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 흥미로운 캐릭터와 신인발굴 vs. 단점을 감추는 호모소셜 월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드디어 ‘응답하라’의 세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걸까? 신원호 PD와 이우정 크리에이터, 정보훈 작가가 함께 선보인 신작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더 이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추억을 짚는 대신 그 동안 한국 드라마가 좀처럼 주 무대로 삼은 적 없었던 교정시설 안으로 들어간다. 넷플릭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나 폭스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교도소를 무대로 삼은 미드나, <프리즌>, <7번방의 선물>처럼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교도소를 주 무대로 삼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방영도 전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주된 이유였다. 과연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들어가 본 교정시설은 어땠을까? 2회까지 방영되고 3회 방영을 앞둔 지금, [TV삼분지계]가 들여다보았다.



◆ 더 공고해진 신원호 월드의 호모소셜

“처음이란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가 있다. 첫키스, 첫눈... 그렇다면 첫 감옥은 어떨까.” <슬기로운 감빵생활> 첫회에서 사회부 기자 준돌(김경남)이 수감된 제혁(박해수)에 대해 써내려가던 첫 문장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한 줄로 압축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적인 순정만화의 세계에서 갑자기 어두운 느와르와 블랙코미디의 세계로 이주한 신원호의 뉴월드다.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던 아련한 추억의 노래 대신 바깥 세상과 감옥의 차가운 괴리를 부각시키는 아이러니한 라디오 선곡이 흐르고,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감동적인 모습 뒤에 경력이 더렵혀질 것을 더 걱정하는 잔혹한 이기심이 숨어 있는 곳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는 이처럼 전작과는 너무도 판이한 풍경이 태연하게 펼쳐지는 순간들에서 나온다.



반대로 이 드라마가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여전한 신원호월드임을 확인하게 될 때다. 특히 전작을 관통하는 핵심 서사인 가부장적 패밀리즘과 호모소셜은 이 작품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제혁은 유사아버지인 김감독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는 적자이자 그의 딸 지호(정수정)의 키다리아저씨로 성장해왔으며, 여동생 제희(임화영)의 순결을 지켜주는 든든한 오빠다. 더 나가 동성들로부터 동경과 사랑을 받았던 윤제(서인국), 재준(정우), 택(박보검)을 넘어서는 남성 팬덤의 아이돌이다. 이는 제혁이 수감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빛을 발한다. 제혁이 교도소 내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철창 안의 지저스’가 되어가는 동안 여성들은 바깥 세상에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제혁과 준호(정경호)의 관계는 지호와의 로맨스보다 애틋하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꾸준할 일인가.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신원호의 인재 발굴은 계속된다

인재 발굴의 귀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신원호 PD. 대중의 눈에 익지 않은 인물을 찾아내 맞춤옷을 선사할 뿐 아니라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주인공의 동생 제희 역을 맡은 임화영만 봐도 KBS2 <김과장>에서는 다방 레지 출신의 경리 사원이었고 마약 사범이자 재벌 2세 역의 이규형은 tvN <비밀의 숲>에서는 반전 캐릭터 특검팀 윤 과장이었다. 방송 당시 눈여겨본 연기자들이다 보니 어찌나 반가운지.



물론 최고의 발굴은 주인공 김제혁 역의 박해수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의 단순무식한 그 홍 형사가? SBS <육룡이 나르샤>의 털보 이지란이? 신원호 PD가 아니라면 낼 수 없는 용기다. 속을 드러낼 줄 모르는 김제혁이 징역형을 선고 받고 소리 지르기 좋다는 스님의 조언대로 예배 중 포효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그냥 박해수를 위해 마련된 캐릭터지 뭔가. 벌써부터 어딘가 교도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뒤적이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로 다가오는 김제혁. 생생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자리를 옮긴 그가 펼칠 슬기로운 에피소드들이 기대가 된다.

그 외에 또 기다려지는 변신은 연기 꽤 잘 하는 정해인과 이 드라마로 복귀하는 최성원, 그리고 아이돌 그룹 위너의 강승윤이다. 서로 다른 개성의 젊은 재소자들 사이의 갈등이며 장기수 역의 최무송을 비롯한 연륜 있는 연기자들의 어우러짐도 기대가 되고. 이렇게 기대를 많이 해도 되나 싶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입체적인 캐릭터의 금광, 그런데 좀 너무 따뜻하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모든 극작가들의 숙제다. 뻔한 캐릭터들이 시청자의 예측대로 움직이는 드라마라면 누가 흥미롭게 다음 화를 기다리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 설정만으로도 캐릭터의 금광이 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교정시설에 머무는 캐릭터들은 다들 자신이 지은 죄는 숨긴 채 좋은 사람이고 싶어한다. 희망 없이 절망 속에서만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형수는 가장 평화롭게 웃는 보통 사람이고, 사나운 재소자들의 등쌀에 치여 고통 받고 있을 것 같았던 소지는 사실 배급품을 조금씩 빼돌려 제 잇속을 채우는 사람이다.

저마다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계책을 세워 움직이는 이 세상은 주인공 제혁(박해수)에게는 부조리로 가득 찬 공간이다. 체셔캣처럼 웃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조 주임(성동일)과 하트여왕처럼 끊임없이 주변인을 해하려 하는 인물이 공존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한없이 어둡게 변주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가깝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끊임없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을 강조하는 작품의 톤이다. 신축된 문정동 동부구치소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의 교정시설 평균 재소자 수용률은 정원대비 121.8%로 과밀상태이고, 수형자 인권 문제 또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교정시설을 교정·교화를 위한 공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죄를 지은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안에서 폭동이나 사고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하는 공간으로만 바라봐왔던 한국의 교정 행정이 자칫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문장 앞에서 은폐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안 하기 어렵다. 물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상 교도소를 지나치게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린 <7번방의 선물> 같은 톤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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