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김남주의 압도적 존재감만으론 2% 부족하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김남주의, 김남주에 의한, 김남주를 위한 드라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최고의 앵커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세대교체를 강요당하는 주인공 고혜란은, 최고의 배우임에도 원톱 주연작을 꾸준히 선보이기 어려운 40대 후반 여배우 김남주의 현실이 더해져 비로소 풍부한 사회적 의미를 얻는다. 좌중을 압도하는 고혜란의 독보적 아우라와 스타성 역시 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김남주의 존재감이 있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미스티>는 배우의 자의식과 완벽한 자기연출이 더해진 캐릭터가 드라마를 얼마나 빛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TV삼분지계]의 시선 역시 김남주에게 집중됐다. 정석희 평론가는 극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드는 김남주의 존재감을, 김선영 평론가는 김남주가 완성한 고혜란 캐릭터를, 이승한 평론가는 김남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극의 장단점을 짚었다. 평가는 다소 갈리지만 이것이 김남주의 드라마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 극적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김남주의 존재

김남주가 돌아왔다.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햇수로 6년만이다. 워낙 대단했던 전작의 무게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오랫동안 돌아올 수 없었던 건 마땅히 맡을 역할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지. <미스티> 1,2회를 보는 내내 김남주가 처한 현실과 드라마 속 상황이 맞물려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문득 입방아에 올랐던 모 방송사 연말 시상식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배우 김남주의 고민과 앵커 고혜란의 고민은 맥을 같이 한다. 극 배경은 살인사건이지만 자리를 지키려는 자와 밀어내려는 자의 첨예한 대립이 너무나 실제 상황처럼 느껴져서 섬뜩할 정도다.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후배 한지원(진기주)을 견제하기 위한 사진을 찍어준 대가로 윤송이(김수진) 기자에게 봉투를 건넨 걸 보면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신뢰도 1위 뉴스나인 앵커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그 또한 숱한 풍파를 만들고 헤쳐 왔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다.

각설하고, 왜 나이를 이유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다보니 감이 떨어져서,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 발음이 어눌해져서라면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싱그럽고 풋풋한 젊음을 대중이 더 좋아하기 때문에’는 답이 안 된다. JTBC 손석희 앵커는 환갑을 넘긴 나이가 아닌가. 왜 여성은 나이를 이유로 앵커 자리에서 내려와야 되는데? 살인사건과 불륜이 얽힌 극 내용과 무관하게 고혜란이 그 자리를 지켜내길 바란다. 또한 최근 <뉴스 데스크>로 복귀한 MBC 손정은 아나운서도 오래오래 뉴스에서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지상파 장수 여성 앵커 1호로 기록되기를. 배우 김남주도 60, 70이 넘도록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중년을 넘어 노년의 일과 사랑까지 연기해주길.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고혜란의 화장법이 의미하는 것

<미스티>는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올해의 언론인상’을 수상하는 장면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려 5년 연속 수상 대기록이라는 영예의 정점에서, 혜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최고의 위기와 맞부딪힌다. 회사는 젊음을 무기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 한지원(진기주)에게 <뉴스 나인> 메인 앵커직을 물려주길 강요하고, 경쟁사들은 작위적인 ‘라이벌 구도’를 통해 세대교체 여론을 부추기며, 대중의 관심 역시 ‘풋풋한 여기자’에게 집중된다. 사생활도 전쟁이나 다름없다. 치매를 앓는 친정 엄마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고, 출산과 은퇴를 원하는 시댁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지며, 남편 강태욱(지진희)과의 ‘쇼윈도 부부’ 관계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숨기고픈 과거를 공유한 옛 연인까지 돌아온다.



첫 회에서 이 모든 위기를 대하는 혜란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은, 모친 면회 뒤 회사로 돌아온 혜란이 생방송 의상을 고르는 분장실 신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옷을 고르던 그녀는 강렬한 레드 셔츠를 선택한다. “오늘은 좀 밝게 가자. 생동감있게.” 위기가 올수록 더 당당하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은 이 혹독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혜란의 무기요 처세법이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노동은 단순히 분장만이 아니라 소위 ‘여성성’ 에 대한 사회적 요구 전반을 가리킨다. 속으로 어떤 독기를 품는 이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넌 그냥 이쁘게 꽃같이 그렇게 살아.” 이제는 유언이 되고만 모친의 말은 혜란의 일생을 지배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역이용하는 고혜란의 화장법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매력적인 주인공 하나로 드라마가 완성되진 않는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초반 2회였다. <미스티>는 화려해 보이는 커리어를 쌓아 올린 뉴스 앵커 고혜란(김남주)을 승부수로 띄웠다. 고혜란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것도 거절하고 일에 매진하는 냉혹한 사람이고, 제 자리를 위협하는 후배 한지원 앵커(진기주)를 견제하기 위해 친구 윤송이(김수진)에게 파파라치 사진을 사주하는 음모도 꾸밀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드라마의 문법은 대체로 시청자들이 무난하게 감정 이입할 수 있을 만큼 선량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보편적이고, 주인공이 여자인 경우에는 그 경향성이 더더욱 짙다. 고혜란은 그러한 경향성을 단숨에 깨부수는 쾌감을 시청자에게 선사한다. 고혜란은 선량함 대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고난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고혜란은 성공을 이룬 이후에도 존중받기보단 끊임없이 그 자리를 위협당하고 폄하를 견뎌야 하며, 직장 안에서 추구해야 할 성공이라는 덕목과 시부모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2세 생산이라는 과제 사이에서 끝없이 고통 받는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기혼여성이라면, 혜란이 겪고 있는 일들에 공감하기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하다. 고혜란에게 헤쳐야 할 장애물을 마련해주기 위해 <미스티>가 동원한 장치들은 좀 심하게 고루하다. 한지원이나 선배 이연정 앵커(이아현)는 “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에 충실한 캐릭터이고, 혜란의 적 오대웅 팀장(이성욱)은 사방팔방 제 속내를 과시하는 쉽고 간편한 악역이다. 과거 혜란이 버렸으나 성공을 거둔 뒤 돌아와 혜란의 삶을 뒤흔드는 남자인 케빈 리(고준)는 지금의 남편인 강태욱(지진희)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인 캐릭터여야 한다. 그러나 고준의 연기만 보면, 드라마가 치명적이라고 하니 치명적인가보다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다.

<미스티>가 초반의 화제성을 계속 끌고 가려면 초반 2회에 보여준 것보다는 덜 상투적인 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매력적인 주인공 하나만으로 좋은 서사가 가능하다면 참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세상살이는 그보다는 복잡하고 시청자의 눈도 그리 낮지 않으므로.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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