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할까요?’, 판타지 공식 깬 현실 멜로의 진수

[엔터미디어=정덕현] ‘리얼 어른 멜로’라는 슬로건에 제목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자체로 도발적이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멜로의 공식 자체를 뒤집어놨기 때문이다. 보통의 멜로라면 남녀가 만나고 가슴 설레는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키스를 하는 것이 그 사랑의 증거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멜로에서는 그래서 키스가 그 멜로가 그려내는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제목이 담아내듯 처음부터 맺어지는 관계 자체가 노골적이다. 스킨십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하고, 그 사람의 재산이 얼마인가를 확인하고는 이만큼 좋은 ‘노후설계’가 어디 있냐고 부추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어딘지 속물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그건 여기 등장하는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이 이제 막 사랑에 설레는 청춘이 아니라 그 시점을 한참 지나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두 사람의 나이에 대한 서로 다른 소회로 시작한다. 손무한이 ‘인생이 너무 짧다’는 이야기로 빠르게 나이 먹어버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안순진은 ‘인생이 너무 길다’는 이야기로 나이 들어 남편까지 빼앗기고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채 살아가는 힘겨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나이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 다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나이 들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안순진이 냉동인간이기 때문에 먼저 스킨십으로 녹이지 않으면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는 그의 친구 이미라(예지원)의 이야기는 그래서 어딘가 짠하지만 현실적이다. 당장 빚 독촉을 받는 안순진에게 200억 재산가라는 손무한이 그의 남은 삶을 역전하게 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며 싫어도 좋아하는 척하고 그래서 결혼에 골인하라는 이야기도 그렇고, 그가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을 거라는(물론 그건 오해지만) 추측에 싫어하기보다는 오히려 잘됐다고 좋아하는 대목도 그렇다.

‘리얼 어른 멜로’라는 슬로건처럼 <키스 먼저 할까요?>에는 멜로의 공식이라고 하는 이른바 현실을 잘 몰라서 좋아하게 되는 그런 설렘 따위는 없다. 오히려 너무나 모든 것들이 현실적이고 그 무게에 눌려 지내는 두 사람이 전혀 사랑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불쑥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그런 상황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건 이토록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판타지’의 기운이다. 시청자들은 안순진의 그 짠한 삶에 동화되면서 그의 삶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오로지 암으로 죽어가는 반려견을 챙기며 살아가는 손무한을 만나 달라지기를 바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고독사를 걱정하며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을 보내는 손무한 역시 안순진과의 만남이 가져올 어떤 설렘을 기대하게 된다.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도 판타지를 녹일 수 있는 건 작품이 가진 괜찮은 캐릭터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여기에 제대로 옷을 입혀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힘은 멜로 장인이라 불릴 만한 감우성과 김선아의 연기 공력 때문이다. 감우성은 마치 과거 <연애시대>의 그 짠하기도 하지만 달달한 면면을 차분하게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김선아는 <품위있는 그녀>와는 완전히 상반된 솔직 대담하면서도 어딘지 웃음을 주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오랜만에 보게 된 현실 멜로.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달달함과 따뜻함 같은 것들은 이 드라마를 멜로의 차원에서 휴먼드라마의 차원으로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오랜만에 남다른 멜로를 보게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을 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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