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삼분지계’ 어워드 2017 (4) - 올해의 인물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어워드’는 올해의 드라마, 예능, 특별 언급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올해의 인물’을 꼽으며 2017년 방송결산을 마무리한다. 먼저 정석희 평론가는 새로운 리더로서의 롤모델을 제시한 송은이를, 김선영 평론가는 대안적 관계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준 tvN <윤식당>의 멤버들을, 이승한 평론가는 EBS <까칠남녀>를 통해 “한국 지상파 채널의 금기를 돌파 중인” 은하선을 꼽았다. 이들은 모두 방송의 현재라기보다 앞으로 추구해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새해의 TV에서는 부디 더 많은 대안과 이상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 송은이, 새로운 리더의 롤모델

우리는 TV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TV와 우리 삶은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올해를 대표하는 인물로 송은이를 뽑는 이유는 그와 닮은 이들이 방송을 넘어 우리 삶 안에 더 많이 자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예능계에 호통과 독설, 폭로와 갈등 조장이 만연하던 지난 과거에는 중심에서 한 발 물러섰던 송은이. 한 동안 그는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고, 격려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느린 한 걸음 한 걸음이 결실을 맺어 지난 주 MBC <무한도전>이 뽑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시대를 꿰뚫는 기획으로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지만 한 마디로 말해 인재 발굴과 적절한 기용으로 받은 상이다.



최근 김숙과 김생민을 늦깎이 스타로 만들어 화제가 됐으나 송은이를 존경스러운, 닮고 싶은 선배로 꼽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언젠가 김신영이 한 말이 생각난다. 예능에 나가기만 하면 통으로 편집이 되던 시절이 있었단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싶어 풀이 죽어 있을 때 ‘송 선배’가 MBC every1 <무한걸스>로 이끌어 줬다고. “어찌된 일인지 나보다 더 나를 잘 파악해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뭔가를 계속 끌어내 줬어요. 어찌 보면 <무한걸스> 녹화 자체가 저에게는 예능 수업이었죠.”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송은이는 최고의 리더다. 겸손하고, 나이로 대접받으려 들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무엇보다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는 리더. 확실히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 그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부디 송은이에 필적할 리더들이 세상 곳곳에서 등장해주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윤식당>의 윤여정 사장과 직원들

2017년 방송가 최고의 인물로 젤 먼저 떠올린 이는 윤여정이다. 71세인 그는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나문희가 해냈던 것과 유사한 성취를 TV에서 일궈냈다. 여성, 더욱이 노년 여성은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예능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간판에 내건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윤여정의 활약은 얼마든지 고평가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나영석이라는 예능 미다스의 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윤식당>의 지금과 같은 무게와 의미는 윤여정이 평소에 보여준 가치관 위에서 완성됐다. 애초에 나 PD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슬로 라이프를 그리고 갔지만 윤 사장의 경영 마인드가 더해지면서 모양새가 달라졌다는’ <씨네21>의 인터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윤식당>의 70대 여성 셰프 겸 사장으로서 윤여정의 새로운 도전은 그 자체로 한국 예능계의 도전이 됐다.



하지만 ‘윤 사장’의 활약에서 다른 멤버들의 존재 역시 빼놓을 수는 없다. 윤여정의 진가는 출연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빛났기 때문이다. 특히 ‘주방 보조’ 정유미와의 세대 초월 우정은 올해 예능에서 가장 신선한 풍경 중 하나였다. 윤여정과 정유미는 36살 차이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이 정도 나이 격차를 지닌 여성들은 모녀나 고부지간이기 일쑤였으나, 이들은 메인셰프와 주방보조, 선후배 연기자, 같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친구 등 다채로운 관계를 보여주며 여성 간 유대가 얼마나 다양하고 유연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여기에 늘 전면에 나서던 ‘나영석의 얼굴’에서 한걸음 물러나 ‘잡일’을 책임지던 이서진의 올라운드 플레이, 80대 나이에 ‘막내 알바’로 투입되며 서열 전복을 실현한 신구의 현명함 등이 더해져 최고의 팀이 탄생했다. 연령, 젠더, 경력 등 모든 ‘차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협업관계라니,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함께 모여 더 이상적인 풍경을 완성한 넷 모두를 '올해의 인물'로 꼽는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까칠남녀>의 은하선, 세상에 없던 불온한 전위

모든 프로그램마다 그런 인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프로그램 안에서도 가장 끝까지 갈 수 있는 출연자, 그래서 결국 프로그램이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한계를 결정짓는 사람들.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는 故 김성민이 있었고,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에는 김신영이 있었고, MBC <무한도전>에는 노홍철이 있었다. 그리고 연일 한국 공중파 채널의 금기를 돌파 중인 EBS <까칠남녀>에는 은하선이 있다.



‘세상에는 젠더에 따라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그를 착실히 수행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하는 한국사회의 젠더 고정관념은, 은하선의 존재 앞에서 부서진다. 여성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성애를 즐기는 게 망측한 일이라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은하선은 섹스토이를 제작해 판매하고 섹스 칼럼을 저술한다. 이성애가 정상이며 그 이외의 다른 종류의 사랑은 틀렸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그는 자신이 바이섹슈얼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여성 파트너와 동거 중이라고 말한다. 은하선 덕분에 <까칠남녀>는 단순히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더라” 수준의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여기 이런 사람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쇼가 됐다. 은하선은 <까칠남녀>를 젠더 고정관념과 싸우는 최전선으로 끌고 가는 전위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가에 따라 은하선에 대한 호오는 극단적으로 갈릴 것이다. 호모포비아라면 그가 바이섹슈얼이라서 싫을 것이고, 안티 페미니스트라면 그가 페미니스트라서 싫을 것이며, 성적 보수주의자라면 그가 성을 주체적으로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싫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것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은하선처럼 말할 수 있는 방송인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그가 유일하다. 수많은 이들의 혐오와 증오에 맞서 한 해 동안 열심히 ‘까칠’하고 불온하게 목소리를 높인 은하선을 올해의 인물로 꼽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tvN,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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