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스테이지’, 정기적으로 찾아와 꾸준히 성장해주길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 달부터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스테이지>는 자체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열 명의 신인 작가들이 선보이는 열 개의 단막극 시리즈다. 드라마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단막극이 시청률지상주의에 밀려 사라져갈 때, 모처럼 만나는 신선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반기지 않을 수 없는 프로젝트다. 실제로 첫 작품인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부터 최근 방영된 <낫 플레이드>까지,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참신한 소재와 이야기들이 현재 드라마 계에 가장 부족한 다양성을 보완하고 있다. 원미경 같은 중견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신은수, 강미나, 변우석 등 신진 배우들의 풋풋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TV 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7회까지 방영된 에피소드 가운데 각각 한 편 씩을 꼽아보았다.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라기보다는 단막극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들이다. 장점도, 한계도 있다. <드라마 스테이지>가 정기적으로 찾아와, 꾸준히 성장해주길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 <낫 플레이드>, 숨겨진 재능에 대한 기분 좋은 상상

누구나 한번쯤 상상의 나래를 편다. 혹시 내게 숨겨진 재능이 있으면 어쩌지? 그 엄청난 재주를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잖아? 마치 어느 날 멀고 먼 친척의 유산 상속을 받는 생뚱맞은 꿈을 꾸듯 말이다. tvN <드라마 스테이지 - 낫 플레이드>는 이런 상상을 만족시키는 판타지지만 생각해보면 영 없을 얘기도 아니다. 60대 중반에 우연히 당구장 알바로 나섰다가 천재적 재능을 발견하게 된 나인숙(원미경), 만약 소싯적 당구장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혹시 주변 누군가가 큐대 잡을 일을 만들어줬다면 아마 인숙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tvN <디어 마이 프렌즈>의 정아(나문희) 씨 남편 석균(신구)을 빼닮은 남편(동방우)의 온갖 구박을 감내하며 살지는 않았으리라.



일을 시작한지 불과 반년 만에 당구장 주인 승욱(이희준)에게 소질을 인정받고 일 년이 지나자 ‘할머니를 이겨라 이벤트’가 화제가 되면서 썰렁하던 당구장에도 활기가 돈다. 그러나 기제사며 둘째 손자 운운하며 어김없이 인생에 태클을 거는 남편. <당구초짜 300가지>를 비롯한 관련 서적에 열중하던 모습, 늦은 밤 숨죽여 가며 당구 방송을 볼 때 반짝이던 눈빛, ‘맛세이’라는 기술을 알게 되는 순간 지었던 환한 웃음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이혼해!’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다행히 인숙은 ‘시간 안에 자신 있게 플레이 하지 않으면 낫 플레이드가 된다’는 승욱의 조언대로 당구가 아닌 인생에서도 소신 있는 플레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결국 당구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훈훈한 마무리가 되었지만 당구라는 취미가 추가된 것 외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그가 자꾸 아쉽다. 우리 인숙 씨가 일찍이 당구와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오늘도 탬버린을 모십니다>, 생계형 청년여성을 향한 혼신의 응원

문숙(박희본)은 은행에 근무하는 계약직 2년차다. 성실하고 꾸준한 자세로 토익 고득점, 자산관리사, 파생투자상담사 자격증 등 상당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극적이고 자기주장이 약한 탓에 살벌한 경쟁에 힘겨워한다. 계약직 근무 기한도 끝나갈 즈음 딱 한 자리뿐인 정규직 전환 공고에 사활을 건 그녀가 선택한 길은 바로 탬버린 레슨. 회식 좋아하는 지점장 눈에 들어 정규직 전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오늘도 탬버린을 모십니다>는 ‘단막극의 모범’을 보는 듯한 주제의식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년여성 삶의 묘사에는 세상의 주변부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깃들어있고, 탬버린의 고수를 만나 ‘만렙’이 되어가는 수련 과정에는 B급 코드의 발랄함이 있다. “회식자리 능력이 아직 유효한 나라잖아요. 대한민국이”처럼 통렬한 한 줄 대사에 담긴 사회비판 코드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모범’이라는 뜻에는 그만큼 전형적이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생계형, 노력형 주인공부터가 이미 기존 주류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여주인공 유형이다. 여기에 지점장의 무리한 지시에 고단하고 초라한 하루를 보낸 뒤 엄마의 다정한 전화에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거나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동기에게 무시당하는 등의 익숙한 장면까지 더해지면 더 구태의연해진다. 다만 영화 <위플래쉬>를 방불케 하는 탬버린 수련 과정의 ‘웃픈’ 묘사와 비주류 싱글 여성 연기의 대가 박희본의 뛰어난 연기가 이러한 한계마저 극복한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혼신의 탬버린 리듬에 공감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소풍 가는 날>, 흥미로운 설정 그러나 아쉬운 결말

<소풍 가는 날>은 단순하고 보수적인 작품이다. 작품은 유품정리업체 ‘소풍 가는 날’의 직원 재호(김동완)를 주인공 삼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조망한다.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주던 손님이 사실은 자신과 오래 전에 절연했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어머니 사후에야 깨닫고 오열하는 세탁소 사장(남문철)이나, 죽음을 준비하며 제 사후 유품정리를 ‘예약’하려는 민주(김혜인)를 어떻게 말려보려는 재호의 현재, 그리고 이웃의 은지 아버지(최대철)의 도움으로 죽고 싶었던 순간을 넘겼던 재호의 과거사가 느슨하게 얽혀 있는 <소풍 가는 날>의 서사는 긴장감 없이 잔잔하다.

메시지도 단순한 편인데,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이들에게 뭉뚱그려 “그래도 살아라”, “주변에 손을 내밀라”는 말을 건네는 게 목표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TV라는 보수적인 매체를 통해,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서 깊은 통찰이나 구체적이고 섬세한 위로를 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아쉬움이 큰 건 그만큼 괜찮은 구석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소풍 가는 날>에는 흥미로운 설정이 많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재호가 되려 망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에 종사하게 됐다는 아이러니나, 서로 알아보거나 다가가지 못한 채 오랜 세월 이어진 세탁소 사장과 어머니의 관계,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망자를 위해 한바탕 울어주는 유품정리업체 직원(고규필) 같은 캐릭터는 저마다 개별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상상이 가능한 소재다.

그러나 <소풍 가는 날>은 이런 설정들을 늘어놓고는 딱히 더 활용하거나 깊게 탐구하지 못한다.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짧으니 결국 반짝이는 단서들만 힐끔 보여주는데 그친 셈이다. 그래도 신인 작가가 선보이는 상상력의 단초를 보고 싶은 분들이나, 믿음직한 연기로 보는 이를 안도케 하는 김동완의 호연이 그리웠던 이들이라면 시간을 할애해 봐도 좋은 작품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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