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미도’, 자정 넘은 시간에 편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새 주말예능 <살짝 미쳐도 좋아>는 줄임말로 ‘살미도’라고 한다. 매회 두세 명의 스타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요즘 빠져 사는 특별한 취미와 관심사를 보여주는 새로운 일상 관찰형 예능이다. 연예인의 트렌디한 욜로 라이프를 보여주면서 대중의 호기심과 공감을 사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타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살미도’가 추구하는 기획 콘셉트들인 인생을 즐기는 욜로, 연예인의 일상을 소재로 하는 관찰형 예능, 취향과 취미의 드러내기까지 모두 조금씩 철이 지난 인상이 짙다. 오늘날 신생 예능에서 일상 관찰형이란 접근은 기본 중 기본이고, 덕후를 내세우는 것 또한 파업 한참 이전에 MBC <능력자들>을 통해서 어려움을 겪은 소재다. 그런데 ‘살미도’는 놀랍게도 일상성이란 설정 하에 ‘덕후스러운’ 모습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볼거리를 얹는다.



연예인의 일상 속에서 숨겨진 매력을 감춰놓고 보물찾기를 시작하는 일반적인 접근이 아니다. 카메라 및 뷰티 관련 덕후 효민, 한강 난지지구에서 벌어진 락페스티벌에 간 러블리즈, 사회인야구에 푹 빠져있는 박철민, 쿡방과 먹방의 홍수아 등 보여주고자 하는 명확한 볼거리를 일상이란 이름으로 개별 포장해서 쇼윈도 가장 앞자리에 내놓는다.

요즘 예능 시청자들에게 이런 형태의 보여주기식 일상만큼 식상한 이야기도 없다. 게다가 게스트 체제라서 어떤 문화나 관심사를 다루든 일회용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소개하려는(어떻게 보여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는) 덕질의 함량이 높지 않거나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콘텐츠는 비게 되고, 그 썰렁함을 발랄한 자막으로 메우려고 한다.

<살짝 미쳐도 좋아>가 안고 있는 이러한 근본 문제는 <마리텔>에서 전문가보다 예능인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와 유사하다. 효린이 핀홀 카메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도대체 어떤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지, 홍수아가 아무리 남다른 식성을 자랑하고 숨겨둔 요리솜씨를 꺼낸다고 해도 먹방과 쿡방으로 어떤 새로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여자 아이돌이 공연을 즐기는 장면을 시청자들이 과연 어떤 이유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답을 유추하기란 그리 어렵진 않다.



왜냐하면 일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잔뜩 힘주고 애써 보여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무심한 듯 원래 늘 그랬다는 듯한 접근법이야 말로 일상 예능의 최우선 덕목이다. 하지만 콘셉트가 미리 정해져 있는 <살짝 미쳐도 좋아>의 경우 출연자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일상성은 대폭 옅어진다. 특히 락마니아로 출연한 러블리즈의 락페 참가기는 참사에 가까운 결과였다. 저돌적인 락스프릿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일회성 방송용 체험 수준인 촬영분으로 일상 관찰형 예능에 도전한 제작진의 무모함뿐이었다.

<능력자들>같은 덕후 예능이나 <주말엔 숲으로>와 같은 욜로 예능이 지속되지 못한 것은 호기심이나 놀라움을 지속가능한 예능의 재미로 만드는 방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매회 소개하는 다양한 취미나 취향은 그저 그런 일회성 볼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반복의 끝엔 무관심만이 남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미도’는 이러한 실패 사례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해결하지 않은 채 일상관찰형 예능에 덕후, 욜로를 함께 얹었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살짝 미쳐도 좋아>는 일상 관찰형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제작진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표본과 같다. 일상 관찰 혹은 일상을 소재로 한 리얼버라이어티가 피해야 할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실타래를 풀어갈 정서적 접근이 없고, 출연진과 시청자가 교감을 나눌 시간이 없다. 단순히 무대 밖의 수더분한 모습을 일상이라고 생각한 잘못된 판단은 특색 없는 양념을 끼얹어 꾸며진 일상을 시청자들 앞에 낸다.

처음에는 <살짝 미쳐도 좋아>의 편성 시간이 의아했다. 이슈가 될 만한 MC진과 다양한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관찰형 예능이 토요일 밤 자정을 넘어서 편성된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몇 회를 꾸준히 지켜본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SBS의 고뇌와 편성 전략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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