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로 만든 3000만원짜리 ‘전체관람가’, 어떻게 봐야하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 10명과 함께 단편영화 10편을 만들어 공개하는 JTBC 영화 예능 <전체관람가>를 보는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의 공통적인 입장이다. 충무로에서 활약하는 감독들에게 쥐여진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는 빠듯해 보이고, 결과물은 늘 3000만원을 훨씬 웃도는 모양새로 뽑혀져 나온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스태프들이나 관련 업체에 열정노동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이러한 논란은 첫 번째 단편 <아빠의 검>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페이스북으로 화답하는 과정에서 점점 악화되고 있는 CG업체의 처우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오히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김선영 평론가는 공개된 아홉 명의 감독 중 여덟 명이 남자이며 다섯 편의 단편 중 여성이 극의 중심을 이끄는 작품은 한 편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근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와 걱정을 안은 채, [TV삼분지계]의 세 사람이 의견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관람가>에 대한 기대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 기왕 선의를 내세운 프로그램이라면

<전체관람가>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은 늘 곤혹스럽다. 충무로에서 장편을 만들며 상업적인 타협을 피할 수 없던 감독들이 단편이기에 자기 색깔을 밀어붙이거나 그간 안 해본 일을 저질러 보는 걸 감상하는 재미는 쏠쏠하고, 한국 관객들이 이처럼 단편영화를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게 얼마만인가 생각해보면 ‘단편을 보는 재미’를 일러주는 프로그램의 순기능을 칭찬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3000만원으로 스태프들 페이를 챙겨주기도 바빠서 결국 자기 사재를 털어야 했다는 <거미맨>의 박광현 감독의 사례를 생각하며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지면에서도 했던 이야기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옴니버스 단편 <여섯 개의 시선>의 순 제작비가 편당 5000만원이었다. 이게 벌써 14년 전 이야기다.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투자와 일개 방송사업자가 할 수 있는 투자의 규모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물가인상폭만 따져봐도 품삯이 14년 전보다는 더 필요할 거란 셈 정도는 해볼 수 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해서 제작 승인을 받고 예산을 할당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입장에서, 일각의 주장처럼 ‘영악한 TV판 사람들이 영화판 사람들을 헐값에 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영화감독들은 다들 “제작진이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고 입을 모았고, 제작진과 감독들의 의도를 넘겨짚기보단 주어진 결과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열정페이 논란이 일자 <전체관람가>는 프로그램 안에서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가 얼마나 빠듯한지, 그 제작비의 지출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아주 조금씩 밝히기 시작했다. 선의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니, 기왕이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보다 더 자세히 보여주면 어떨까? “꿈과 열정으로 이렇게 근사한 작품을 만들었다”라는 그림이 반복되기보다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이니 정부의 지원 확충과 관객들의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하다”라는 정보까지 전달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관심과 넉넉하게 확충된 제작비로 다음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면, JTBC에도 그게 크게 해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그럼에도 더 듣고 싶은 목소리

“자신의 가족을 위해 가족이 절실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네요. 이기적인 마음이 아이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아요.” JTBC <전체관람가> 다섯 번째 작품 <보금자리>의 임필성 감독이 뽑은 관객 평가 댓글이다. 불순한 의도로 아이를 입양한 부부와 언제 파양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 “영화 내내 이 가족은 보호 받아야 되고 아이가 이상하게 그려지는 것이……. 실제로는 탁이가 피해잔데.” 진행자 윤종신 씨 말대로 감독의 덫에 걸린 관객은 가족 편에 서서 불안에 떨게 된다. 마치 호러물처럼. 영화가 주는 색다른 긴장감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느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예능인들은 알지 못할 영화 제작 현장의 이모저모를 시의 적절하게 잡아내주는 또 다른 진행자 문소리의 목소리도 반가웠다.



또한 제작 PD며 촬영 감독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영화 제작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제한된 제작비로 인한 문제들은 어쩔 것인가. 몇 사람 몫을 너끈히 해낸 강가미 제작 PD는 촬영에 쓰일 음식을 밤새 만들어야 했고 지인을 통해 분장 버스까지 빌려 오지 않았나. 일반적인 독립영화라면 턱도 없겠지.

물론 전도연을 캐스팅한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세상사 결국은 인맥임을 확인시켜 줬달 밖에. 그럼에도 ‘배우는 감독의 구체화 되지 않은 부분을 구체화 시키는 역할이잖아요’를 비롯해 중간 중간 들린 배우 전도연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참 이상하다. 문소리, 전도연 두 배우의 나직한, 색깔 있는 음성이 자꾸 기억난다. 더 듣고 싶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새롭고 다양한 얼굴의 미덕

현재 TV 예능 콘텐츠 안에서 <전체관람가>의 의미는 한국영화에서 단편영화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슷하다. 예능계와 상업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듯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쏠림현상이다. ‘대세’로 분류되는 소수의 중년남성들을 조합만 바꿔가면서 소위 ‘돌려막기’하듯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고, 그 공고한 기득권 연합 앞에서 ‘다른 얼굴’을 찾아보기란 너무도 어렵다.

톱 여배우인 문소리와 전도연마저 입을 모아 이야기한, ‘남자들에 비해 선택의 여지가 너무 없다’는 고충은 최근 여성 예능인들의 한결같은 고민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로 호평 받는 <전체관람가> 역시 문소리 옆에 ‘늘 보던 그 얼굴’인 윤종신과 김구라를 기용했다는 점, 이경미 감독 외에는 중년남성 감독들이 절대다수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관람가>는 뻔하고 지루한 한국영화계에 새로움과 다양성을 수혈하는 단편영화를 방송 콘텐츠로 끌어안음으로써 같은 문제점을 지닌 예능계에 유의미한 풍경을 제시한다. 정윤철 감독의 첫 단편 <아빠의 검>부터 십대 초반 신인 배우 조우찬을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하더니, 처음으로 여성이 중심이 된 임필성 감독의 단편 <보금자리>에서는 최고의 배우인 전도연과 어린 배우 김푸름, 김보미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희소한 순간을 선보였다.

최근 임필성 감독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최고의 기성배우들 외에도 주인공으로 아역배우를 캐스팅했다. 이런 경험은 최근의 상업영화계에서는 시도하기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한 대목은 예능계에도 적용된다. 그 힘든 시도를 한다는 것만으로 <전체관람가>는 매주 관람의 기쁨을 준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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