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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이 한국적 가족신파에 왜 젊은층이 열광할까
기사입력 :[ 2017-12-27 11:00 ]


‘신과 함께’, 저승보다 이승의 참혹함이 진심으로 눈에 밟힌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 순항중이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데다, 40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작품인지라 흥행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점은 인지도가 높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큰 실망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특히 주요 캐릭터인 진기한이 등장하지 않는 점이나 첫 공개된 예고편의 만듦새가 나빴던 점이 실망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개봉 후 기대이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첫 주 만에 500만 명을 가볍게 넘겼다. 더욱이 1편과 내년 8월에 개봉할 2편이 동시에 제작된 데다, 103개국에 해외 판매까지 이루어져서, 손익분기점은 650만 명 정도로 낮다. 따라서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무난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 동양적 판타지에 게임적 플롯

<신과 함께-죄와 벌>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장점은 동양적 판타지를 높은 완성도로 보여준 점이다. 각 문화와 종교에 따라 독특한 사후세계의 판타지가 존재하지만,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기독교 중심의 판타지가 주로 소개되었다. 피터잭슨 감독의 <러블리 본즈>가 따분하게 느껴진 데는 영화의 서사 탓도 있지만, 문화적인 동질감이 적은 탓도 있었다. 동양적 사후세계를 그린 영화가 전혀 없진 않았다. <자귀모>, <중천> 등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자귀모>는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본격적인 사후세계를 그리지 못했고, <중천>은 화려한 비주얼로 사후세계를 그렸지만, 공허한 서사로 붕 뜬 느낌이 강했다.

반면 <신과 함께-죄와 벌>은 불교와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7가지 지옥을 생생한 비주얼로 보여주는 한편, 주인공의 가족이야기를 통해 저승과 이승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킨다. 특히 원작에서는 독립적이었던 군인 이야기를 동생의 이야기로 엮으면서, 저승과 이승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킨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여기에 드라마 <도깨비> 이후 동양적 사후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관객의 흥미가 높아진 것도 한 몫 하였다. 요컨대 영화가 동양적 사후세계를 질 높은 비주얼로 만들어낸 것은 콘텐츠적인 가치를 지니며, 해외선판매가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영화가 ‘죄와 벌’이라는 부제를 달고 사후 심판을 그리고 있지만, 윤리적 판단은 매우 단순하다. 소방관으로 순직한 김자홍이 저승에서 7개의 재판을 받는데,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판관 둘이 김자홍의 죄를 고하면, 그에 대한 변론이 이루어지고 결국 변론이 받아들여진다. 가령 그는 평생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이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긴 것’으로 유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가 돈을 벌려고 애쓴 이유가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기에 무죄라는 것이다. 사실 이정도의 윤리적 논의는 중학교 논술문제로도 나오지 않을 만큼 초보적이다. 그것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동일한 방식으로 여섯 번이나 반복되니, 지루함이 느껴진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어쩌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영화적 플롯이 아니라, 한 단계씩 미션을 클리어하며 다음 판을 향해 나아가는 게임의 플롯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저승의 비주얼도 영화보다는 게임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데 게임과 비슷한 느낌이 관객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젊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영화는 심판이라는 윤리적 논제를 던지고 있지만, 매순간 선악의 문제가 ‘가족을 위해서’ 라는 이유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논의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쌓아간 가족신파가 파이널 스테이지에 이르러, 거대한 눈물의 파고로 밀어닥친다.



◆ ‘헬조선’의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 : 빈곤, 찢어진 가족, 억울함

판타지 영화를 보러 갔다가 거대한 신파의 쓰나미를 맞은 관객들이 입소문을 이어간다. 누구도 영화의 메시지가 심오한 도덕적 성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가족신파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한국적인 가족신파임을 다들 인정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관객들이 영화에 이끌린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다’는 말처럼, 영화가 관객들의 꽉 막힌 울분을 터뜨리게 한 방아쇠가 된 것은 아닐까.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저승의 지옥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승의 지옥도 함께 보여준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승의 지옥도 말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곳이 ‘지옥’의 모순과 더불어 ‘조선’이라는 전근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즉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한으로 지닌 사회인 동시에, 폭력이나 악습 같은 전근대적 억압이 잔존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신과 함께-죄와 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헬조선’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자홍은 돈을 벌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한다. 소방관이라는 정규직업 이외에 휴일에도 아르바이트를 한다. ‘투 잡’ ‘쓰리 잡’이 일상이 되어버린 ‘워킹 푸어’의 현실을 담은 인물이다. 지금껏 성인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가 부양하는 것은 처자식이 아니다. 처자식은 그가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는 가정을 꾸리지 못한 비혼 남성이다. 뭐 그럴 수 있다. 더 비참한 것은 따로 있다. 영화의 중반까지 그는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공부하는 동생을 돌보는 효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는 청소년기에 집을 나와 이후 한 번도 어머니를 찾지 않았으며, 생활비와 편지만 보내고 있었다. 이들 가족에게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상처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난 때문이다.

