환, 김성주, 정형돈 등은 물론 함께 패키지투어를 떠난 여행객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잔잔한 예능에는 말 그대로 소소한 재미들이 물씬 넘쳤다. 그건 예능프로의 MC로 주로 활동하는 입담이 좋은 네 명의 수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웃기기 위해서가 아닌 인간적인 ‘쌩얼’이 슬며시 보일 때 이 프로그램은 반짝반짝 빛났다. 웃기는 남자 정형돈이나 스포츠 스타 안정환이 고소공포증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면서 벌벌 떠는 모습 같은 것들은 쉽게 볼 수 없는 재미니까.

허나 그 재미보다 더 깊은 재미는 여행지에서만 느꼈던 감정들을 불러올 때였다. 출연진은 삶의 고충이나 슬럼프에 대해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에게 슬며시 털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공간의 낯선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꼼꼼 숨겨둔 나의 아픔을 털어놓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게 털어놓고 보니 별 게 아니었구나, 라고 느낄 때도 있지 않은가. <뭉쳐야 뜬다>에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무언가 위로가 되는 예능이었다.



이처럼 <뭉쳐야 뜬다>는 늦은 밤 편안하게 대리 패키지여행을 떠나며 여행이 주는 힐링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였다. 하지만 최근의 <뭉쳐야 뜬다>는 초심을 잃은 것 같다. 멤버들과 친분이 있는 게스트들이 등장할 때만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때도 게스트 연예인보다 투어 가이드나 일반인 패키지 여행객들의 모습이 더 재미있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최근 아이돌 트와이스와 떠난 다낭 패키지여행에 이르면 <뭉쳐야 뜬다>만이 지닌 소소한 매력은 아예 사라진 인상이다.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이 예능에 반전을 노린 한 방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음악방송 채널에 등장하는 아이돌 다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이 설정에 무슨 개성이 있을까? 트와이스는 빛나지만 정작 프로그램 자체는 더 빛을 잃는 것을. 더구나 모양새도 좀 이상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20대 여성 여행객들 옆에서 알짱대며 추근거리는 중년 아저씨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그런 씁쓸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뭉쳐야 뜬다>가 잃어버린 매력들은 JTBC 드라마 <더 패키지> 안에 존재한다. 처음 쓸데없이 웅장한 예고 탓에 정작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던 <더 패키지>는 그냥 낯선 사람들이 함께 프랑스로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이야기 안에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과 체험을 충실히 녹여 넣는다.

<더 패키지>는 프랑스의 멋진 화면과 여주인공 윤소소(이연희)의 이름처럼 소소한 각 여행객들의 사연을 배치시킨다. 겉보기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커플처럼 보이던 여행객들이지만 알고 보니 한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1톤짜리 배낭 같은 말 못할 깊은 사연들이 있는 것이다.

장년의 부부는 여행지에서 흔히 보이는 개념 없는 진상 남편과 그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아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내는 암으로 시한부판정 받은 사실을 숨기고 있고, 남편은 아내가 환자라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다. 오래된 젊은 연인은 겉보기에는 별 문제 없지만 서로에게 묵은 감정을 쏟아내지 못한다. 김경재(최우식)의 여자친구 한소란(하시은)이 변비 때문에 똥을 못 싸는 건 알고 보면 이 커플의 상황에 대한 코믹한 상징인 것이다.



한편 산마루(정용화)는 사내커플이었지만 혼자 휴가를 내고 패키지투어에 오른다. 여자친구는 차마 회사의 눈치가 보여 차마 떠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회사의 비리를 밝히려는 산마루와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 그걸 덮으려는 여자친구와의 갈등이 있다. 산마루는 박물관에서 낡은 정조대를 차고 우스꽝스러운 처지가 된다. 낡은 정조대를 차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산마루는 그의 한국에서 처한 상황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더 패키지>는 한국에서의 힘들고 복잡한 일들을 여행지에서는 별 것 아닌 듯 터트려버린다. 산마루는 과감하게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한소란은 참고 있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드라마의 전개가 더 이어지면 아마도 장년의 부부는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할 것이다.

<더 패키지>는 이야기의 역동성 측면에서 볼 때는 그리 자극적이지도 그리 흥미진진하지도 않은 드라마다. 산마루 정조대 사건 같은 해프닝 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정도다. 그럼에도 별 건 아니지만, 무언가 위로가 되는 힘이 있다. 진짜 여행 역시 대부분 여행지에서는 별 것 아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무언가 위로가 되는 것처럼.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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