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관람가’, 짧지만 긴 여운 전도연의 ‘보금자리’

[엔터미디어=정덕현] 단편이지만 그 여운은 장편 못지않다. JTBC <전체관람가>에서 다섯 번째 주자로 나선 임필성 감독의 단편영화 <보금자리>가 만들어낸 소름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 강한 임팩트로 남았다. 그간 <전체관람가>가 보여준 여러 감독들의 작품들이 저마다 단편의 묘미를 살렸지만, <보금자리>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 스릴러 장르에 얹어진 만만찮은 현실인식이 느껴져서다.

제목에서 묻어나듯 <보금자리>는 집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갖고 싶지만 쉽게 가져질 수 없는 게 되어버린 집. 그래서 세 자녀를 가지면 혜택이 주어지는 ‘보금자리 주택’을 위해 이 집은 아이를 입양한다. 물론 진짜 자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택에 당첨되기 위해서다. 당첨이 되고나면 파양시킬 목적으로.

그렇게 이렇게 들어온 아이가 보통내기가 아니다. 윤종신이 시사 후 자신의 감상을 얘기했듯, 한번쯤 이런 경험을 똑같이 해본 아이의 모습이 거기서 묻어난다. 너무나 익숙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천연덕스럽게 남의 집에서 자기 집처럼 TV를 보며 잡채밥을 입에 우겨넣는 아이의 모습은 그 상처와 분노 같은 것들이 뒤섞여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임필성 감독은 그러나 시점을 아이에 맞추지 않고 이 아이를 입양한 엄마(전도연)에게 맞춘다. 그래야 아이의 위협적인 행동에 의해 생겨나는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것들을 관객이 느낄 수 있어서다. 이 역할을 맡게 된 전도연은 역시 ‘칸느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허명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단편이지만 새로 들어온 아이에게 던지는 어딘가 불안한 마음 같은 걸 슬쩍 드러내는 것만으로 관객들은 이 엄마의 시선에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임필성 감독이 <보금자리>를 통해 드러내려는 ‘일상의 악’을 전도연은 연기를 통해서도 제대로 보여주려 했다. 즉 어딘지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는 대본에 대해 가감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럴 때마다 임필성 감독은 기꺼이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보다 현실성이 강해지자 영화는 그 일상성을 더해 거기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조차 소름 돋는 사건으로 만들었다. 극화된 연기가 아니라 생활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보다 실감이 날 수 있었던 것.

전도연은 어린 나이에 결코 쉽지 않은 아이의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김푸름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연기에 있어서는 직접 시연을 해가며 이해를 돕기도 했다. 또 그렇게 작품이 다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푸름아. 이거 네 영화인거 알지?”하고 묻는 대목에서는 전도연의 남다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보금자리>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엔딩 장면 때문이었다. 결국 무언가를 결심한 아이가 부엌에서 칼을 꺼내고, 이어 아이를 가진 엄마의 배에 귀를 대는 장면으로 끝을 맺은 것. 그 엔딩이 특히 강렬했던 건 그 장면이 주는 의미심장함이 이 작품 전체의 메시지에 어떤 울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유일한 보금자리는 어쩌면 엄마의 뱃속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입양되고 파양되는 현실은 그에게 보금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엄마의 배에 귀를 대는 장면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얽힌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고픈 마음과 그게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 그러고 보면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엄마 뱃속 같은 보금자리를 표징하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엔딩 신.

<전체관람가>의 여러 단편들 속에서 <보금자리>가 빛났던 건 작품이 가진 함의가 유독 컸고, 그걸 드러내는 이야기가 단편에 걸맞게 칼로 사회의 한 단면을 도려낸 듯 짧고도 강렬해서다. 하지만 이런 대본과 연출의 힘에 더해 전도연과 박해준 그리고 어린 배우들이 만들어낸 몰입감이 없었다면 이토록 짧은 15분의 긴 여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싶다. 전도연의 첫 단편 영화 <보금자리>는 단편이 가진 매력을 여지없이 잘 보여주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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