요컨대 김자홍에게는 가난과 이로 인해 천륜에 금이 갈 정도로 깊은 가족 간의 상처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는 지금 관객들이 지닌 결핍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가난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가족을 이루지 못하였고, 원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갖고 있다. 이것이 지금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결핍의 정서이다. 특히 외환위기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가족의 위기를 겪은 이들에게 빈곤은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우리 가족’ 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추억담이고, 이후 세대들에게 가난은 가족해체의 그림자를 내포한다. 가난하고, 가족들도 모두 상처를 안은 채 흩어져 살고 있으며, 마음속으로만 그리움과 죄의식과 연민을 품고 사는 것, 그래서 조금 살만해진 다음에도 선뜻 가족을 구성하기 힘든 것. 이것이 지금 젊은 세대들의 무의식적 풍경이다.



◆ 폭주하는 남성주체의 억울함

김수홍은 또 어떤가. 그는 군 의문사로 원귀가 된다. 지금껏 원귀는 주로 여성 캐릭터의 몫이었다. 처녀귀신, 특히 성폭행을 당하거나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당한 여성들이 기존사회 질서 안에서 원한을 풀길이 없을 때, 원귀가 된다. 남성호러는 극히 드문 데, <알 포인트> 같은 군대 호러가 유일하게 존재한다. 이는 군대에서는 남성들도 억울한 죽음을 맞고, 기존 질서에 의해 은폐되는 일이 일어나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김수홍이 군에서 의문사를 당한 원귀가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 놓인다. 지금껏 남성호러에서 남성원귀의 폭주 장면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김수홍은 엄청난 에너지로 폭주하며, 이승과 저승을 어지럽힌다. 이는 특별한 시대적 정서를 반영한다. 즉 지금의 20대 남성들이 느끼는 대표적인 정서인 ‘억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흔히 20대 남성들은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의 여성들에게도 ‘상대적 박탈감’을 운운하며, 군복무를 꼽곤 한다. 이는 남성의 억울함이라는 정서와 군대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김수홍의 이야기는 남성주체의 억울함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그는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다 입대하였다. 감독의 전작 <국가대표>에는 할머니와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사는 청년이 나온다. 그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군 면제를 위해 국가대표팀에 합류한다. 김수홍도 그 청년처럼 남은 가족이 걱정되어 병역을 기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피가 불가능해 입대하였고, 다행히 이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만 죽는다. 그것도 나름 잘 챙겨주었던 관심사병의 총에 맞고, 믿었던 상관의 출세욕 때문에 은폐된다. 요컨대 ‘나보다 못나고 지질한 새끼’ 와 ‘나보다 잘나고 나쁜 새끼’ 때문에 죽는다. 나도 꿈이 있는데, 나에게도 출세욕이 있는데, 나는 그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억울함. 그것도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보다 못난 놈과 나보다 잘난 놈들 때문에 내가 산송장이 되어 죽어간다는 질식할 것 같은 이 느낌이 현재의 20대 남성주체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마지막에 염라를 통해 죄와 용서에 대한 장중한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리 특별한 메시지가 아니다. ‘과오는 인간의 일이요, 용서는 신의 일’이라는 알렉산더 포프의 말을 인간주의적으로 변용한 것에 가깝다. 영화가 관객들의 감성을 움직인 키워드는 심판, 죄, 벌, 용서 등이 아니다. 오히려 ‘헬조선’, 빈곤, 가족, 억울함 등이다. 저승보다 이승의 참혹함이 진심으로 눈에 밟힌다. 이승의 법으로나 저승의 법으로나, 가난 때문에 어린형제가 겪어야 했던 참담한 일들은 그들이 용서를 구할 죄가 아니다. 그들을 방임하고 학대했던 어른들의 죄이다. ‘헬조선’의 누구도,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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