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족탈불급(足脫不及)’, 직접 체험해보니…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사흘 동안 3kg을 뺐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체중은 식사량 조절로는 줄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주인의 시늉에 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몸은 내게 ‘그렇게 쉽게 몸이 가벼워지기 바라다니, 마라톤한다는 사람 맞어?’라며 비아냥대는 듯했다. 몸무게는 73kg대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몸은 주인의 과학적인 접근에는 바로 복종했다. 월화수 사흘 동안 아침, 점심, 저녁 식단을 닭가슴살, 참치캔, 두부로만 짰다. 참치는 캔을 기울여 기름을 따라낸 뒤 먹었다. 양념도 간도 되지 않은 닭가슴살을 먹다가 질릴 때면 양배추를 썰어 닭가슴살과 섞은 뒤 후추를 뿌린 요리를 만들어 배를 채웠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에서는 나물을 주로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서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각각 20분, 30분 정도 달렸다. 몸무게가 사흘 새 70kg대로 줄었다.

처음엔 부족한 훈련을 체중 감량으로 벌충하려고 식사량을 조절했다. 몸이 가벼우면 달리기에 유리하다는 단순한 셈에서 출발했다. 식단을 바꾸기로 한 것은 나중에 다른 이유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마라톤은 열여섯 번째였다. 그러나 나는 이전 열다섯 번의 마라톤과는 판이한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달리는 마라톤이었다.

하프 코스를 두 번 뛰고 30km와 32km를 연습했다. 하프 정도는 맨발로 달려도 탈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물집이 잡혔지만 그 때뿐이었다. 이후엔 발바닥은 멀쩡했다. 다만 착지할 때 모래를 밟으면 오는 통증은 불편했다. 그래서 32km 장거리 연습 때엔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신고 뛰었다. 장거리에도 발바닥은 멀쩡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종아리 근육에서 생겼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바닥을 신발을 벗고 달려보면 안다. 신발이 발과 딱딱한 바닥 사이에서 얼마나 완충 작용을 해 주는지. 맨발로 달려 착지할 때 충격은 발의 아치와 종아리가 흡수한다. 디디는 발의 종아리 근육은 강하게 수축하면서 침대 스프링처럼 완충 작용을 한다. 종아리 근육이 수축하면 뒤꿈치와 종아리 근육을 잇는 아킬레스 건은 늘어난다.

장거리 연습하면서 왼쪽 종아리 근육 윗부분에 탈이 났다. 아킬레스 건 대신 종아리 근육과 연결된 근육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생긴 증상으로 짐작된다.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풀코스를 달리면 왼쪽 다리 근육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는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도 체중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체중 감량에는 성공했다. 그 단계에서 끝내면 하나만 얻고 다른 하나는 버리게 된다. 다음 사흘 동안에는 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했다. 탄수화물이 거의 떨어진 몸은 이전보다 강하게 탄수화물을 원하고 축적하려고 든다. 사흘 동안 몸을 잘 먹이면 체내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탄수화물을 축적하게끔 할 수 있다.

단백질에 이어 탄수화물을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요법은 ‘카보 로딩’이라고 불린다. 카보는 탄수화물(carbohydrate)을 줄인 말이다. 로딩(loading)은 축적하기를 뜻한다.

왜 지방이나 단백질이 아닌 탄수화물인가? 우리가 운동할 때엔 근육과 간에 축적된 글리코겐 형태의 탄수화물을 사용한다. 글리코겐이 바닥나면 지방을 쓴다. 지방도 고갈된 다음엔 근육 같은 곳의 단백질을 연료 삼아 에너지를 만든다. 지방이나 단백질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신진대사는 글리코겐을 사용하는 데 비해 고통스럽다.

지구력 훈련은 몸무게 대비 글리코겐 비중을 키우는 과정이다. 엘리트 마라토너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속도뿐이 아니다. 엘리트 마라토너는 풀코스를 간식 없이 내쳐 달릴 수 있다. 아마추어는 초코파이며 바나나며, 주최 측에서 주는 대로 다 먹는다. 먹어야 한다. 아마추어는 몸의 글리코겐이 일찍 바닥나고, 그러면 몸에서 ‘허기’라는 신호를 뇌에 보내기 때문이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사흘 동안에는 탄수화물 위주로 영양을 섭취했다. 밥보다 밀가루 음식이나 찰떡이 탄수화물을 축적하는 데 도임이 된다고 해서, 사흘 내내 면으로 일관했다. 틈틈이 초코 브라우니와 찰떡을 간식으로 먹었다.

잘 먹었지만 몸무게는 71kg대로, 이전보다 2kg 정도 가벼웠다. 체중 대비 글리코겐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과연, 카보 로딩은 효과 만점이었다. 이번에는 풀코스를 완주하기까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달리면서 초코파이 한 조각도, 바나나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목만 축였다.

열여섯 번째 마라톤은 엄밀하게 말하면 맨발 달리기는 아니었다. 양말을 세 켤레 겹쳐 신고 달렸다. 그러나 주로(走路)에서 내게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대부분 내 차림을 ‘맨발’로 인정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늘 신문에 나온 발 사진 주인공이 백 국장?”

출근 길에 지하철에서 보니, 그건 내 발이 아니었다. 그는 발바닥과 발가락에 반창고를 감고 있었다. 나보다 고수로 보였다.

이제 맨발 달리기가 어땠는지, 미뤄뒀던 얘기를 털어놓을 때다. ‘족탈불급’이었다. 신발 벗고 뛰었으나 신 신고 달리던 때에 미치지 못했다. 종아리가 35km 언저리에서 많이 아팠다. 소염진통제로 달래며 천천히 달려야 했다. ‘삼겹 양말’도 풀코스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완주한 뒤 보니 구멍이 뻥 뚫렸다. 기록은 첫 풀코스 기록과 비슷한 네 시간 15분이었다. 다시 맨발로 뛰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사진=카페 ‘대전시산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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