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웅이 설정한 강호동과의 차별화 포인트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엄태웅이 ‘1박2일’에서 달라졌다고 한다. 달라졌다기보다는 상황이 변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엄태웅은 ‘1박2일’에 투입될 당시만 해도 김C와 MC몽이 빠지면서 사라진 야생성을 보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제작진도 김C와 비슷한 그림 정도를 그렸을 것이다. 별로 떠들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야생감이 느껴지고 팀과 잘 융화하는 ‘형 캐릭터’ 말이다.

강호동 중심으로 끌고 가되 개성적인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엄태웅도 강호동에 기대는 캐릭터, ‘호동빠’가 만들어졌다. 강호동 중심 체제는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1석2조 캐릭터다. 하지만 강호동이 빠져 나가면서 이 캐릭터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엄태웅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호동빠’로 계속 갈 경우 편할지는 모르나 마음이 편치 않게 된다. 갈수록 ‘날로 먹는 캐릭터’라는 부정적 반응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엄태웅은 강호동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강호동식 진행을 했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1박2일’을 강호동이 있었을 때의 스토리로 생각하기 쉽다. 강호동이 빠진 후 5명의 멤버들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팀원들이 강호동 체제에 꿰맞추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5명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강호동이 빠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멤버들간에도 새로운 상황, 새로운 관계가 나오면서 시즌2를 기약해야 한다.
 
다행히도 엄태웅은 강호동 시절로 가지는 않았다. ‘급한 진행’ ‘엄석희’는 엄태웅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강호동이 시끄러울 정도로 에너지 충만한 진행을 했다면 엄태웅은 엄태웅식의 진행이 있다. 강호동이 중앙집중식 진행이라면 엄태웅은 이승기와 이수근에게 자주 토스도 하는 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의 예능감은 연기자보다 가수나 개그맨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황이 툭 던져졌을 때는 연기자가 더 유리하다. ‘달변가 태웅만들기’를 위해 1분 토론을 했을 때나 엄태웅이 말을 잘 못하는 김종민의 훈련용 대사를 읽을 때는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전래동화는 아무 것도 없이 나왔나?”라며 밀어붙이기식 토크를 펼쳐 기대 이상의 웃음을 주기도 했다. 사극톤의 내레이션도 멤버중 그만의 특기다. 이 과정에서 ‘다혈질 모드’가 나오기도 했다. 이것도 엄태웅의 모습 그대로다.


 
강호동의 하차를 전후한 시점은 엄태웅이 ‘1박2일’에 적응하는 시기와도 물려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일단 떠들어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멤버는 ‘묵언수행’과 ‘병풍’ 캐릭터를 면할 길이 없다. 자동차가 끼어들기를 하듯 토크 찔러넣기에도 능해야 한다. 이수근과 이승기는 강호동과도 주고받는 걸 잘한다. 하지만 의사 표현을 잘 하지않는 엄태웅은 끼어들지를 못했다. 시키는 것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태웅도 이제 변화의 시점임을 파악했다. 맏형 강호동이 하차했고 프로그램은 내년 2월 종영한다. 엄태웅은 부담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며 몸으로라도 웃기려고 한다.

‘1박2일’ 제작진은 엄태웅은 욕심은 별로 없는데 걱정은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엄태웅은 지난 16일 유홍준 교수와의 경주 남산여행편에서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툭툭 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얻었다.
 
‘1박2일’의 한 관계자는 “엄태웅 씨가 강호동식의 진행은 죽어도 못한다고 하더라. 은지원 이승기 이수근에게 밀어줄 것은 밀어주면서 말도 안되고 어설픈 것도 하면서 발전하는 것 같다”면서 “엄태웅 씨 본인도 어색해 할 때도 있지만 ‘급한 진행’ 같은 것들은 엄태웅 씨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부분이다”고 전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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