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 스토리텔링 붕괴에 캐릭터 구축 실패가 더해지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궁합>은 <관상>의 제작진들이 만든 역술 3부작 중 2부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승기가 입대직전 찍은 영화로 제대 직후 개봉하는 첫 영화라는 점과, 20대 여배우 중 가장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심은경 주연의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몹시 실망스럽다. 코믹 사극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거의 웃기지 못한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매우 얄팍하거나 어이없음의 표시이다. 그렇다고 쓸 만한 메시지가 담긴 것도 아니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하지만, 도무지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 <궁합>의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텔링의 붕괴인데, 설정부터 전개까지 개연성이나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 이승기·심은경 캐릭터 구축의 실패

계속되는 가뭄을 해결할 수 있는 비책으로, 저주받은 사주를 타고난 옹주(심은경)의 혼인이 추진되는 설정도 그다지 개연성은 없지만 일단 넘어가자. 옹주의 태생이나 어린 시절 일화를 통해 왕이 궁합을 맹신하게 되었다는 보충설명도 그나마 성의 표시려니 받아들이자. 하지만 이런 무리한 초기설정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후 영화가 술술 납득되는 것은 아니다. 부마 간택에 있어서 궁합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고, 서도윤(이승기)이 궁합 풀이의 전문가로 낙점 받는다. 한편 옹주는 부마 후보들의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궁을 빠져나오는데, 영화에 대한 흥미가 유지되는 지점은 딱 여기까지이다. 이후부터 영화는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도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든다.

가장 큰 구멍은 캐릭터 구축의 실패이다. 가령 서도윤이 어떤 능력치와 권한을 지닌 캐릭터인지가 분명치 않다. 그는 사헌부 감찰의 신분을 지니고 있고, 역술에 정통한 위인이다. 하지만 그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타나 모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그는 무엇이든 하고 이야기는 되는대로 흘러간다.



가령 그는 부마 후보인 윤시경(연우진)의 집을 한밤중에 쳐들어갈 수도 있고, 궁합풀이 실무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최종 보고서를 올리는 자리에 출석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상황의 디테일이나 치밀함을 찾을 수 없다. 그가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욕망을 가진 인물인지 모호한데, 이는 <관상>의 내경(송강호) 캐릭터와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관객은 내경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도윤의 캐릭터는 ‘천재 궁합 전문가’ 라는 극히 평면적인 설정에 머물러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로 얽혀있는지도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는 인물인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서사의 필연성 없이 아무렇게나 흘러가도 그만인 셈이다.

옹주의 캐릭터도 납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궁합이라는 당시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그런 옹주가 단지 운명론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의 주체적인 행보에 영화가 더 많은 아이디어를 할애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옹주가 궁을 빠져나오기까지만 활기차게 그릴 뿐, 출궁 후 옹주의 행보는 지리멸렬하게 방치한다. 일단 옹주는 순진한데다 작전 개념이 없어서, 서도윤의 도움이 없으면 잠시도 자기 행보를 유지할 수 없다. 선의와 호기심만 가지고 방만하게 움직이던 옹주는 결국 목숨을 위협당하는 위기에 몰리고, 젠더폭력의 위험에 방치된다.



◆ 평면적인 서도윤과 맹한 옹주의 방만한 소동극

물론 순진한 옹주가 궐을 나와 돌아다니니 여러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는 과정을 영화가 주도면밀하게 그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옹주가 제1 후보, 제2 후보, 제3 후보 등을 만나러 다니는 과정이 단락으로 나뉜 채 단편적으로 나열될 뿐, 장편의 호흡에 어울리는 서사의 점증이나 유기적 갈등 축적이 없다. 이를테면 각각의 독립적인 에피소드에서 옹주가 이런 인간, 저런 상황을 맞닥뜨리다가 결국 저 지경에 놓이는데, 그때마다 서도윤이 나타나 옹주를 구해주는 식이다. 그리고는 누구나 예상하는 결말에 다다른다. TV 단막극 수준만도 못한 급조된 만듦새와 닭살 돋는 메시지에 헛웃음이 터진다.

<궁합>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대략 이런 것이다. 궁합이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끊어놓는 방식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비롯한 사람들 사이의 여러 감정들을 잘 헤아리려는 노력이 궁합풀이에 곁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궁합에 대한 이런 메시지는 올바르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천진하다는 점이다.



평면적인 서도윤과 맹한 옹주의 방만한 소동극으로 이런 대승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 리 없으니, 상황에 녹아들지 못한 메시지가 대사를 통해 생짜로 낭독된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나 “사주란 결국 상황을 보는 눈”이라는 철학적인 명제가 맥락에서 동떨어져 허공에 흩뿌려질 때, 익지도 않은 면을 씹은 듯 한 밀가루 맛이 그득하다. 대단한 요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컵라면의 물은 뜨거워야 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어디다 해야 할까.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궁합>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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