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남겼어요. ‘옛날 같은 노래를 좀 만들어 달라’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거든요. 제가 뭐라고 답을 달았느냐 하면요. 나는 다시 예전의 미숙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스무 살 때, 내가 사랑받았던 그 모습. 무슨 수로 돌아갈 수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도 그 노래가 필요한 게 아니고 그 노래를 듣던 당신 자신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다. 하지만 ‘당신 인생의 일부시기에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아직까지 기억해줘서 고맙다’라고 썼어요.”

- KBS2 <승승장구>에서 신해철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90년도에 태어난 이기광으로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지만 스스로 데뷔 당시는 나름 아이돌이었다는 신해철. 지금은 독설가로 명성이 자자한 마왕이 한때는 아이돌이었다니 어째 어색한 일이긴 하나 ‘청소년층의 인기인, 10대들의 우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라는 'Idol'의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신해철, 그는 아이돌이 맞다. 1988년 그룹 ‘무한궤도’의 리드보컬로 ‘그대에게’를 불러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인기는 요즘의 최정상급 아이돌 못지않았으니까. 가요제를 마친 바로 그 다음 날,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제 걔 봤어?”라며 화제만발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야말로 자고 깨보니 스타 반열에 오른 것. 지금의 누구와 견주면 좋을까?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허각? 백청강? 아무리 곰곰이 따져 봐도 딱 들어맞는 비교 대상이 없다.

그런 그에게 “그 시절 그 음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라고 물었더니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 노래를 듣던 그 시절, 자신에 대한 향수일 것’이라고 답했다. 코맹맹이 목소리에 다소 불안했던 음정, 그 미숙했던 음악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얘기도 했다. 하기야 나 또한, 특히나 대학가요제가 열리는 늦은 가을이 오면 가끔 ‘그대에게’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듣던 그 시절 그 추억에 잠기곤 한다. 노래라는 게 역시 과거로의 여행에 가장 좋은 동반자가 아니겠나.






방송 중, 어릴 때부터 일찍이 죽음을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 ‘날아라 병아리’를 쓰게 됐다는 얘기에 그 곡이 담긴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을 꺼내 왔다. 그리고 아내가 재수술을 받게 되던 날,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던 건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쳐온다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꿔서라도 두 아이를 챙기고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미였다는 말, 그리고 스무 살 적부터 받아오던 정신과 치료를 딸아이가 태어나자 비로소 그만둘 수 있었다는 말에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담긴 넥스트 1집을 찾아 들었다.

오래 돼 이젠 남루해진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며 노래를 듣고 있자니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시아버님도, 연로하셔서 사위의 콘서트에는 비록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집에서 공연 시간 내내 정장을 입고 마음의 응원을 보내셨다는 신해철의 장인어른도, 또 암 투병으로 며느리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줄 알았다가 어렵게 임신했다는 소식에 목 놓아 우셨다는 신해철의 아버지도 생각났다. 이어서 시아버님이 타계하신 후 이곡을 틀어둔 채 한없이 창가에 서 있던 내 남편도 생각났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노래, 그 주옥같은 가사를 써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의 한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독설가의 길을 걷게 되면서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음악인으로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 없어졌지만 뭐 어떠냐,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의지를 다지는 신해철. 그가, 그의 노래가 내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해줬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